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 프란케티가 만든 ‘테누타 디 트리노로’는 이탈리아의 슈발블랑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런 허영심은 양조계뿐 아니라 유통업계에도 널리 퍼져 있다. 자신이 파는 와인은 천연 상태의 완벽한 조건이라고 말하며 높은 가격을 정당화하려 한다. 허영으로 가득한 와인업계에서 아주 가끔, 거리낌 없이 자신의 치부를 밝히는 이를 만나면 흥미롭다. 미사여구나 치장 없이 묻는 말에 응답하는 그 사람이 만든 와인의 맛이 궁금해진다. 그 맛의 깊이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해보는 즐거움이 있다.
안드레아 프란케티는 테누타 디 트리노로(Tenuta di Trinoro)를 만들어 일약 스타가 됐다. 과거 레스토랑 경영자와 와인중개상, 와인애호가로 살 때보다 와인메이커로 살고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해 보인다. 1992년부터 양조를 시작해 이제 15년 정도의 경험을 지닌 그를 와인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품종 선택의 기이함에 있다. 그는 익히기 힘든 포도인 카베르네 프랑의 완숙미로 새로운 스타일의 레드를 탄생시켰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으려는 품종으로 탁월한 성과를 일궈낸 그의 와인은 응당 이탈리아의 컬트 와인이라 평할 만하다.
2003년에는 극심한 열매솎기로 9000병만 생산
토스카나 내륙에 있는 석회석 토양의 포도밭은 산에 둘러싸여 12월에도 낙엽이 지지 않을 만큼 따사롭다. 테누타 디 트리노로는 긴 일조시간을 통해 완숙된 카베르네 프랑과 메를로의 배합으로 ‘이탈리아의 슈발블랑’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극심한 열매솎기로 2003년에는 9000병밖에 생산하지 않았다.
와인의 명당 토스카나에서 하필이면 내륙 깊숙한 데를 골라 양조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산악전문가였던 할아버지가 일찌감치 봐둔 곳이며 여기서도 양조가 가능하기에 망설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품종 선택이나 포도밭 위치 선정 등에서 기존 질서에 타협하지 않으려는 도전정신은 미국의 추상미술가인 고모부 사이 톰블리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고모부의 작품을 여러 점 팔아 밭을 구매했다는 프란케티는 예술은 항상 좋은 결과를 잉태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요즘 프란케티는 시칠리아의 에트나 화산 지대로 건너가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2001년에 첫 출시한 파소피샤로(Passopisciaro) 역시 소수 품종인 네렐로 마스카레제로 만든다.
프란케티의 테누타 디 트리노로는 그처럼 이해하기 쉬운 맛과 향을 지녔다. 맛이 진하지만 물리지 않고, 향이 강하지만 신선하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와인이다. 솜씨 있는 유산발효 영향으로 벨벳처럼 부드러워진 맛의 물결이 끊임없이 파도친다. 삼켰는데도 남아 있는 것 같은 뒷맛은 간결하게, 그리고 오래오래 메아리친다. 명주실을 뽑는 듯 가늘고 곱게 이어지는 질감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