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시내 한 식품판매점의 김치 코너를 찾은 일본 주부들.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한국 음식들이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한식당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즐겨 찾는 일반 음식점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한국 요리요 반찬이다.
이중에서 일본에 가장 단단히 뿌리내린 요리는 역시 야키니쿠가 아닌가 싶다. 일본 전국에 있는 야키니쿠 가게는 약 2만8000개, 연간 매출액은 1조엔(약 10조원)으로 추산될 정도다. 한국인들은 야키니쿠 하면 ‘일본식 불고기’라고 부르고 싶어하나 일본인들은 한국 음식이 아닌 ‘일본 국민식(國民食)’으로 받아들인다. 어떤 일본인들은 야키니쿠를 ‘한국에서 맛볼 수 없는 한국 요리’로 설명하기도 한다. 자장면이나 짬뽕이 한국화했듯, 야키니쿠는 한국 음식이기는 하나 너무도 일본화한 음식이라는 것이다.
야키니쿠 다음으로 일본화한 한국 식품은 기무치(김치: 독자 가운데 굳이 기무치라고 표기해야 하냐고 언짢아할 분이 계실지 모르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인들이 그렇게 부르고 표기해서일 뿐이니 이해해주시길)일 것이다. 워낙 널리 알려진 탓에 일본 초등학생 중에는 김치를 일본의 전통음식으로 아는 경우도 있다. 도쿄 시내의 어느 편의점에 가도 김치를 살 수 있다. 그래도 김치 하면 ‘역시 한국 김치가 최고’라는 인식이 강해 요즘 일본회사들은 한국산과 구분하기 어려운 브랜드를 내놓고 있다. 일본 국내 김치 판매 1위 업체는 비잔(美山)이란 일본 회사인데 이 회사는 ‘윤가(尹家) 김치’란 브랜드로 일본인을 공략하고 있다. 또 한국을 찾는 일본인들 중에는 “일본에서 만든 김치의 맛은 한국 김치 맛과 전혀 다르다”며 한국 여행중에 반드시 김치를 사가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김치를 사기 위해 일부러 도쿄의 신주쿠나 우에노에 있는 한국식품 전문점을 찾기도 한다.
백화점들 한국산 돌솥비빔밥용 그릇 수입 판매
한국어 발음이 어려워 일본으로 건너오면서 이름이 바뀐 한국 식품도 있다. 그 대표가 각데기(깍두기)다. 또 ‘파’ 시리즈가 있다. 비빔파, 국파, 이시야키비빔파(돌솥비빔밥) 등. 긴자 빌딩가에 근무하는 20대 여사원들은 점심 때 비빔파를 즐겨 찾는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데다 시각적으로도 퍽이나 먹음직스럽기 때문. 이시야키비빔파의 인기도 높아 도쿄의 백화점들은 한국산 돌솥비빔밥용 그릇을 수입 판매한다.
도쿄 시내 신주쿠구 가쿠라자카에 있는 기자의 집 부근에있는 식품종합판매점 ‘키친코트’에는 한국 식품 코너가 따로 있다. 손님의 대부분은 일본인들인데도 떡볶이 떡국 신라면 컵라면 고춧가루 된장 쌈장 삼계탕 찌갯거리 등 한국식품이 즐비하다. 한국에서 수입한 것도 있고 재일교포, 혹은 일본인 식품회사가 만든 제품도 많다. 김치는 냉장 상태에서 보관해야 하고 워낙 일본 대중들에게 익숙한 까닭에 일본 식품과 함께 다른 코너에 진열돼 있다.
기자와 친한 50대 후반의 일본인 야마토 다카오씨는 직장에서 한국 관련 업무를 하다 한국 음식에 ‘중독’되고 말았다. 매운 한국 고추장 맛의 중독성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를 보고 느꼈다. 올해 초 정년퇴직을 한 야마토씨는 일본인을 상대로 김치를 판매하는 인터넷 회사를 차렸다. 그는 회사에 근무할 때도 며칠간 출장을 다녀오면 반드시 한식당을 찾아 얼큰한 김치찌개나 ‘국파’로 속을 풀고 귀가하곤 했다. 이처럼 한국 음식을 즐기던 그인지라 정년 후 제2의 인생을 김치와 함께하게 된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한국 음식을 즐기게 된 계기를 물어보면 대개 서울을 여행할 때 명동이나 청진동, 신촌 등지에서 먹어본 경험을 든다. 한국 음식의 세계화는 무엇보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을 맛으로 만족시켜 주는 일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