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인기를 끈 케이블채널 tvN의 ‘꽃보다 청춘’.
첫출발은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과 함께한 ‘꽃보다 할배’(‘꽃할배’)였다. 국민배우라는 수식어가 결코 과하지 않은 중견배우 4명은 나영석호에 탑승해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평균 연령 76세인 할배들이니, 나 PD는 여행을 제안하면서도 ‘무조건 안 된다고 하실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배들은 흔쾌히 오케이(OK)를 외쳤고 맏형 이순재는 “우리가 주인공이 되는 프로젝트를 기다려왔다”며 크게 기뻐하기까지 했다.
이후 여행지에서 펼쳐진 할배들의 좌충우돌은 예능프로그램의 주요 시청 타깃인 2030 젊은 여성층의 큰 관심을 끌어모았다. ‘꽃할배’는 케이블채널 tvN에서 방송됐음에도 지상파 못지않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렇게 나 PD는 예능프로그램에는 젊고 예쁜 연예인이 출연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쉽게 무너뜨렸다. ‘꽃할배’의 성공으로 그동안 대중문화에서 외면받던 실버 세대의 위상도 달라졌다. 나 PD는 “노인들로부터 ‘젊은이들이 우리를 무생물이 아닌 생명이 있는 존재로 봐주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곤 했다. 네 할배는 ‘꽃할배’를 보고 부모와 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젊은이의 얘기를 들으면 유독 기뻐했다”고 전했다.
나 PD는 ‘꽃할배’의 높은 인기 속에 2014년엔 ‘꽃보다 누나’(‘꽃누나’)와 ‘꽃보다 청춘’(‘꽃청춘’)을 선보였다. 윤여정과 고(故)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 등 여배우와 유희열, 윤상, 이적 등 한 세대를 풍미했으나 이제는 메인 스트림에 있다고는 보기 힘든 왕년의 스타들이 줄줄이 나영석호에 올랐다. ‘꽃누나’는 여전히 소녀 같은 누나들의 모습을, ‘꽃청춘’은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살아가지만 여전히 철부지 소년 같은 이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그러면서도 살면서 만나게 되는 생채기로 생긴 굳은살, 연륜이라는 이름의 지혜도 함께 보여줬다.
연출하는 작품마다 큰 화제를 몰고 오는 나영석 PD.
나 PD는 “출연자는 모두 자연인으로서 여행을 다녀왔는데 동세대 시청자들이 크게 공감하며 좋아하더라. 중년 남자인 나도 ‘꽃청춘’ 멤버들이 젊었을 때만큼 예민하지 못한 감수성을 놓고 한탄할 때 공감했고, 한편으로는 위안을 얻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제 시대의 주역 자리를 후배들에게 내주고 말았으나, 여전히 생동감 있게 살고 있는 존재라는 중·장년층의 얘기를 전한 이 예능프로그램은 오락적 기능을 넘어 세대 간 가교 구실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