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년 백제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과 귀족들이 당나라로 압송된 뒤 주류성을 중심으로 백제부흥운동이 일어났다.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개암사 뒷산에 위치한 우금산성이 주류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의 복신 장군과 도침 승려는 주류성을 근거지로 삼고 부흥운동을 펼쳐나갔다. 백제부흥군은 대전과 충남 금산 방면을 수복하고 662년 5월에는 일본에 머물고 있던 왕자 부여풍(扶餘豊)을 데려와 왕위를 잇게 했다. 그러나 부흥군 수뇌부 사이에 불화가 싹터 복신이 도침을 살해하자 내부는 혼란에 빠진다. 이때 나당연합군이 공격해오자 다시 성을 빼앗기고, 수세에 몰린 백제부흥군은 그해 12월 지휘부를 주류성에서 김제 피성(避城)으로 옮겼다 다시 주류성으로 옮기는 등 우왕좌왕한다. 잇따른 패전 속에서 663년 6월 풍왕이 복신을 살해하자 백제부흥군은 더욱 혼란에 빠지고, 전열을 정비한 나당연합군은 수륙 양면으로 진격해 그해 8월 17일 주류성을 포위한다. 그리고 28일 백강구전투(白江口戰鬪)에서 백제부흥군은 왜(倭)의 지원군 2만 명과 연합해 나당연합군과 전투를 벌이나 크게 패하고, 풍왕은 고구려로 망명한다. 급기야 9월 7일 주류성이 함락되고, 임존성마저 함락됨으로써 4년에 걸친 백제부흥운동이 끝남과 동시에 백제 700년 역사도 막을 내린다.
위기 상황에서 분열하면 파멸을 초래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5년 전 겨울, 처절했던 백제부흥운동의 현장인 부안 우금산성을 하얗게 덮은 설경은 애절한 백제인의 한을 위로해주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