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초상’, 요제프 카를 스티엘러, 캔버스에 유채, 78×63cm, 1828년, 독일 뮌헨 노이에 피나코테크 소장.
이 초상화는 괴테 본인이 요청한 것이 아니라, 바이에른왕국의 왕 루트비히 1세가 화가 요제프 카를 스티엘러(1781~1858)에게 위촉한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태생인 괴테는 성인이 된 후 인구 6000여 명의 작은 공국 바이마르에서 재상으로 봉직하며 평생을 보냈다. 괴테 생존 당시 독일은 통일된 국가가 아니라 수십여 개의 크고 작은 왕국과 공국으로 쪼개진 상태였다(독일 통일은 1871년에야 이뤄졌다). 말하자면 괴테가 살던 바이마르공국과 루트비히 1세의 바이에른왕국은 서로 다른 나라였다. 그런데 왜 루트비히 1세는 스티엘러에게 다른 나라 재상인 괴테의 초상을 그려오라는 명령을 내린 것일까.
1825년부터 1848년까지 바이에른왕국을 다스렸던 루트비히 1세는 대단한 예술 애호가였다. 그는 바이에른왕국의 수도였던 뮌헨에 미술관 두 개를 세우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 조각작품을 열심히 수집했다. 현재 뮌헨에 있는 알테 피나코테크와 노이에 피나코테크가 이때 세워진 미술관이다.
루트비히 1세는 특히 고대 그리스, 로마 예술에 푹 빠져 있었는데, 그런 그의 눈에 파리와 비엔나에서 신고전주의 양식을 제대로 배워온 스티엘러의 화풍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이에 루트비히 1세는 스티엘러를 궁정화가로 임명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들의 초상을 시리즈로 그리게 했다. 이 ‘미인들의 초상화 시리즈’를 자기 마음에 쏙 들게 완성한 스티엘러에게 루트비히 1세는 또 다른 임무를 내렸다. 그것은 국왕의 수집품 목록에 바이마르공국의 재상이자 유명 작가인 괴테의 초상을 추가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루트비히 1세는 이미 젊은 시절부터 괴테의 작품을 탐독해온 터였다.
스티엘러는 루트비히 1세의 명을 완수하려고 1828년 5월 바이마르공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 달 이상 공들인 끝에 이 초상화를 들고 바이에른왕국으로 돌아왔다. 아마 1828년 당시 괴테는 오래 앉아 있기 어려울 정도로 노쇠한 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나 괴테를 향한 국왕의 존경심을 잘 알고 있던 스티엘러는 실제보다 20년 정도 젊은 모습으로 초상화를 완성했다. 초상화 속에서 괴테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두 장의 종이는 루트비히 1세가 쓴 시를 담고 있다. 궁정의 예의범절에 익숙한 괴테는 적절한 방식으로 자신을 존경하는 루트비히 1세에 대한 감사를 표현한 것이다.
초상화를 둘러싼 이러한 사연 때문에 이 작품은 괴테의 실제 모습이라기보다 ‘이상화한 시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초상화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먼 곳으로 시선을 보내는 작품 속 괴테의 눈빛에서 시인의 영혼이 반짝이며, 검소하고도 품위 있는 의상과 꼭 다문 입술에서 일견 차가워 보이지만 굳세고 온화한 독일인의 개성이 느껴진다.
루트비히 1세는 이 초상화에 크게 만족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이 초상화는 지금도 루트비히 1세가 세운 두 미술관 중 하나인 노이에 피나코테크에 전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