주간동아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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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들이여, 깨어나라

활기 띠는 유권자 운동… “돈 놓고 표먹기 이제 그만, 뭔가 보여줄 때”

  • 입력2006-05-04 1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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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줌마들이여, 깨어나라
    지난 3월29일 발족된 총선시민연대의 ‘네티즌 선거참여를 위한 M-tizen 공동행동’. 여기서의 ‘엠티즌’(M-tizen)이란 ‘행동, 실천, 참여하는 네티즌’의 의미로 네티즌들의 선거참여를 확대시키고자 요즘 유행하는 단어인 ‘모빌’(Mobile)과 네티즌을 붙여 만들어낸 조어다. 이 ‘M-tizen 공동행동’의 참여 웹사이트는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enscc413.jinbo.net) 등 무려 17개로 국민화합운동연대(www.hwahap.or.kr)나 딴지일보(ddangi.netsgo.com) 등도 참여했다.

    이들의 행동강령 ‘4·13 버전’이 재미있다. ‘하나, 4월13일은 정치인 땜에 노는 날. 투표는 하고 놀러간다(행동하는 네티즌). 둘, 내가 바보냐? 낙선대상자를 찍게?(족집게 네티즌). 셋, 난 물귀신. 좋은 일은 혼자 안한다(물귀신 네티즌).’

    ‘컴퓨터와 컴퓨터로 이어지는 혈관 안에 우리는 심장이다’라는 제목의 선언문도 의미심장하다. “우리에겐 마우스가 있다. 국회의원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나라가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인터넷은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선택이 ‘그들의 선택’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루 ‘삼십분 클릭’을 제안한다. 선거 당일 누구를 찍어야 할지 고민하는 네티즌은 없어야 한다. 업그레이드된 네티즌, 정보사회의 주역인 M-tizen이 선거에서 그 힘을 발휘하는 것은 철저한 정보검색에 있다. 지금까지 국민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고 희망을 절망으로 바꾸었던 정치인을 다시 한 번 콕 찍어 말해줄 사람이 M-tizen이다. 한국인의 기억력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지난 3월27일 개국한 인터넷 방송국 ‘대안’(www.daean.org).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사장 성유보)이 지난해 9월부터 준비한 이 인터넷 방송은 기존의 공중파 방송국이 다루지 않고,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사안을 다룬다는 방침. 현재는 지난 3월30일 오후 청년진보당 총선후보자 20여명과 당원들이 조선일보사 항의 방문 직전 경찰에 의해 강제 연행된 사실을 머릿기사로 다루고 있다. 과거 전단이나 대자보를 통해서 제한적으로만 알릴 수 있었던 사실을 인터넷 방송으로 손쉽게 알리고 있는 셈이다.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여론조사 보좌관을 지낸 딕 모리스는 최근 펴낸 자신의 저서 ‘보트닷컴’(vote.com)에서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정치연대를 ‘제5부’로 명명했다. 여기에서 모리스는 “정치성을 띤 웹사이트의 확산으로 유권자들은 주요 이슈에 즉각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생생하고도 다양한 성격의 뉴스를 접하면서 동시에 각양각색의 다각적인 시각을 접할 수 있게 됐다”면서 “인터넷의 엄청난 속도와 상호 교류성에 의해 필연적으로 국민투표에 의한 사실상의 직접 민주주의가 도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리스의 예견이 아니더라도 앞으로의 권력이 총구(銃口)가 아닌 ‘마우스 클릭’에서 나온다는 명제는 이제 상식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 땅의 4·13총선 현장에서 공권력이나 기성 권력과 첨예한 대립각을 형성하면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유권자 행동도 결국 전세계적인 조류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는 기성 정당들이 기성의 방법으로 권력을 취득하려 하는 마지막 선거가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앙시엥 레짐’(구체제)은 인터넷으로 무장한 유권자 혁명 앞에서 필연적으로 사라져야 할 운명이 될 수도 있다.

    ‘아줌마 부대의 반란’도 기성 정치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전통적으로 주부들은 금권선거의 유혹에 가장 쉽게 노출된 계층이라는 것이 선거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또한 여론 전파력이 뛰어나 선거 때마다 금권에 휘둘린 ‘아줌마 바람’이 후보 당락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주부 선거꾼’에 대한 반성론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지난 3월31일 한국여성단체연합회 회원들이 서울 명동에서 ‘여성 유권자의 날’ 선포식을 갖고 금품수수를 거부하는 춤 이벤트를 벌인 것도 이같은 자각의 일환이다.

    지난 3월8일 서울 강동-송파지역 여성 유권자 308인은 ‘세계 여성의 날’에 즈음한 ‘강동송파 총선연대’ 지지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1908년 3월8일 미국의 1만5000여 여성노동자들이 뉴욕의 루트거스 광장에 모여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얻기 위해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듯, 당시 여성들의 숭고한 뜻을 다시 새기며 부패-무능 정치인의 퇴출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뜻을 모았다고 다짐했다. 308명 중 80% 이상이 주부들이었는데, ‘강동송파 총선연대’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이 운동에 동참한 주부들이 1000여명이 넘어섰다”면서 “적어도 이들만큼은 자신들의 주권을 돈과 바꾸는 행위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대구의 ‘함께하는 주부 모임’이나 인천 남동구의 ‘바른 선거를 하는 모임’(바선모) 등도 모두 조직적으로 유권자 운동을 하는 ‘아줌마 부대’들이다. 기존의 여성단체들과 독립적으로 활동하면서 여성 유권자의 의식 전환에 힘쓰는 이들 소모임은 전국적으로 수십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바선모’의 김금옥회장(50)은 “아줌마들도 결코 정치에 무관심하지 않다”면서 “시민운동 탓인지 수십년만에 주부들이 깨어나는 조짐이 보인다”고 말한다.

    주부 못지 않게 정치 무관심 계층이었던 20대 젊은이 자신들의 의식개혁 운동도 과거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열기를 보이고 있다. 총선연대의 ‘청년유권자 100만행동’이나 ‘대학생 유권자 운동본부’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 24개 기독교대 총학생회로 구성된 ‘기독대학생총연합 4·13총선대책위’ 등의 행동강령의 첫 번째는 모두가 ‘투표에 참가한다’이다. 두 번째는 주위 사람을 투표에 참가시키는 일. 선거 감시와 낙선운동은 세 번째다. 따라서 이들 운동은 투표율을 높임으로써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는데 총력이 모아져 있다. 유권자 혁명은 결국 선거 참여부터 시작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고 있는 것.

    그런 점에서 총선연대 유권자운동위원회가 지난 3월20일 선언한 ‘유권자 약속’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유권자 약속은 부패-무능 정치인을 퇴출시키고 진정한 정치개혁을 이루겠다는 유권자들의 결연한 실천의지이자 주권회복선언이며, ‘227만표 모으기’는 행동하는 시민들의 ‘2000년 명예혁명’이다. 시민의 힘으로 정치를 바꾸자!”

    ‘클릭 정치’와 ‘클린 정치’사이

    음해성 루머에 ‘거품’도 상당수… 정치적 무관심 심화될 수도


    인터넷을 통한 정치 행위인 ‘클릭 정치’가 과연 투표 행위로 이어지고 그리하여 개혁적인 ‘클린 정치’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이는 이번 선거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이자 의문이다.

    사이버 정치의 열기만 보자면 유권자 혁명이 일어나기에 충분하지만, 네티즌들의 클릭 행위가 현실 정치의 직접참여로 연결되기 힘들고 사이버의 익명성으로 인한 정치적 거품도 많다는 지적이 많기 때문.

    이에 따라 지난 3월31일 ‘두루넷’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이에 대한 토론회를 열고 이를 인터넷 동영상으로 생중계하기도 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분명 인터넷 혁명이 직접민주주의에로의 발전을 예고하고 있지만, 인터넷 보급률이 높은 선진국일수록 유권자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심화되고 투표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그 척도로 미국의 96년 대선 투표율은 50%, 의회선거 투표율은 40%선이었다.

    우리 경우를 보면 자민련 서울 영등포을 공천자였던 조모씨가 사이버 공간에 100여 차례나 흑색 비방문을 띄운 사건이 발생했다. 각 출마자들이 이른바 ‘사이버 알바(아르바이트를 의미하는 속어)’를 고용해 특정 정치인에 대해 왜곡된 여론을 전파하는 경우도 허다하게 나타나고 있다. 총선시민연대의 간부들에 대해 음해성 루머를 올리는 글도 많이 올라오고 있다. ‘정치꾼 네티즌’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클릭 정치’가 ‘클린 정치’로 이어지는 것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지만, 극복되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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