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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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도파민 폭발’은 흥분과 억제 회로의 정교한 이중주

[이종림의 사이언스 랩] 자극 탐색하는 힘과 과도한 몰입 막는 브레이크 동시 작동

  •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입력2025-11-2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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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 뇌에서 억제성 뉴런(파란색)과 흥분성 뉴런(보라색)의 연결 구조를 3차원으로 재구성한 모습. 미국 프레스턴대 제공

    쥐 뇌에서 억제성 뉴런(파란색)과 흥분성 뉴런(보라색)의 연결 구조를 3차원으로 재구성한 모습. 미국 프레스턴대 제공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상황을 ‘도파민 폭발’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뇌가 끊임없는 보상을 기대하며 자극을 불꽃이 튀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신경과학 연구들은 실제 뇌에서는 ‘폭발’과는 거리가 있는 정교한 과정이 진행된다고 설명한다. 쾌감 물질이 단번에 솟구치는 것이 아니라, 자극의 강도와 속도에 맞춰 신경회로 전체가 정교하게 균형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디지털 자극이 넘쳐나는 환경에서 이러한 뇌의 균형은 우리의 사고와 일상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흥분과 억제는 한쌍

    우리가 숏폼에 빠져들어 계속 바뀌는 화면을 응시할 때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흥분성 뉴런이다. 흥분성 뉴런은 글루탐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시냅스로 분비해 자극을 전달하고, 들어온 정보가 뇌에서 더 중요한 신호로 처리되도록 만든다. 반대로 억제성 뉴런은 과도한 흥분을 눌러주는 감마 아미노부티르산(GABA)을 분비해 치솟은 흥분을 가라앉힌다. 

    최근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연구팀이 ‘셀 리포트’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뇌 균형은 매우 정교한 체계로 조정된다. 흥분이 올라가면 억제가 따라붙는 단순한 방식이 아니라, 자극의 강도와 맥락에 따라 이 짝이 미세하게 재정렬된다는 것이다. 흥분·억제 시냅스가 세포 내부에 거의 일대일로 짝지어 배치돼 있는 구조다.  

    2019년 생명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이라이프(eLife)’에 발표된 실험에서도 쥐의 해마 뉴런이 광유전학적 자극을 받자 흥분과 억제 신호가 동시에 나타났다. 흥분이 강해질수록 억제 신호가 거의 같은 크기로 증가했으며, 두 신호의 도착 타이밍이 자극 강도에 따라 정밀하게 변했다. 약한 자극에서는 억제 신호가 수백 밀리초(1밀리초는 1초의 1000분의 1) 늦게 도착했지만, 강한 자극에서는 그 시간차가 10밀리초 이내로 줄어들었다. 흥분이 올라가는 순간 억제 신호가 즉시 따라붙어 회로가 폭주하지 않도록 제동을 거는 원리다. 

    이 기본적인 균형 위에서 한층 더 깊게 작동하는 구조가 신경조절세포다. 흥분-억제 회로가 들어온 신호 자체에 반응한다면, 신경조절세포는 그 신호에 뇌가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할지를 느리지만 넓은 범위에서 조절한다. 이때 분비되는 신경조절물질이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이다.  



    이 중에서도 도파민이 특히 예민하다. 중뇌의 배쪽 피개 영역에 있는 도파민 신경세포는 예측과는 다른 자극이 들어오면 짧고 강하게 반응하는데, 우리가 흔히 도파민이 폭발한다고 얘기하는 순간이다. 실제로는 지금 들어온 정보가 예상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 신호에 가깝다. 도파민이 활성화되면 흥분 회로의 문턱이 낮아져 자극에 더 쉽게 끌리지만, 동시에 억제 회로도 빠르게 개입할 준비를 하면서 균형을 잡는다. 우리 뇌에서는 자극을 탐색하게 만드는 힘과 과도한 몰입을 막는 브레이크가 동시에 작동하는 셈이다.  

    자극 범람하면 망가지는 정렬 시스템

     문제는 도파민이 크게 반응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뇌 속 신호의 타이밍이 어긋나기 시작하는 데 있다. 최신 연구들은 흥분이 치솟는 순간 억제 신호가 얼마나 정밀한 타이밍으로 따라붙는지가 뇌 균형을 유지하는 핵심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한다. 뇌는 밀리초 단위로 신호를 주고받지만, 우리의 의식적 행동과 인지는 초 단위로 움직인다. 이 시간 규모의 차이는 원래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디지털 환경에서는 이 불일치가 극대화되며 뇌가 스스로 회복할 여유를 잃을 수 있다. 

    숏폼 영상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피드처럼 순간적으로 바뀌는 자극이 이어지면 조절층에서 분비되는 도파민 신호가 그때마다 강하게 반응해 회로의 민감도를 조금씩 끌어올린다. 이때 흥분 신호는 즉각 크게 올라가지만, 균형을 되돌리는 억제 회로와 조절 시스템은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이런 템포의 차이가 반복되면 흥분과 억제의 정렬이 서서히 어긋나면서 무엇을 중요한 자극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그 기준 자체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여러 동물실험에서도 반복적인 자극에 오래 노출된 개체에게서 같은 자극에 더 쉽게 과반응하거나 약한 자극에도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가 ‘도파민 폭발’이라고 느끼는 순간 뒤에는 이런 변화가 누적되는 과정이 깔려 있다. 빠른 자극의 템포가 조정 속도를 계속 앞지르면서 회로의 반응 기준선, 즉 역치를 조금씩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 기준선이 어느 지점에서부터 회복이 어려워지는지, 그 임계 구간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한 연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신경과학 연구 방향도 도파민의 양이 많거나 적다는 단순 모델에서 벗어나, 신호가 어떤 순서로 정렬되고 어느 속도로 맞물리는지를 중심에 두는 ‘타이밍 기반 모델’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나 불안장애 같은 정신질환 연구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실제로 여러 연구 결과에서 ADHD 환자에게서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신호 사이 ‘위상 불일치’가 관찰된다. 이는 두 신호가 원래 맞춰져야 할 타이밍에서 조금씩 비켜 나가는 현상이다. 미세하게 어긋난 뇌 내부 시계의 오류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새로운 치료 전략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크 쳄브로스키 영국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세포 및 생리과학과 교수는 과학전문매체 ‘콴타매거진’을 통해 “광범위한 뉴런 집단 안에서 서로 다른 세포들이 흥분과 억제의 리듬을 함께 만들어 뇌의 균형을 유지한다”며 “지금까지는 이 균형이 무너졌을 때 나타나는 일부 변화만 이해해왔다면, 앞으로는 신호의 타이밍과 리듬을 더 정확히 규명하는 연구가 새로운 치료 전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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