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고 소개하고 쓰고 말하는 걸 직업으로 삼다 보니 종종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당혹스럽다. 그 많고 많은 좋은 뮤지션 가운데 어떻게 하나만 고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늘 새로운 음악을 듣고 그중 사람들에게 알릴 만한 음악을 발견하는 게 기쁨이죠.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대단함을 느끼게 되는 팀은 있습니다.”
바로 비틀스다. 팝음악을 하나의 주식회사에 비유하자면 가장 많은 지분을 소유한 이가 비틀스일 것이다. 음악계에 남긴 그들의 유산은 실로 거대하며, 지금도 대중음악에 끼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로큰롤부터 사이키델릭, 헤비메탈, 실험음악까지 비틀스는 당시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음악적 시도를 했으며, 그 시도가 훗날 온갖 장르로 발전해 대중음악 역사를 구성했다.
팝의 창조주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할 수 있으나 비틀스가 기여한 바는 기독교사에서의 예수에 비유할 만하다. 비틀스는 대중음악사에만 영향을 끼친 게 아니다. 오디오 역사에서도 그들의 존재는 중요하다. 1970년대 후반 CD가 발명됐지만 CD플레이어가 널리 보급된 건 80년대 후반이다. 87년 비틀스 앨범이 모두 CD로 발매된 영향이 크다. 리마스터링을 거쳐 나온 비틀스 CD를 들으려고 CD플레이어 수요 또한 폭증한 것이다.
그후 레코딩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 명반들이 리마스터링을 거쳐 더 좋은 소리로 재발매됐지만 비틀스의 ‘소리’만 유독 1987년에 머물러 있었다. 아이튠즈가 등장하면서 음악산업의 중심이 디지털 음원으로 넘어갔지만 비틀스는 음원 쪽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요지부동의 나날에 변화가 일어난 건 2009년이다. 그해 9월 9일을 아직도 기억한다. 리마스터링을 거쳐 재발매된 그들의 전작을 듣던 날을. 과거에 머물던 비틀스가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와 말을 거는 기분을 느꼈다. 1960년대 소리와 80년대 소리, 그리고 2009년 소리를 비교하며 놀라고 또 놀랐다.
2010년 11월 17일 애플 홈페이지 대문이 바뀌었다. ‘The Beatles, Now on iTunes’라는 문구와 함께 비틀스 사진을 내건 것이다. 비틀스 음반사인 애플 레코드와 애플의 오랜 상표권분쟁이 끝나고 비틀스와 애플이 협력을 시작한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디지털 음원으로는 결코 출시되지 않을 것 같던 비틀스를 온라인에서 ‘공식적으로’ 들을 수 있다는 의미가 더 컸다. 팝 르네상스를 열었던 이들이 이제 음원시대의 지배자가 됐음을 알리는 황제의 포고령이었다. 비틀스는 1962년 가을 첫 싱글 ‘Love Me Do’를 발매하며 데뷔했다. 영국 음악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후 지금까지 딱 50년. 비틀스의 나이이자 그들의 음악이 유행가에서 고전으로 숙성해온 시간이기도 하다. 그들의 음악을 처음으로 담았던 LP가 같은 음악을 새로운 소리로 담아 다시 돌아온다. 리마스터링 음원을 담은 CD 재발매와 아이튠즈 입성에 이어 11월 비틀스의 소리가 LP로 재발매되는 것이다.
2009년과 2010년 행보를 생각하면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LP를 다시 택했을까. 이 질문은 결국 ‘음악의 가치’라는 키워드로 풀 수 있을 것이다. 음악산업이 전반적으로 사양길을 걷는 지금 유일하게 성장하는 플랫폼은 LP다. 아날로그 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이 더 큰 이유다. 검정색 원반을 턴테이블 위에 걸고 조심스럽게 바늘을 얹는 과정, 가로세로 30cm의 종이에 표현된 커버아트를 감상하는 기쁨은 MP3는 물론이고 CD조차 줄 수 없는 의식이요, 아름다움이다.
하드디스크를 포맷하는 순간 사라지고, 음원 수만 개를 너무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시대의 피로감은 역으로 LP의 재발견을 통해 치유된다. 편리함과 퀄리티를 위해 발전해온 기술이 그런 가치만은 재현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틀스 소리의 LP 재발매는 편리하게 듣고 쉽게 교체하는 것이 아닌, 소장하고 아끼는 대상으로서의 음악에 대한 존중 같은 것이 아닐까. LP에 무관심하게 살아온 혹은 LP를 경험해보지 못한 지금 세대의 비틀스 팬들에게 바치는.
“늘 새로운 음악을 듣고 그중 사람들에게 알릴 만한 음악을 발견하는 게 기쁨이죠.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대단함을 느끼게 되는 팀은 있습니다.”
바로 비틀스다. 팝음악을 하나의 주식회사에 비유하자면 가장 많은 지분을 소유한 이가 비틀스일 것이다. 음악계에 남긴 그들의 유산은 실로 거대하며, 지금도 대중음악에 끼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로큰롤부터 사이키델릭, 헤비메탈, 실험음악까지 비틀스는 당시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음악적 시도를 했으며, 그 시도가 훗날 온갖 장르로 발전해 대중음악 역사를 구성했다.
팝의 창조주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할 수 있으나 비틀스가 기여한 바는 기독교사에서의 예수에 비유할 만하다. 비틀스는 대중음악사에만 영향을 끼친 게 아니다. 오디오 역사에서도 그들의 존재는 중요하다. 1970년대 후반 CD가 발명됐지만 CD플레이어가 널리 보급된 건 80년대 후반이다. 87년 비틀스 앨범이 모두 CD로 발매된 영향이 크다. 리마스터링을 거쳐 나온 비틀스 CD를 들으려고 CD플레이어 수요 또한 폭증한 것이다.
그후 레코딩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 명반들이 리마스터링을 거쳐 더 좋은 소리로 재발매됐지만 비틀스의 ‘소리’만 유독 1987년에 머물러 있었다. 아이튠즈가 등장하면서 음악산업의 중심이 디지털 음원으로 넘어갔지만 비틀스는 음원 쪽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요지부동의 나날에 변화가 일어난 건 2009년이다. 그해 9월 9일을 아직도 기억한다. 리마스터링을 거쳐 재발매된 그들의 전작을 듣던 날을. 과거에 머물던 비틀스가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와 말을 거는 기분을 느꼈다. 1960년대 소리와 80년대 소리, 그리고 2009년 소리를 비교하며 놀라고 또 놀랐다.
2010년 11월 17일 애플 홈페이지 대문이 바뀌었다. ‘The Beatles, Now on iTunes’라는 문구와 함께 비틀스 사진을 내건 것이다. 비틀스 음반사인 애플 레코드와 애플의 오랜 상표권분쟁이 끝나고 비틀스와 애플이 협력을 시작한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디지털 음원으로는 결코 출시되지 않을 것 같던 비틀스를 온라인에서 ‘공식적으로’ 들을 수 있다는 의미가 더 컸다. 팝 르네상스를 열었던 이들이 이제 음원시대의 지배자가 됐음을 알리는 황제의 포고령이었다. 비틀스는 1962년 가을 첫 싱글 ‘Love Me Do’를 발매하며 데뷔했다. 영국 음악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후 지금까지 딱 50년. 비틀스의 나이이자 그들의 음악이 유행가에서 고전으로 숙성해온 시간이기도 하다. 그들의 음악을 처음으로 담았던 LP가 같은 음악을 새로운 소리로 담아 다시 돌아온다. 리마스터링 음원을 담은 CD 재발매와 아이튠즈 입성에 이어 11월 비틀스의 소리가 LP로 재발매되는 것이다.
2009년과 2010년 행보를 생각하면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LP를 다시 택했을까. 이 질문은 결국 ‘음악의 가치’라는 키워드로 풀 수 있을 것이다. 음악산업이 전반적으로 사양길을 걷는 지금 유일하게 성장하는 플랫폼은 LP다. 아날로그 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이 더 큰 이유다. 검정색 원반을 턴테이블 위에 걸고 조심스럽게 바늘을 얹는 과정, 가로세로 30cm의 종이에 표현된 커버아트를 감상하는 기쁨은 MP3는 물론이고 CD조차 줄 수 없는 의식이요, 아름다움이다.
하드디스크를 포맷하는 순간 사라지고, 음원 수만 개를 너무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시대의 피로감은 역으로 LP의 재발견을 통해 치유된다. 편리함과 퀄리티를 위해 발전해온 기술이 그런 가치만은 재현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틀스 소리의 LP 재발매는 편리하게 듣고 쉽게 교체하는 것이 아닌, 소장하고 아끼는 대상으로서의 음악에 대한 존중 같은 것이 아닐까. LP에 무관심하게 살아온 혹은 LP를 경험해보지 못한 지금 세대의 비틀스 팬들에게 바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