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러운 멋을 느낄 수 있는 아비뇽. [GettyImages]
사실 프로방스 여행은 노천카페에 앉아 사람들의 여유로움과 도시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완성된다. 그저 우두커니 서서 거리를 바라만 봐도 낭만 가득한 감성이 저절로 충전된다. 프로방스 여행은 보통 지중해 연안 항구 도시 ‘마르세유’에서 시작한다. 후기 인상파 화가 폴 세잔의 고향이자 작은 베르사유로 불리는 ‘엑상프로방스’를 거쳐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한 ‘아를’, 프랑스의 로마로 불리는 ‘님’, 그리고 교황청이 있던 중세도시 ‘아비뇽’까지 소박하고 아름다운 도시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사이사이 촘촘하게 박힌 작은 시골 마을들은 동화 속 세계로 여행하는 듯한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폴 세잔의 고향 엑상프로방스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도시 ‘엑상프로방스’. [GettyImages]
남프랑스의 대표 예술가 마을을 말할 때 엑상프로방스와 함께 거론되는 곳이 고흐가 사랑했던 마을 ‘아를’이다. 조그마한 시골 도시에 전 세계 여행자가 몰려드는 이유는 고흐가 아를에서 머물며 그렸던 300여 점의 작품 때문이다. 고흐는 우연히 들른 아를에 반해 ‘밤의 카페 테라스’ ‘아를의 원형 경기장’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붉은 포도밭’ ‘노란 집’ 등 소박하고 매혹적인 아를의 경치를 화폭에 담았다.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고흐가 남긴 작품 속 풍경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고 고요하게 사색을 즐기는 등 고흐와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먼 옛날로 돌아간 기분을 만끽한다. 특히 ‘밤의 카페 테라스’의 배경이 됐던 반 고흐 카페는 지금도 그때 모습 그대로 손님을 맞고 있다. 이곳에 앉아 포룸 광장에서 노을을 즐기며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아비뇽
아를에서 방향을 돌려 이제 중세도시 ‘아비뇽’으로 넘어갈 차례다. 아비뇽 여행은 교황청, 아비뇽 다리, 구시가 등 크게 세 곳에서 시작되는데 도시가 작고 아담해서 걸어 다니며 보기에 안성맞춤이다. 프랑스 남동부 론강 기슭에 자리한 아비뇽은 1309년부터 1377년까지 68년 동안 로마를 대신해 가톨릭 총본산인 교황청이 옮겨 와 있던 유서 깊은 도시다. 이 사건을 역사적으로는 ‘아비뇽 유수(幽囚)’라고 하는데, 유수는 ‘그윽한 곳에 갇혀 지낸다’라는 뜻으로 교황의 영역과 권능이 통제된 것을 고대 유대인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던 사건인 바빌론 유수에 빗댄 것이다. 이 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아비뇽 교황청’은 최고 영화를 누리던 당시를 말해주듯이 높이 50m, 두께 4m의 거대한 벽에 둘러싸여 있다. 그 규모가 상당해 웅장한 느낌을 주며, 유럽 고딕 양식 건물 가운데 가장 귀족적인 건축물로 손꼽힌다.
교황청을 빠져나와 성문을 나서면 아비뇽의 또 다른 랜드마크인 ‘아비뇽 다리’가 론강 위에 서 있다. ‘셍베네제 다리’로도 불리는 아비뇽 다리는 아비뇽과 론강 건너편의 빌뇌브레자비뇽을 잇는 다리였다. 원래는 길이가 900m나 되고 21개 기둥을 사이에 두고 22개의 거대한 아치가 이어져 있었지만, 17세기 말 재앙적인 홍수로 구조물이 거의 붕괴돼 현재는 아치형으로 된 교각 4개 등 일부만이 쓸쓸히 남아 있다. 다양한 음식점과 노천카페가 줄지어 있는 구시가지로 가면 고풍스러운 분위기에서 멋과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아비뇽에서는 해마다 여름이면 세계적인 공연예술 축제 ‘아비뇽 페스티벌’이 열린다. 프랑스 연극의 거장 장 빌라르가 1947년 창설했으며 각 나라를 대표하는 극단들이 수준 높은 춤과 뮤지컬, 현대음악 등을 공연한다. 축제가 열리는 시즌에는 도시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흥겹다. 가을 여행지를 알아보는 중이라면 프로방스가 좋은 해답이 될 수 있다.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