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홍태식]
신흥국 위기 가져온 ‘킹달러’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10월 5일 인터뷰에서 들려준 내용은 현실이 됐다. 한국은행은 10월 12일 기준금리를 연 2.5%에서 3.0%로 0.5%p 인상했다. 1999년 기준금리 도입 이후 사상 두 번째 빅스텝(0.5%p 인상)으로, 10년 만에 기준금리 3% 시대를 다시 열었다. 쉽게 꺾이지 않는 물가와 약세를 이어가는 원화가치, 미국의 3연속 자이언트 스텝(0.75%p 인상)에 따른 한미 기준금리 역전 폭 등이 이번 결정의 배경이다. 이로써 한국 기준금리는 3.0%, 미국 기준금리는 3.25%를 기록하게 됐다.미국의 고강도 긴축이 전 세계 경제를 어려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돌파하며 2008년 금융위기 때 수준까지 올랐다. 최근 환율 급등은 달러 강세에 기인한 면이 크지만 계속 오를 경우 수입 제품의 원화 환산 가격이 높아져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넘쳐나던 유동성 시기가 끝나고 경기침체 우려가 나오는 현 상황에서 박정호 특임교수에게 앞으로 펼쳐질 국내외 경제상황에 대해 물었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연구원 출신의 경제 전문가다.
많은 전문가가 ‘진짜 위기가 오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 앞에 어떤 위기가 놓였나.
“우선 미국 달러가 킹달러가 되면서 달러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은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졌다. 신흥국은 원유나 농축수산물을 달러를 주고 외국에서 사와야 하는데 환율이 높아지면 인플레이션 압박 요인으로 작용해 개인소비가 위축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국가의 모든 부채를 합쳤을 때 달러 부채 비중이 40%를 차지한다. 달러 부채는 당연히 달러로 갚아야 하는데 킹달러가 됐으니 상환 부담이 커진다. 또 개인과 기업이 모두 어려워지는 상황이 오면 신흥국에 있던 외화자금마저 미국 등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다. 이로 인해 채무불이행이나 금융위기, 외환위기를 겪는 국가가 늘어날 수 있다.”
이미 그런 상황에 놓인 국가가 많다고 한다.
“스리랑카, 파키스탄, 엘살바도르, 베네수엘라, 튀니지, 이집트, 발트 3국 등 20여 개국은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에 부채를 상환할 수 없는 상황이니 돈을 추가로 빌려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여기에 IMF에 조만간 도움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하는 국가를 포함하면 40여 개국이 채무불이행 위험을 안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지난해와 완전히 달라진 경제상황의 출발점은 미국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인가.
“미국의 금리인상 기조가 예상보다 고강도인 것도 있지만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돌출 원인이 주범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부터 다들 올해 물가가 심상치 않으리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높아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그런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여러 기초 원자재, 에너지 자원 수급이 어려워졌고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연쇄 작용을 일으켜 지금의 고공 물가 행진을 만들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경기침체를 감수하고도 금리인상을 강행하는 미국의 선택은 옳은 것인가.
“정부 입장에선 물가를 잡는 것이 최우선이다. 어느 나라, 어느 정부든 물가를 잡는 데 실패해 국민이 ‘우리나라는 물가를 잡을 능력이 없다’는 인식을 가지면 그야말로 모든 게 바뀌어버린다. 실례로 초인플레이션(한 달에 50% 이상 상승)을 경험한 몇몇 중남미 국가 국민은 저축을 하지 않는다. 수년 동안 모은 돈이 하루아침에 짜장면 한 그릇 가격밖에 안 된다면 누가 돈을 모으겠나. 그렇게 해서 국가의 지속적 성장을 돕는 자금원인 저축률이 떨어지면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된다. 지금 중남미 국가들이 빈곤 악순환, 저성장 악순환 형태를 보이는 이유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부의장이나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금리인상과 관련해 ‘미안하지만 지금은 물가를 잡아야 할 때’라는 표현을 쓴 데는 지금은 물가를 잡기 위해 일정 부분 구조조정이나 경기침체를 감내하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GETTYIMAGES]
경기침체보다 더 무서운 물가
미국 금리인상에 많은 나라가 동조 현상을 보이고 있다. 다른 선택을 할 수는 없나.“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정책 기조를 따라가야 하는 나라들은 공통점이 있다. 자국 시장 개방도와 대외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다. 특히 자국 시장 개방도가 높아 돈이 쉽게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경로에 있는 국가는 미국 중앙은행의 금리 기조에 부합하지 않으면 금리 차로 돈이 다 빠져나가니 맞출 수밖에 없다. 물론 위 2가지가 배제된 국가는 미국이 금리를 올리든 낮추든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처럼 개방도가 높고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미국 기조에 반하는 정책을 추구했을 때 위태로워질 수 있다. 최근 파운드화 폭락, 국채 금리 급등을 경험한 영국이 대표적 사례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의 감세정책이 어떤 문제를 가져온 것인가.
“지금 전 세계 경제를 설명하는 단어는 스태그플레이션이다.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국 총리는 그중 경기침체 방어에 방점을 찍었던 것 같다. 감세를 통해 돈을 풀어 경기침체를 막을 생각이었을 텐데, 사실 돈을 더 풀면 물가가 급등하고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면 경기부양 효과가 상쇄되는 상황이 온다. 그럼에도 영국 총리 입장에서는 영국 경기가 워낙 안 좋다 보니 경기를 진작해보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긴축과 경기부양을 동시에 할 수 있나.
“영국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현재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나라가 존재한다. 미국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미래 신산업을 육성하고 MZ세대를 대상으로 학자금 대출을 탕감하면서 소비 여력을 만들어주는 경기부양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긴축도 하고 있으니 영국 총리가 그 모습에 용기를 냈는지도 모르겠다.”
기업 구조조정 서막 오를 것
현재 한국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대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와 비교하면 선방하는 것 아닌가.“미국이 8~9%, 유럽이 10%대니 방어를 잘 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제조강국이라서 그렇다. 물건을 직접 생산하지 못하는 국가는 전량 외국에서 들여와야 해 물가인상에 취약한 구조지만, 한국은 국내에서 조달하는 부분이 많아 가격 방어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환율이 많이 오른 데다 물가 추계 특성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많은 분이 올해보다 내년에 물가상승률이 떨어지면 좀 낫겠지 생각하는데 물가는 전년 대비이기 때문에 올해 5%, 내년에 5% 오르면 2년 동안 10% 이상 오른 셈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오르기 시작한 물가는 잡히기 어렵다. 올해 임금 협상을 한 사람 가운데 높은 물가상승률을 예상하고 계약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내년 초에는 올해 손실분까지 더 올려달라고 요구할 테고, 그로 인한 상승분은 고스란히 제품이나 서비스에 전가되면서 물가상승 악순환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물가를 잡는 것이 최우선이라면 한국은행은 왜 빅스텝을 망설였나.
“한국은행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을 조사한 이래 올해 한계기업 수가 가장 많다고 한다. 가계부채도 마찬가지다. 사상 최대로 증가했는데 도무지 줄지 않는 상태다. 이렇게 가계부채와 기업부채가 심화된 상태에서 단기간에 금리를 올리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자산시장 폭락도 우려되는 상황인데.
“맞다. 한국 국민의 자산 70%가 부동산에 쏠려 있다. 이제 자산 거품이 꺼진다고 했을 때 대출 받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염려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가계부채보다 기업부채가 더 우려된다. 전 세계에서 1조 달러 이상 무역 규모를 가진 나라는 10개국에 불과하고, 그중에서도 흑자를 기록하는 나라는 3개국밖에 없는데 지금까지 한국은 그 모두에 해당했다. 하지만 신흥국발(發) 경제위기가 일어나면 우리 물건을 사줄 사람들이 없어져 기업 도산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사태가 이전 불황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개인의 잘못으로 일어난 불황이 아니라서 구조조정, 청산, 파산 이런 과정 없이 모든 기업이 생존할 수 있도록 유예해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일어났어야 할 구조조정이 내년에 맞물려 터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언제까지 외풍에 흔들려야 하나.
“한국은 구조적으로 자원이나 먹거리가 부족해 독자생존이 어렵다. 그동안 무역을 통해 벌어들인 달러를 바탕으로 굉장히 풍족한 삶을 누려왔는데 대외 의존적, 개방적 구조의 한계로 외부 위기에 취약한 것이 문제다. 대안은 내수시장을 키우는 것이고 독일처럼 인구가 1억 가까이 되면 어느 정도 굴러갈 텐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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