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 정규 앨범 4집에 실린 사진.
2007년 ‘다시 만난 세계’로 데뷔한 이래 소녀시대의 행보는 승승장구였다. 원더걸스가 미국 진출을 시도하느라 국내 시장에 소홀한 동안 소녀시대는 2009년 ‘Gee’를 통해 소녀시대 천하를 열었다. 당시 일본 내 한류는 그 중심이 동방신기, SS501, 슈퍼주니어 같은 보이그룹에게서 카라를 비롯한 걸그룹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2010년 일본에서 만난 일본 음악관계자의 예언이 생각난다. “소녀시대가 일본에 진출하면 게임은 끝날 것이다.” 그 관계자의 예언이 실현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0년 9월 소녀시대는 ‘소원을 말해봐’를 일본어로 번안한 ‘Genie’로 역대 일본 여자 아티스트 데뷔 싱글 최다 판매량을 기록하며 단숨에 오리콘 차트 2위로 올라섰다. 이듬해 ‘Gee’는 한국 걸그룹으로는 처음 오리콘 일간 차트 1위를 점령했다. 일본에서 처음 발매한 앨범 ‘Girls’ Generation’ 역시 한국 걸그룹 최초로 오리콘 주간 차트 1위에 오르고, 그해 해외아티스트 부문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2012년 ‘The Boys’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조회수 1500만 건을 넘기며 ‘세계 음악 카테고리 이번 주 가장 많이 본 동영상’ 3위에 올랐다. 그해 1월 31일 한국 가수 최초로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CBS, ABC, NBC 등 미국 3대 방송사에 모두 얼굴을 비췄다. 이후 ‘강남스타일’ 신드롬이 일면서 한국 음악에 대한 해외 음악팬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소녀시대에 대한 해외 수요가 상대적으로 올라간 점은 그들에게 향후 행보에 대한 자산을 확보해준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기습 공개된 정규 4집 타이틀 곡 ‘I Got A Boy’는 뜨거운 반응과 별개로 평이 엇갈린다. 이 노래는 충분히 논쟁적이다. 키치스러운 앨범 재킷과 새로운 로고는 그렇다 치고 음악적으로 당혹스러운 지점이 있다. 히트곡 조건인 강력한 멜로디와 매력적 구성은 온데간데없다. 그 대신 덥스텝(dub step·일렉트로닉 장르의 일종으로 낮고 강력한 사운드가 특징), 클럽 팝, 힙합 등 여러 장르와 리듬이 물리적으로 뒤섞였다. 리듬뿐 아니라 서너 곡을 하나로 합친 듯 구성도 중구난방이다. 소녀시대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SM)의 음악을 책임지는 유영진이 종종 이런 시도를 했지만, 이번엔 너무 나갔다.
‘The Boys’가 밋밋하다는 평을 의식해서였을까. 빅 히트곡의 선행조건인 ‘한방에 꽂힌다’ 대신 ‘중독될 때까지 들어라’는 문장이 생각난다. 이런 전략은 기존 팬에게는 통할지 몰라도 새로운 팬을 끌어오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직 세계 시장에서 굳히기보다 확장성을 추구해야 하는 소녀시대로서는 좋게 말해 도박이요, 나쁘게 말하면 자충수가 되기에 충분한 카드다.
소녀시대와 SM은 왜 이런 무리수를 뒀을까. 모든 멤버가 성년에 접어든 지금, 더는 뻔한 걸팝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새로운 걸그룹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는 확실한 차별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뻔함’보다 ‘논란’이 효과적일 수 있는 시점이다.
만일 그런 전략이었다면 소녀시대의 승부수는 먹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중견 아이돌이 더 많은 관심을 얻는 길은 하나였다. 사생활과 관련한 스캔들. 스캔들은 그러나 항암제 같다. 수명을 갉아먹는다. 소녀시대는 그런 악수를 두지 않고 음악적 논란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맞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논란에서 출발한 ‘I Got A Boy’는 인기 정점을 찍은 데뷔 7년차 걸그룹에게 어떤 한 해를 열어줄까. 연착륙일까, 재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