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4시간 파티 피플’ 포스터.
그 시대 중심에 하나의 레이블과 하나의 클럽이 있었다. 팩토리 레코드와 하시엔다. ‘24시간 파티 피플’은 이들의 흥망성쇠를 팩토리 대표이자 맨체스터 문화계 거물이던 토니 윌슨의 시점에서 다룬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1976년 6월 4일, 섹스 피스톨즈는 런던 바깥에서의 첫 공연을 가졌다. 맨체스터 프리트레이드 홀. 영화는 이 공연으로부터 시작한다. 청중 42명 가운데는 공연에 영향을 받아 곧 밴드를 시작하려는 인물들이 포함돼 있었다. 버즈콕스와 조이 디비전, 맨체스터 펑크 신의 시작이었다. 윌슨 또한 섹스 피스톨즈에 자극받아 팩토리 레코드를 설립하고 조이 디비전을 첫 밴드로 맞아들였다.
하지만 1980년 5월 18일 이언 커티스가 자살하고 조이 디비전은 자연스럽게 해체된다. 물론 바로 뉴오더로 이어지지만. 그때 윌슨 눈앞에 두 ‘또라이’가 나타났으니, 숀 라이더와 폴 라이더 형제였다. 해피 먼데이스의 주역이자 파괴자들. 그리고 82년 시내 남부에 하시엔다가 개장했다. 댄스와 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들끓었지만 클럽은 항상 적자였다. 입장객들은 술 대신 약을 샀다. 그들 지갑에서 나온 돈은 윌슨이 아닌 마약판매상들 주머니로 들어갔다. 레이블을 대표하는 밴드 해피 먼데이스 역시 언제나 약에 취해 있었다. 1978년 12월 조이 디비전의 ‘Digital’을 내며 시작된 팩토리의 전설은 92년 11월 해피 먼데이스의 ‘Sunshine and Love’ 리믹스 싱글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하시엔다 역시 경영난과 관계당국의 단속이란 이중고를 견디지 못하고 97년 종말을 고한다. ‘24시간 파티 피플’은 그 영욕의 세월에 대한 화려한 파노라마다.
영화는 시종일관 흥청망청이다. 주요 등장인물 중 아무도 멀쩡해 보이지 않는다. 경제 위기 타격을 가장 극심하게 받은 도시의 미래 없는 청년들이었다. 그런 루저들이 하루아침에 영국 대중문화 중심이 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부작용이 남김없이 드러난다.
그러나 어쩌면 그런 이들이었기에 변방의 비주류 문화로 음악사와 문화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의 후원자이자 ‘쩐주’였던 윌슨 또한 비즈니스맨보다 몽상가에 가까웠다. 그런 ‘배기(Baggy)’족과 한통속으로 묶이는 게 싫었던 스미스는 맨체스터 북부 샐포드 클럽을 근거지로 삼았다. 배기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스톤 로지스는 런던에 근거를 둔 헤비메탈 전문회사 실버톤과 계약했다. 정작 영국 음악 역사를 바꾼 이들은 매드체스터 안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24시간 파티 피플’의 어떤 등장인물도 미워할 수 없다. 이 영화는 하루를 살아도 혼신을 다해 즐겁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번은 꿈꿨을 ‘궁극의 흥청망청’에 대한 스케치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메이저 음반 산업과 거래 없이, 지역 인디신 안에서 말이다.
한국 대중음악에는 이런 변방이 없다. 모든 게 중심에서 만들어져 변방까지 유통되고 소비된다. 어쩌면 변방에서 이뤄지는 다양하고 무모한 시도가 없기에 획일성을 탈피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추석이다. 많은 이가 전국으로 흩어지겠지만, 여전히 중앙에서 만든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변방에서의 시간을 소비할 것이다. 지역의 건강하고 차별적인 문화가 있다면 귀성길 스트레스가 꽤 많이 덜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 철 지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