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2010년 서점가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 열기는 해를 넘겨 TV로 무대를 옮겼다. 1월 3일 EBS가 신년기획으로 마련한 ‘하버드 특강-정의’(총 12강, 이하 정의) 첫 방송이 나가자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이 쏟아졌다. “열일곱 살 때 유학 기회가 있었는데 못 간 게 후회된다.” “필기를 하면서 TV를 보기는 처음이다.” 강의 참고서적과 대본 스크립트를 공유하는 열성 팬들도 등장했다.
1월 11에는 트위터에 ‘EBS 하버드 특강-정의에 대한 의견 공유/ 마이클 샌델 교수님’이라는 모임방이 개설됐다. 모임 개설자는 “실시간으로 강의에 대한 의견을 나눴으면 좋겠다”고 취지를 밝혔다. ‘정의’ 특강 팬을 자처하는 이들은 “책과 다른 샌델 교수의 명쾌한 강의와 열정적인 수업 분위기에 매료됐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강의 내용도 훌륭하지만 그 ‘방식’이 화제의 도마에 오른 것이다.
“강의 방식이 단순히 ‘토론식’이어서 강의가 활기찬 것은 아니었다. 상호작용을 능동적으로 이끌어내고, 강의의 흐름을 정확히 예측한 교수님의 지성이 강의에 활기를 더하고 있다.”
한 시청자가 강의 후 프로그램 게시판에 남긴 소감이다. 시청자들이 받은 감동의 핵심은 진지한 공방이 오가는 박진감 넘치는 강의 분위기다. ‘정의’는 하버드대 학부생 7000명 중 1000명이 수강하는 대형 강의. 샌델 교수는 수강생에게 둘러싸여 콘서트 하듯 강의를 진행한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권혁미 PD는 “내용보다 학생들의 진지한 눈빛, 과정을 중시하는 수업 방식 등이 주는 충격이 컸던 것 같다. 그 과정에 동참하는 데서 희열을 느꼈다는 시청자가 많다”라고 인기 요인을 풀이했다.
왜 국내엔 이런 강의 없나
시청 소감이 부러움 일색인 것만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왜 국내 대학에는 이런 강의가 없느냐”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대학 울타리에 있는 구성원들은 부러움과 안타까움이 반반 섞인 반응을 보였다. 취업 준비생인 이지민(25) 씨는 “강의를 보니 하버드가 왜 하버드인지 알겠더라. 저런 강의를 들었으면 지식의 폭과 깊이가 한층 성숙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수도권 대학의 한 교수는 “알맹이가 있는 강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준비가 잘된 학생들의 태도도 인상 깊었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정의’ 강의에서 샌델 교수는 질문자의 이름을 호명한다. 대형 강의는 토론식 수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불문율. 서울대 인기 교양강좌인 ‘현대사회와 심리’를 강의하는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수강생이 250여 명이지만 토론을 이끌어내기 힘들다”라며 강의 규모와 방식 간 타협점을 고민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대형 강의보다 소형 강의가 효율적이다. 학생이 많다 보면 토론이 쉽지 않다. 대형 강의는 강의 성격에 따라서 유불리가 갈리는 것 같다. 개론처럼 틀이 짜인 수업이 아니라, 교수가 주제를 갖고 나름의 스토리텔링으로 이끌어가는 과목은 유리할 수 있다. 샌델 교수의 ‘정의’도 자신의 관점으로 설계한 과목이라 임팩트가 강한 것 같다. 정형화된 교양수업은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힘들다.”
교수들의 소감은 부러움과 자조 사이를 오간다. 권혁미 PD에 따르면 상당수 교육자가 “정답만 강조하는 우리 교육에서 보기 힘든 강의”라는 반응을 전해왔다. 일부 교수는 수업 온도차를 학생들의 소극성 탓으로 돌렸다. 한 수도권 대학의 교수는 “한국 학생들은 토론식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다. 어릴 때부터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여왔는데, 대학이라고 다를 것이 있겠느냐”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수는 “반성이 먼저”라는 의견을 보였다. 다음은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김경집 교수의 이야기다.
교수와 학생 모두 변해야 가능
“우리는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 따로 논다. 격하게 말하면 가르치는 사람이 고민을 안 한다. 마케팅을 가르치면서도 수업을 잘 전달하는 방식은 고민하지 않는다. 교수법이나 강의에 대한 평가가 두루뭉술한 탓이다. 또 우리나라 교육방식은 텍스트 추종에 갇혀 있다. 훈련이 부족해 학생들이 색다른 수업 형식을 힘들어한다. 이 두 가지가 변하지 않는 한 교수에게 ‘정의’ 같은 강의를 하라면 손사래 치고, 학생들은 강의를 들으며 꾸벅꾸벅 졸 것이다.”
교수법에 대한 스승의 고민과 틀을 깨려는 제자의 노력이 있어야 변화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한편 교양 강의 의미 자체가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교양 강의는 형식적인 경우가 상당수다. 학교는 인건비를 줄이려 대형 강의를 개설하고, 학생들은 배움이 아닌 편의를 잣대로 교양 강의를 선택한다. 고려대를 졸업한 김모(25) 씨는 “시험이 쉽고 성적이 잘 나오는 교양 강의를 주로 들었다. 전공과목은 공부할 게 많아 상대적으로 ‘널널한’ 교양 강의와 섞어 들어야 한다. 강의 규모가 크면 친구들끼리 우르르 모여 듣기도 좋다”라고 설명했다.
국내에도 대학마다 “수강 안 하고 졸업하면 후회한다”는 명강의가 있다. 하지만 ‘정의’ 같은 스타급 강의는 드물다. 다행히 곧 그런 강의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교수들이 머리 싸매고 재미있으면서도 학습효과가 높은 강의 방법을 고민하고 있기 때문. 최인철 교수는 “일단 ‘정답이 없다’라고 분위기를 편안하게 조성한 뒤 매주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페이퍼 과제를 낸다. 글로 쓴 뒤에 말을 걸면 훨씬 잘한다. 대학원 수업에서는 찬반 팀을 나눠 토론을 시킨다”라고 말했다. 김경집 교수는 “과제와 수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 학습효과가 높아지는 걸 느낀다. 그만큼 강의 설계가 중요하다. 또 교수들이 오피스 아우어(office hour)를 성실하게 이행해 학생들과 친밀감을 높일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1월 11에는 트위터에 ‘EBS 하버드 특강-정의에 대한 의견 공유/ 마이클 샌델 교수님’이라는 모임방이 개설됐다. 모임 개설자는 “실시간으로 강의에 대한 의견을 나눴으면 좋겠다”고 취지를 밝혔다. ‘정의’ 특강 팬을 자처하는 이들은 “책과 다른 샌델 교수의 명쾌한 강의와 열정적인 수업 분위기에 매료됐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강의 내용도 훌륭하지만 그 ‘방식’이 화제의 도마에 오른 것이다.
“강의 방식이 단순히 ‘토론식’이어서 강의가 활기찬 것은 아니었다. 상호작용을 능동적으로 이끌어내고, 강의의 흐름을 정확히 예측한 교수님의 지성이 강의에 활기를 더하고 있다.”
한 시청자가 강의 후 프로그램 게시판에 남긴 소감이다. 시청자들이 받은 감동의 핵심은 진지한 공방이 오가는 박진감 넘치는 강의 분위기다. ‘정의’는 하버드대 학부생 7000명 중 1000명이 수강하는 대형 강의. 샌델 교수는 수강생에게 둘러싸여 콘서트 하듯 강의를 진행한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권혁미 PD는 “내용보다 학생들의 진지한 눈빛, 과정을 중시하는 수업 방식 등이 주는 충격이 컸던 것 같다. 그 과정에 동참하는 데서 희열을 느꼈다는 시청자가 많다”라고 인기 요인을 풀이했다.
왜 국내엔 이런 강의 없나
시청 소감이 부러움 일색인 것만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왜 국내 대학에는 이런 강의가 없느냐”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대학 울타리에 있는 구성원들은 부러움과 안타까움이 반반 섞인 반응을 보였다. 취업 준비생인 이지민(25) 씨는 “강의를 보니 하버드가 왜 하버드인지 알겠더라. 저런 강의를 들었으면 지식의 폭과 깊이가 한층 성숙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수도권 대학의 한 교수는 “알맹이가 있는 강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준비가 잘된 학생들의 태도도 인상 깊었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정의’ 강의에서 샌델 교수는 질문자의 이름을 호명한다. 대형 강의는 토론식 수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불문율. 서울대 인기 교양강좌인 ‘현대사회와 심리’를 강의하는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수강생이 250여 명이지만 토론을 이끌어내기 힘들다”라며 강의 규모와 방식 간 타협점을 고민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대형 강의보다 소형 강의가 효율적이다. 학생이 많다 보면 토론이 쉽지 않다. 대형 강의는 강의 성격에 따라서 유불리가 갈리는 것 같다. 개론처럼 틀이 짜인 수업이 아니라, 교수가 주제를 갖고 나름의 스토리텔링으로 이끌어가는 과목은 유리할 수 있다. 샌델 교수의 ‘정의’도 자신의 관점으로 설계한 과목이라 임팩트가 강한 것 같다. 정형화된 교양수업은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힘들다.”
교수들의 소감은 부러움과 자조 사이를 오간다. 권혁미 PD에 따르면 상당수 교육자가 “정답만 강조하는 우리 교육에서 보기 힘든 강의”라는 반응을 전해왔다. 일부 교수는 수업 온도차를 학생들의 소극성 탓으로 돌렸다. 한 수도권 대학의 교수는 “한국 학생들은 토론식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다. 어릴 때부터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여왔는데, 대학이라고 다를 것이 있겠느냐”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수는 “반성이 먼저”라는 의견을 보였다. 다음은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김경집 교수의 이야기다.
교수와 학생 모두 변해야 가능
“우리는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 따로 논다. 격하게 말하면 가르치는 사람이 고민을 안 한다. 마케팅을 가르치면서도 수업을 잘 전달하는 방식은 고민하지 않는다. 교수법이나 강의에 대한 평가가 두루뭉술한 탓이다. 또 우리나라 교육방식은 텍스트 추종에 갇혀 있다. 훈련이 부족해 학생들이 색다른 수업 형식을 힘들어한다. 이 두 가지가 변하지 않는 한 교수에게 ‘정의’ 같은 강의를 하라면 손사래 치고, 학생들은 강의를 들으며 꾸벅꾸벅 졸 것이다.”
교수법에 대한 스승의 고민과 틀을 깨려는 제자의 노력이 있어야 변화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한편 교양 강의 의미 자체가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교양 강의는 형식적인 경우가 상당수다. 학교는 인건비를 줄이려 대형 강의를 개설하고, 학생들은 배움이 아닌 편의를 잣대로 교양 강의를 선택한다. 고려대를 졸업한 김모(25) 씨는 “시험이 쉽고 성적이 잘 나오는 교양 강의를 주로 들었다. 전공과목은 공부할 게 많아 상대적으로 ‘널널한’ 교양 강의와 섞어 들어야 한다. 강의 규모가 크면 친구들끼리 우르르 모여 듣기도 좋다”라고 설명했다.
국내에도 대학마다 “수강 안 하고 졸업하면 후회한다”는 명강의가 있다. 하지만 ‘정의’ 같은 스타급 강의는 드물다. 다행히 곧 그런 강의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교수들이 머리 싸매고 재미있으면서도 학습효과가 높은 강의 방법을 고민하고 있기 때문. 최인철 교수는 “일단 ‘정답이 없다’라고 분위기를 편안하게 조성한 뒤 매주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페이퍼 과제를 낸다. 글로 쓴 뒤에 말을 걸면 훨씬 잘한다. 대학원 수업에서는 찬반 팀을 나눠 토론을 시킨다”라고 말했다. 김경집 교수는 “과제와 수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 학습효과가 높아지는 걸 느낀다. 그만큼 강의 설계가 중요하다. 또 교수들이 오피스 아우어(office hour)를 성실하게 이행해 학생들과 친밀감을 높일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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