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 포스터.
우리와 달리 서구 친구들은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서 요즘 어떤 음악을 듣느냐고 묻곤 한다. 취향을 통해 그 사람을 파악하는 문화 때문이기도 하고, 다양한 음악시장을 갖고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유명인을 대상으로 최근 듣는 음악 리스트를 조사하는 건 외국 음악저널의 흔한 아이템이다. 그래서 ‘어벤져스’ 멤버들이 어떤 음악을 들을지 상상해봤다. 아마 영화 속 캐릭터와도 일치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한다.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를 통해 주가를 몇 배 올린 스티브 로저스의 아이팟에는 현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알아야 할 아이콘들의 음악이 먼저 들어 있을 것이다. 영화 도입부에서 스티브는 조깅 중 만난 팔콘에게 지금 이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의 리스트를 들어 적는다. 재미있는 건 그게 나라별로 다르다는 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건 마빈 게이, 미국판에는 너바나, 영국판에는 비틀스, 남미판에는 샤키라, 프랑스판에는 다프트 펑크 정도다.
그걸로 그칠까. 미국을 넘어 현대 시민으로서의 ‘정의’를 주장한 음악들을 들으며 캡틴으로서 신념을 다잡는다. 그러니 음악을 정치와 일체화했던 위대한 목소리들 또한 그의 애청곡이다. 미국 록의 ‘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1980년대부터 팝의 영혼을 담당했던 U2, 그리고 대중음악에 이데올로기를 이식한 밥 딜런 같은 이들의 음악 말이다.
아이언맨, 즉 토니 스타크는 ‘자뻑’에 ‘깐죽’의 왕이다. 울트론도 토니가 만든 인공 지능이 유래라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헤비메탈 팬이다. ‘어벤져스’에서 블랙 사바스의 티셔츠를 입고 등장한 게 증거다(블랙 사바스의 노래 중 ‘Iron Man’이라는 곡이 있기도 하지만). 경험상 토니 같은 성격을 가진 헤비메탈 팬에겐 타협이 없다. 그러니 토니에게 록이란 1970년대 완성돼 80년대에 종결된 음악일 뿐이다. 얼터너티브? 펑크? 에이, 록 순혈주의자에게 그런 건 사파(邪派)다. 블랙 사바스, AC/DC, 디오, 아이언 메이든,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메탈리카, 모틀리 크루 등 헤비메탈 여명기부터 황금기까지의 역사를 만들었던 명밴드들의 명곡이 그의 아이팟을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다.
분노하면 헐크가 되는 브루스 배너의 소원은 무엇일까. 아마 영원히 헐크로 변하지 않는 것일 듯하다. 그러니 ‘인크레더블 헐크’ 이후 ‘어벤져스’ 시기까지 인도에서 은둔하고 있었으리라. 따라서 그에게 음악이란 감상 대상이 아니다. 심신을 안정케 하는 처방이다. 음악이 신에 바치는 헌정이던 중세 그레고리안 성가나 인도와 티베트, 몽골 등의 종교음악을 24시간 틀어놓고 내면의 헐크를 진정시킬 수밖에 없다. 그런 음악만 듣다가 지친다면? 다행이다. 바흐, 쇼팽, 헨델, 에리크 사티, 드뷔시까지, 현대 대중음악이 출연하기 이전 수많은 작곡가가 브루스를 위해 때로는 정제되고 때로는 차분한 음악을 많이 만들어뒀으니까.
평생 싸움질만 하다 오딘의 분노로 지구에 떨어진 토르는 신기한 체험을 한다. 자신이 살던 세계를 소재로 한 음악을 만든 인간이 꽤 많은 것이다. 크림슨 글로리의 ‘Valhalla’, 블라인드 가디언의 ‘Twilight of the Gods’ 같은 노래가 그렇다. 인간을 연구하는 차원에서 하나 둘씩 그 음악들을 접한 토르는 결국 익스트림메탈의 팬이 된다. 특히 ‘약속된 메탈의 땅’ 북유럽에 그런 음악은 널렸다. 다크 트랭퀼리티, 옴니움 가테룸, 나이트위시 등등. 긴 금발에 망토까지, 익스트림메탈 밴드 중 토르와 비슷한 패션을 걸친 뮤지션이 많다는 것도 그에게는 매력적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