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찬물이 쏟아졌다. 잠시만 기다리면 따뜻한 물이 나올 텐데 얼른 파란 꼭지를 잠그고 빨간 꼭지를 돌렸다. 이번에는 뜨거운 물이 쏟아졌다. 놀란 바보는 다시 빨간 꼭지를 끄고 파란 꼭지를 끝까지 돌렸다. 바보는 이렇게 온탕과 냉탕을 오가다 결국 목욕은 하지 못하고 물만 낭비한다. ‘통화주의자의 아버지’ 밀턴 프리드먼이 만들어낸 ‘샤워실의 바보(fool in shower)’라는 패러독스다.
미국의 대공황 때 루스벨트는 케인스의 처방을 받아들여 대대적인 공공지출을 감행했다. 그 결과 경기회생에는 성공하지만 대신 통제 불가능한 인플레이션을 맞았다. 이 문제는 중앙은행의 화폐 감소로 겨우 해결되고, 그 후 미국 중앙은행의 목표는 물가관리에 초점이 맞춰졌다. 화폐 증가가 인플레이션의 유일한 원인이라는 프리드먼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정부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댄다. 이를테면 노동조합의 압력에 따른 과도한 임금인상, 생산자들의 탐욕으로 인한 과잉수익, 타국의 잘못된 무역정책,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이들 각각의 논점에 대해 엄밀한 자료와 날카로운 검증을 거친 반박을 내놓았다. 임금상승은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아닌 결과며, 자본가들의 탐욕은 유효경쟁으로 지속될 수 없으며,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나 기타 이유도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는 증거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화폐, 즉 돈의 문제에 천착했다. ‘시카고학파’의 거두인 프리드먼은 케인지언의 시각과 달리 경제에서 정부의 조작과 개입을 최대한 억제하고 시장의 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자유시장경제의 수호자’라고 불린다. 물론 프리드먼의 견해가 전적으로 옳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최근 거품경제의 붕괴로 증명됐지만, 그렇다고 케인지언의 처방이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다. 경제학은 특성상 어느 견해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는 없다. 당장 최근의 경제위기만 해도 그렇다. 프리드먼의 통화이론을 신봉하던 미국의 중앙은행이 미친 듯 인쇄기를 돌려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는 행태’를 보면 경제학 이론 자체에 정답이 없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프리드먼의 화폐 이야기는 깊이 새겨둘 만하다. 그는 돈과 인플레이션의 관계에 대해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통찰력 있는 사람이다. 그의 저서 ‘화폐경제학’(한국경제신문 펴냄)은 실증과 영감으로 가득하다. 관념적인 학자들의 책엔 주장만 있고 실증이 없지만, 프리드먼의 이 책은 실증이 풍부하다.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어쩌면 프리드먼이 이 책을 쓰면서 현재의 상황에서 다시 읽힐 것을 예측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
지금 각국의 중앙정부는 화폐량을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다. 심지어 보수적인 일본 정부조차 최근 들어 양적 완화를 들고 나왔다. 이유는 단순하다. 쓸 곳은 많은데 쓸 돈이 없기 때문이다. 경제위기에 대한 처방이 케인지언의 처방을 따라가면서 정부의 공공지출이 확대되고 있지만 이미 정부는 빚더미에 올랐다. 결국 정부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돈을 찍어 그것을 보충하는 것 외엔 없다. 재정적자에 빠진 정부가 적자를 완충하면서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믿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돈을 찍어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부들은 가면을 쓰고 연막을 뿌리기도 한다. 재정을 민간은행에 지원하고, 그 자금이 정부국채를 사면 공식적으로 정부의 장부에는 빚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연막을 뿌린 비용은 투자은행이나 금융가의 몫으로 돌아간다. 프리드먼의 논지를 빌리면 올해 말 혹은 그 전후에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것이다. 출구전략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샤워실의 바보는 잠깐을 못 기다리고 찬물과 더운물을 번갈아 틀다 샤워를 망쳐버린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뜨거운 물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의 해답이 바로 이 책에 숨어 있다.
flowingsky@naver.com
미국의 대공황 때 루스벨트는 케인스의 처방을 받아들여 대대적인 공공지출을 감행했다. 그 결과 경기회생에는 성공하지만 대신 통제 불가능한 인플레이션을 맞았다. 이 문제는 중앙은행의 화폐 감소로 겨우 해결되고, 그 후 미국 중앙은행의 목표는 물가관리에 초점이 맞춰졌다. 화폐 증가가 인플레이션의 유일한 원인이라는 프리드먼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정부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댄다. 이를테면 노동조합의 압력에 따른 과도한 임금인상, 생산자들의 탐욕으로 인한 과잉수익, 타국의 잘못된 무역정책,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이들 각각의 논점에 대해 엄밀한 자료와 날카로운 검증을 거친 반박을 내놓았다. 임금상승은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아닌 결과며, 자본가들의 탐욕은 유효경쟁으로 지속될 수 없으며,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나 기타 이유도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는 증거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화폐, 즉 돈의 문제에 천착했다. ‘시카고학파’의 거두인 프리드먼은 케인지언의 시각과 달리 경제에서 정부의 조작과 개입을 최대한 억제하고 시장의 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자유시장경제의 수호자’라고 불린다. 물론 프리드먼의 견해가 전적으로 옳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최근 거품경제의 붕괴로 증명됐지만, 그렇다고 케인지언의 처방이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다. 경제학은 특성상 어느 견해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는 없다. 당장 최근의 경제위기만 해도 그렇다. 프리드먼의 통화이론을 신봉하던 미국의 중앙은행이 미친 듯 인쇄기를 돌려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는 행태’를 보면 경제학 이론 자체에 정답이 없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프리드먼의 화폐 이야기는 깊이 새겨둘 만하다. 그는 돈과 인플레이션의 관계에 대해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통찰력 있는 사람이다. 그의 저서 ‘화폐경제학’(한국경제신문 펴냄)은 실증과 영감으로 가득하다. 관념적인 학자들의 책엔 주장만 있고 실증이 없지만, 프리드먼의 이 책은 실증이 풍부하다.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어쩌면 프리드먼이 이 책을 쓰면서 현재의 상황에서 다시 읽힐 것을 예측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
지금 각국의 중앙정부는 화폐량을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다. 심지어 보수적인 일본 정부조차 최근 들어 양적 완화를 들고 나왔다. 이유는 단순하다. 쓸 곳은 많은데 쓸 돈이 없기 때문이다. 경제위기에 대한 처방이 케인지언의 처방을 따라가면서 정부의 공공지출이 확대되고 있지만 이미 정부는 빚더미에 올랐다. 결국 정부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돈을 찍어 그것을 보충하는 것 외엔 없다. 재정적자에 빠진 정부가 적자를 완충하면서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믿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돈을 찍어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부들은 가면을 쓰고 연막을 뿌리기도 한다. 재정을 민간은행에 지원하고, 그 자금이 정부국채를 사면 공식적으로 정부의 장부에는 빚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박경철<br> 의사
flowing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