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퍼는 대부분 동절기에 휴식을 취한다. 여유가 있는 골프광들은 동남아로 떠나지만 노익장을 과시하는 사람들은 아예 채를 모셔두고 연습장이나 스크린 골프장에서 봄을 기다린다. 우리나라에서 골프를 치기 좋은 날짜는 5·16부터 10·26까지라던가. 하여간 그때가 호쾌한 스윙을 날리는 기간이라 하니, 정치적 오해는 없길 바란다.
‘손자병법’에서는 명장을 이를 때 네 가지 조건을 다 갖춰야 한다고 했다. 산전(山戰), 수전(水戰), 습전(濕戰), 공전(空戰)을 다 치러본 장수가 명장이라는 것이다. 산전수전이야 많이 들어본 소리일 테지만 습전과 공전은 낯설다. 습전이란 습지에서의 싸움을 가리킨다. 손자가 활약하던 시기에는 비만 오면 맨땅이 개흙(진흙) 구덩이가 돼버려 습전이라고 이름 붙였을 것이다. 공전은 넓은 땅에서의 기동전을 뜻한다. 공중전이 없던 옛날에는 개활지 전투를 뜻했지만, 요즘에는 공전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이순신 장군도 보병으로 시작해 해상전투의 영웅이 되지 않았는가.
한마디로, 어떤 조건에서도 창의와 병법을 응용해 이겨본 장수가 명장이란 뜻인데, 지금 시대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동계전투에서 살아남은 자도 명장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제국 건설에 실패한 이유가 러시아 동장군(冬將軍) 위세에 주저앉았기 때문이고, 6·25전쟁에서는 미군이 겨울철 장진호 전투에서 그대로 녹고 말았다. 혹한기 인체적응지수가 낮았기 때문이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산전수전과 동계전이 있어야 제맛을 알 수 있다. 박세리 선수의 US 오픈 챔피언십 연못 샷은 물론, 비 오는 날에 하는 시합도 수전이다. 바람 많은 제주에서 서 있어도 흔들릴 정도의 강풍에서 하는 라운딩은 공중전이다. 여기에 더해 영하 15℃ 날씨에서도 라운딩을 해야 제대로 된 골프 명장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모든 악조건 속에서 천지자연과 함께하는 라운딩을 당신은 얼마나 해봤는가.
골프장 측에서 본다면 칭찬받을 만한 겨울 골프의 묘미를 풀어보자. 겨울 골프가 좋다는 이유로 초보자나 어르신은 함부로 나가서는 안 된다. 서너 번 뒤땅이라도 치면 손목과 발목을 다치기 십상이다. 여기서는 다만 명장 반열에 오르기 위한 고수들의 동계 골프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참고하길.
일단 겨울 골프 단점으로 거론되는 것은 날씨다. 몸이 굳어 있어 스윙 시 잘못하면 뼈가 부러질 수 있고, 걷다가 미끄러져서 넘어지기도 한다. 손이 시린 고통과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공의 방향, 그리고 눈 속에 파묻혀 찾지 못하는 공 등 여러 난관이 도사린다.
산전수전 그리고 동계전 묘미
이런 겨울 골프의 단점만 생각하고 장점은 떠올리지 못하는 골퍼가 의외로 많다. 스코어에 신경만 쓰지 않는다면 겨울 골프의 매력은 적지 않다. 먼저 부킹이 쉽다. 아쉬운 것은 골프장 측이지 내장객이 아니다. 떵떵거리며 부킹할 수 있다는 점이 첫 번째 매력이다.
둘째, 공기 중에 산소가 가장 많은 계절이 겨울이라는 점이다. 추운 날씨에 기온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의 신선함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몸으로 들어오는 산소 양이 다른 계절보다 1.5배는 많다.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것이 북극해의 산소 이동이 가장 많은 계절이 겨울이다. 한 라운드가 끝나고 운동을 통해 몸으로 들어온 산소 양을 느껴본다면 여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쾌적함을 한 번 맛보길 권한다.
셋째, 골프 동계훈련의 묘미를 터득할 수 있다. 언 땅에서의 샷은 정확도를 요구한다. 대충 공 뒤만 맞혀서는 원하는 방향과 거리를 낼 수 없다. 더불어 찍어 치는 횟수가 많아져 연습장에서보다 더 큰 정확도가 필요하다. 아이언 연습량은 다른 계절에 비할 바가 아니다. 여기에 더해 발이 미끄러지는 경우가 많아 하체 고정이라는 숙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신발 밑바닥을 털고 고정하려는 마음이 작용하는 것이다.
넷째, 어프로치를 할 때 굴려 치는 요령을 터득할 수 있다. 그린을 직접 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린 근처까지만 보내는 거리 조절로 온 그린 기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골프 격언 가운데 아마추어에게는 필수적인 말씀, “굴릴 수 있으면 굴려라”가 고민 없이 터득된다. 30m 정도 되는 거리도 퍼트로 굴리면 굴러간다. 실수할 확률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이를 겨울 실전을 통해 터득할 수 있다.
2012년 12월 19일 대통령선거일에 투표한 뒤 라운딩에 나섰다. 날씨가 엄청 추워 하루 전 골프장에 전화해봤더니, 무조건 칠 수 있다고 했다. 부킹 전쟁도 없으니 오라는 것인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날씨를 탓하는 골퍼는 아직 한참 멀었다며 몇몇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흔쾌히 가자고 난리다. 너희가 진정한 고수로고….
골프장에 도착하니 눈과 얼음 천국이었다. 드라이버 거리가 평소보다 20~30m는 더 나갔다. 까짓, 공을 잃어봤자 10개 내외다. 그린 상태도 눈을 다 치우지 않아 언 상태라 거리 감각이 확 사라졌다. 공이 굴러가면서 눈사람을 만드는데도 마냥 즐거웠다. 모두 욕심이 사라진 무심 상태로 운동을 했다.
복불복. 재수가 좋으면 딱 올라붙고, 재수가 없으면 그린 주변에서도 오비(OB)다. 내기게임을 하면서도 욕심을 내면 양파다. 보기만 하겠다고 그린 주변에 갖다 붙이면 희한하게도 파로 마무리된다. 그날 여름 골프에서도 싱글을 좀처럼 못 하는 친구 2명이 싱글을 했다. 무척 이상한 골프를 치는 우리 팀을 보고 캐디가 덕담을 건넸다.
“나 참, 겨울 골프에서 이런 실력을 보이는 분들을 처음 봤어요.”
2011년 겨울, 눈이 15cm나 쌓였는데도 문을 연 골프장이 있었다. 군 체력단련장이라 이름 붙은 선봉대 골프장이었다. 경기 용인 군사령부 안에 있는 골프장으로, 연세 든 분이 여기 왔다가는 초죽음 상태로 돌아간다. 말 그대로 체력단련장이다. 나인 홀을 두 바퀴 도는 코스로, 특히 1번 홀과 3번 홀, 6번 홀은 등산 홀이다. 건장한 30대 장교도 헉헉거리며 올라가는 지옥코스다. 여기에 눈이 15cm나 쌓였는데도 개장했단다. 전화로 “가능하느냐”고 물었더니 “칠 만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잔디 라운딩보다 더 흥미진진
집 안에 박혀 있으면 뭐하나 싶어 근처에 있는 친구들과 일단 가봤다. 아주 재미있게도 워낙 추우니까 내린 눈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공이 눈 속에 박히지 않고 굴러가는 것이었다. 어쩌다 눈 속으로 공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들어간 구멍이 보였다. 구멍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공을 찾는 묘한 기분을 느껴봤는가. 아주 ‘쥑인다’. 그리고 얼음눈 위를 걸을 수밖에 없으니까 발이 눈 속에 파묻힐 일도 없었다. 이 골프장은 경사가 워낙 심하다 보니, 중간쯤 가면 공이 그냥 굴러 내려와 원래 쳤던 자리보다 더 밑으로 가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린은 더 가관이었다. 퍼팅으로 경사진 곳을 공략하면 무조건 굴러 내려왔다. 하여간 투 온에 식스 퍼트를 한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내리막 코스에서 드라이버를 치면 원 온이 아니라 그린을 지나 오비가 나는 판이니, 진정한 겨울 골프의 진수를 음미할 수 있었다. 서너 홀 지나 골프장 특성과 그날 페어웨이 상태를 몸으로 감을 잡은 다음 나 나름대로 작전을 짜서 라운딩을 했다. 경사진 곳에서는 굴러 내려가지 않을 정도의 위치까지 아이언으로 티샷을 한다, 세컨드 샷은 눈 위에서 그냥 치는데, 찍어 치지 않고 무조건 쓸어 친다, 원래 거리보다 두 클럽 짧게 잡고 친다, 퍼팅은 지나가게 하되 굴러 내려오며 들어가도록 친다 등 아주 다양한 작전이 나왔다.
잔디 위에서 치는 것보다 훨씬 흥미진진했다. 더구나 설원에 펼쳐진 광활한 눈밭에 조용히 떠 있는 빨간 공. 빨간 점을 향해 걸어가며 음미하는 기마민족의 유전자 속 본성이 꿈틀거리는 흥분! 이런 골프는 그야말로 순도 100%짜리 고수만이 즐기는 유희이다. 추위가 문제가 아니라, 기상과 지형을 자신이 선택해 즐기는 골프는 진정한 자연과의 교감이고 하늘과의 대화다. 어찌 겨울 골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날씨가 춥다고 동남아 원정 가시는 분, 겨울이면 골프채 손질해 묻어둔 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프로이드의 심리학 한 구절만 인용한다.
“인생이란 Fighting이냐 Flying이냐 두 가지 선택뿐이다. 도전과 도망 가운데 당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쪽은 도전이다.”
‘손자병법’에서는 명장을 이를 때 네 가지 조건을 다 갖춰야 한다고 했다. 산전(山戰), 수전(水戰), 습전(濕戰), 공전(空戰)을 다 치러본 장수가 명장이라는 것이다. 산전수전이야 많이 들어본 소리일 테지만 습전과 공전은 낯설다. 습전이란 습지에서의 싸움을 가리킨다. 손자가 활약하던 시기에는 비만 오면 맨땅이 개흙(진흙) 구덩이가 돼버려 습전이라고 이름 붙였을 것이다. 공전은 넓은 땅에서의 기동전을 뜻한다. 공중전이 없던 옛날에는 개활지 전투를 뜻했지만, 요즘에는 공전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이순신 장군도 보병으로 시작해 해상전투의 영웅이 되지 않았는가.
한마디로, 어떤 조건에서도 창의와 병법을 응용해 이겨본 장수가 명장이란 뜻인데, 지금 시대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동계전투에서 살아남은 자도 명장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제국 건설에 실패한 이유가 러시아 동장군(冬將軍) 위세에 주저앉았기 때문이고, 6·25전쟁에서는 미군이 겨울철 장진호 전투에서 그대로 녹고 말았다. 혹한기 인체적응지수가 낮았기 때문이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산전수전과 동계전이 있어야 제맛을 알 수 있다. 박세리 선수의 US 오픈 챔피언십 연못 샷은 물론, 비 오는 날에 하는 시합도 수전이다. 바람 많은 제주에서 서 있어도 흔들릴 정도의 강풍에서 하는 라운딩은 공중전이다. 여기에 더해 영하 15℃ 날씨에서도 라운딩을 해야 제대로 된 골프 명장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모든 악조건 속에서 천지자연과 함께하는 라운딩을 당신은 얼마나 해봤는가.
골프장 측에서 본다면 칭찬받을 만한 겨울 골프의 묘미를 풀어보자. 겨울 골프가 좋다는 이유로 초보자나 어르신은 함부로 나가서는 안 된다. 서너 번 뒤땅이라도 치면 손목과 발목을 다치기 십상이다. 여기서는 다만 명장 반열에 오르기 위한 고수들의 동계 골프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참고하길.
일단 겨울 골프 단점으로 거론되는 것은 날씨다. 몸이 굳어 있어 스윙 시 잘못하면 뼈가 부러질 수 있고, 걷다가 미끄러져서 넘어지기도 한다. 손이 시린 고통과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공의 방향, 그리고 눈 속에 파묻혀 찾지 못하는 공 등 여러 난관이 도사린다.
산전수전 그리고 동계전 묘미
이런 겨울 골프의 단점만 생각하고 장점은 떠올리지 못하는 골퍼가 의외로 많다. 스코어에 신경만 쓰지 않는다면 겨울 골프의 매력은 적지 않다. 먼저 부킹이 쉽다. 아쉬운 것은 골프장 측이지 내장객이 아니다. 떵떵거리며 부킹할 수 있다는 점이 첫 번째 매력이다.
둘째, 공기 중에 산소가 가장 많은 계절이 겨울이라는 점이다. 추운 날씨에 기온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의 신선함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몸으로 들어오는 산소 양이 다른 계절보다 1.5배는 많다.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것이 북극해의 산소 이동이 가장 많은 계절이 겨울이다. 한 라운드가 끝나고 운동을 통해 몸으로 들어온 산소 양을 느껴본다면 여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쾌적함을 한 번 맛보길 권한다.
셋째, 골프 동계훈련의 묘미를 터득할 수 있다. 언 땅에서의 샷은 정확도를 요구한다. 대충 공 뒤만 맞혀서는 원하는 방향과 거리를 낼 수 없다. 더불어 찍어 치는 횟수가 많아져 연습장에서보다 더 큰 정확도가 필요하다. 아이언 연습량은 다른 계절에 비할 바가 아니다. 여기에 더해 발이 미끄러지는 경우가 많아 하체 고정이라는 숙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신발 밑바닥을 털고 고정하려는 마음이 작용하는 것이다.
넷째, 어프로치를 할 때 굴려 치는 요령을 터득할 수 있다. 그린을 직접 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린 근처까지만 보내는 거리 조절로 온 그린 기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골프 격언 가운데 아마추어에게는 필수적인 말씀, “굴릴 수 있으면 굴려라”가 고민 없이 터득된다. 30m 정도 되는 거리도 퍼트로 굴리면 굴러간다. 실수할 확률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이를 겨울 실전을 통해 터득할 수 있다.
2012년 12월 19일 대통령선거일에 투표한 뒤 라운딩에 나섰다. 날씨가 엄청 추워 하루 전 골프장에 전화해봤더니, 무조건 칠 수 있다고 했다. 부킹 전쟁도 없으니 오라는 것인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날씨를 탓하는 골퍼는 아직 한참 멀었다며 몇몇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흔쾌히 가자고 난리다. 너희가 진정한 고수로고….
골프장에 도착하니 눈과 얼음 천국이었다. 드라이버 거리가 평소보다 20~30m는 더 나갔다. 까짓, 공을 잃어봤자 10개 내외다. 그린 상태도 눈을 다 치우지 않아 언 상태라 거리 감각이 확 사라졌다. 공이 굴러가면서 눈사람을 만드는데도 마냥 즐거웠다. 모두 욕심이 사라진 무심 상태로 운동을 했다.
복불복. 재수가 좋으면 딱 올라붙고, 재수가 없으면 그린 주변에서도 오비(OB)다. 내기게임을 하면서도 욕심을 내면 양파다. 보기만 하겠다고 그린 주변에 갖다 붙이면 희한하게도 파로 마무리된다. 그날 여름 골프에서도 싱글을 좀처럼 못 하는 친구 2명이 싱글을 했다. 무척 이상한 골프를 치는 우리 팀을 보고 캐디가 덕담을 건넸다.
“나 참, 겨울 골프에서 이런 실력을 보이는 분들을 처음 봤어요.”
2011년 겨울, 눈이 15cm나 쌓였는데도 문을 연 골프장이 있었다. 군 체력단련장이라 이름 붙은 선봉대 골프장이었다. 경기 용인 군사령부 안에 있는 골프장으로, 연세 든 분이 여기 왔다가는 초죽음 상태로 돌아간다. 말 그대로 체력단련장이다. 나인 홀을 두 바퀴 도는 코스로, 특히 1번 홀과 3번 홀, 6번 홀은 등산 홀이다. 건장한 30대 장교도 헉헉거리며 올라가는 지옥코스다. 여기에 눈이 15cm나 쌓였는데도 개장했단다. 전화로 “가능하느냐”고 물었더니 “칠 만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잔디 라운딩보다 더 흥미진진
집 안에 박혀 있으면 뭐하나 싶어 근처에 있는 친구들과 일단 가봤다. 아주 재미있게도 워낙 추우니까 내린 눈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공이 눈 속에 박히지 않고 굴러가는 것이었다. 어쩌다 눈 속으로 공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들어간 구멍이 보였다. 구멍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공을 찾는 묘한 기분을 느껴봤는가. 아주 ‘쥑인다’. 그리고 얼음눈 위를 걸을 수밖에 없으니까 발이 눈 속에 파묻힐 일도 없었다. 이 골프장은 경사가 워낙 심하다 보니, 중간쯤 가면 공이 그냥 굴러 내려와 원래 쳤던 자리보다 더 밑으로 가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린은 더 가관이었다. 퍼팅으로 경사진 곳을 공략하면 무조건 굴러 내려왔다. 하여간 투 온에 식스 퍼트를 한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내리막 코스에서 드라이버를 치면 원 온이 아니라 그린을 지나 오비가 나는 판이니, 진정한 겨울 골프의 진수를 음미할 수 있었다. 서너 홀 지나 골프장 특성과 그날 페어웨이 상태를 몸으로 감을 잡은 다음 나 나름대로 작전을 짜서 라운딩을 했다. 경사진 곳에서는 굴러 내려가지 않을 정도의 위치까지 아이언으로 티샷을 한다, 세컨드 샷은 눈 위에서 그냥 치는데, 찍어 치지 않고 무조건 쓸어 친다, 원래 거리보다 두 클럽 짧게 잡고 친다, 퍼팅은 지나가게 하되 굴러 내려오며 들어가도록 친다 등 아주 다양한 작전이 나왔다.
잔디 위에서 치는 것보다 훨씬 흥미진진했다. 더구나 설원에 펼쳐진 광활한 눈밭에 조용히 떠 있는 빨간 공. 빨간 점을 향해 걸어가며 음미하는 기마민족의 유전자 속 본성이 꿈틀거리는 흥분! 이런 골프는 그야말로 순도 100%짜리 고수만이 즐기는 유희이다. 추위가 문제가 아니라, 기상과 지형을 자신이 선택해 즐기는 골프는 진정한 자연과의 교감이고 하늘과의 대화다. 어찌 겨울 골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날씨가 춥다고 동남아 원정 가시는 분, 겨울이면 골프채 손질해 묻어둔 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프로이드의 심리학 한 구절만 인용한다.
“인생이란 Fighting이냐 Flying이냐 두 가지 선택뿐이다. 도전과 도망 가운데 당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쪽은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