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코리아 나이트 아웃’ 무대에 선 노브레인.
SXSW가 열리는 기간 오스틴에서는 낮과 밤 구분이 없어진다. 일상은 사라지고 축제가 도시를 뒤덮는다. 특정 지역에 대규모 무대를 세워놓고 진행하는 게 아니라, 도시 곳곳에 있는 공연장과 술집, 카페, 심지어 온 거리를 공연으로 뒤덮기 때문이다. 공식, 비공식적으로 공연하는 이들이 1000팀을 넘는다는 게 행사 관계자 설명이다. 그래서 SXSW 기간 오스틴은 평범한 미국 도시가 아닌, 세계 음악 수도가 된다. 음악이 도시를 점령하고, 리듬이 공기를 뒤덮는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한국 뮤지션 공연이 이틀에 걸쳐 열렸다. 이번 SXSW 의미는 그들이 개별 공연을 한 게 아니라, 한데 뭉쳐 한국 대중음악 신(scene)을 보여주는 무대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먼저 3월 12일에는 오스틴 중심인 6번가에 위치한 클럽 엘리시움에서 ‘코리안 나이트 아웃’을 열었다. 노브레인, 국카스텐, 로다운30, 이승열, 정차식, 갤럭시 익스프레스, 긱스 등 총 여섯 팀이 무대에 선 이 공연은 7시 시작이었음에도 3시 무렵부터 공연장 밖에 관객이 줄을 섰다. 유학생이나 교민도 많았지만, 현지 관객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헤드라이너가 이미 한류 스타 반열에 오른 걸그룹 에프엑스(f(x))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사 자체는 그리 성공적이라 보기 힘들다. 사운드가 열악한 탓에 록밴드는 물론, 에프엑스 공연 또한 라이브 무대 열기를 제공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에프엑스를 포함해 이미 방송을 통해 인지도를 쌓은 국카스텐과 노브레인이 호응을 얻었을 뿐이다. 록밴드와 아이돌을 큰 고민 없이 한곳에 섞어놓은 기획도 무리수였다.
이질적인 두 집합을 자연스럽게 엮으려면 그만큼 철저한 기획이 필요하다. 최근 록페스티벌에는 반드시 록 뮤지션만 무대에 서지 않는다. 힙합, 솔, 일렉트로니카 등 여러 장르 뮤지션을 섭외해 좋은 반응을 얻는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들 모두가 라이브로 공연을 소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록밴드는 라이브로, 에프엑스는 립싱크로 진행한 이번 행사는 그런 이질성을 극복하기 힘들었다. 열악한 사운드와 불충분한 고민이 어우러진 이번 케이팝 나이트 아웃은 내년에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를 남긴 채 끝났다. 많은 관객 수가 행사 성공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반면 이튿날 열린 스핀하우스 쇼케이스는 한국 대중음악이 본격적으로 SXSW에 녹아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미국 유력 음악지이자 몇 년 전부터 한국 음악에 관심을 보인 ‘스핀매거진’이 주최한 이 쇼케이스는 한국 록밴드 여섯 팀을 초대했다. 관객은 전날에 비해 많지 않았지만 록에 걸맞은, 과연 본토 사운드라 할 만한 최상의 음향 환경을 제공했다. 스핀매거진 명성과 권위를 믿고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밴드들의 공연을 보려고 많은 현지인이 객석을 채웠다.
샌프란시스코에 이어 웬만한 현지 밴드보다 출중한 기타 사운드를 들려준 로다운30, 현지 관객을 미친 듯이 춤추게 만든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관객으로 하여금 처음 듣는 노래에서 합창을 이끌어낸 노브레인, 전날과 달리 압도적 에너지로 공연장을 지나가던 행인 발걸음까지 멈춰 세운 갤럭시 익스프레스, 그리고 공연장 관계자에게 ‘이그조틱 에너지’라는 찬사를 들은 3호선 버터플라이. 모두가 장르 문법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순수한 라이브로 뿜어낸 멋진 무대였다.
코리안 나이트 아웃과 달리 스핀하우스 쇼케이스는 여기가 바로 미국임을, 우리가 지명도는 낮을지언정 해외 밴드에 견줘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또 보여줬다. 한국 밴드들은 이 무대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고, SXSW는 앞으로 주목해야 할 새로운 지역을 발견했다. 한국 대중음악에는 가수 싸이나 케이팝(K-pop)만 있는 게 아님을 선언하는 굉음이 오스틴의 밤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