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초기 프랑스는 국방비 수준이 비슷하던 독일의 침공에 하염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전 프랑스 정부가 독일의 안보위협을 경시한 탓이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국방비 절반인 160억 프랑을 쏟아 부어 1927년부터 10년간 구축한 총 750km 길이의 마지노선이 있었다. 첨단공법을 적용한 요새와 냉난방이 완비된 주거시설, 오락시설과 지하철도망까지 구비된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방어 요새였다.
그러나 독일군이 기갑전력으로 마지노선을 우회해 공격하자 프랑스의 군사전략은 간단히 붕괴했다. 이후로 ‘마지노선’이라는 용어는 혁신을 모르는 군대의 전근대적 사고와 관행을 일컫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전쟁이란 예나 지금이나 국방비나 무기, 병력 숫자만으로 그 승패를 논할 수 없다. 전쟁에서 이기는 군대는 다름 아닌 ‘혁신할 줄 아는 군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총참모부의 뛰어난 장군들과 장교단이 보여준 집단정신이 바로 ‘혁신’이었다.
63만 병력을 보유한 한국군은 250km의 휴전선과 그 인근 전방에 병력 절반인 30만 명을 배치하고 있다. 징병된 병사들과 의무복무 중인 초급 간부 위주로 운영되는 최전방 부대는 시간이 정지된 세계다. 많이 죽고 많이 죽이는 전근대적 소모전 교리를 고수하며 일렬로 죽 늘어서 경계하는 모습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진 게 없다.
프랑스 군대에게 마지노선 고수가 신념화돼 있었다면, 한국군은 여전히 6·25전쟁의 이미지에 고착돼 휴전선 방위에 국방력의 태반을 쏟아붓고 있다. 북한이 3일 전쟁으로 일컫는 ‘통일대전’ 시나리오를 표방하며 군사전략을 현대적으로 변환하는 중에도 그에 상응하는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전투 발전은커녕 유지에만 급급
무기체계가 현대화하면 군사전략도 변하게 마련이고, 전쟁 역시 현대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시공간이 확대된 현대 전쟁은 ‘아무 생각 없는’ 상당수 병사나 시간만 때우는 의무복무자의 영역이 아니다. 오직 전투에 대한 전문가, 프로 군인만이 수행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전쟁이다. 그러나 우리 병영을 보면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대가만 받고 징집된 병사를 주축으로, 자기 임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자신감도 결여된 초급 간부가 숫자만 채우는 형태에 가깝다. 장병들의 생명 가치를 총체적으로 경시한 채 윽박지르고 조여붙이며 지시만 내리면 국방은 저절로 된다는 고급 지휘관들의 안이한 사고와 타성만 답습되고 있다.
특히 지상군은 무기체계 현대화보다 병력 수를 유지하는 데 지극히 민감한 행태를 보이면서 국방을 현대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집요하게 방해해왔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은 전투 발전은커녕 기존 부대 유지에 급급한 오늘날의 현실이다. 잦은 사고와 병영 부조리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 역시 재래식 군대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한국군 지상군이 가진 집단의식의 부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거대한 비합리를 지탱하는 핵심 기제 가운데 하나가 국민개병주의, 즉 징병제라 할 수 있다. 이런 제도하에서 전방 부대는 억지로 끌려왔다는 피해 의식에 젖은 병사와 오지에서 고생하는 걸 서럽게 인식하는 초급 간부의 집합체다. 결국 가장 중요한 임무를 요구하는 안보 최전선에 가장 경험 없고 의욕이 결여된 아마추어만 잔뜩 우겨 넣은 모양새다. 마치 그것이 국가안보이자 애국심인 양 포장한 채 말이다.
한국군의 전면전 작전계획에 의하면 개전 초기 제1전투지역(FEBA 알파) 방위에서만 전방 병력의 40%가 손실된다. 10만 명이 넘는 숫자다. 최전방 전투원에게는 “진지를 사수하라”는 지상명령과 부대가 궤멸될 경우의 집결장소를 알려주는 것 외에는 특별한 작전지침이나 전문화한 교육과정이 없다. 일선 전투원에 대한 교육은 북한을 주적이라고 가르치는 정신교육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릇 전투원이라면 자신이 위치한 장소의 자연환경과 부대의 구실, 임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겠지만, 이 정도 전문성은 군 생활을 10년 가까이 한 중대장이나 가능할 것이다.
2002년 전방 1사단의 북한군 귀순 사건이나 2012년 22사단의 ‘노크 귀순’ 사건을 보자. 북한군이 “귀순하러 왔다”고 소리 지르고 총을 쏘며 자기 위치를 알려도, 이를 지켜보는 해당 부대원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생활관에 닥쳐 노크한 뒤에야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묻고 “귀순하러 왔다”고 답하자 비로소 안내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이었다. 1사단 귀순 사건 역시 중대장이 직접 나와 통문을 열고 안내하면서 비로소 종결됐다.
병력 운용 효율성 도모할 때
6월 22사단 총기난사 사건 당시 임모 병장을 검거하려고 출동한 병력이 자그마치 9개 대대였다. 이를 지휘하던 연대장은 “너무 많은 병력이 출동해 통제가 안 된다”며 군단에 직접 전화를 걸어 “내가 사태를 수습할 테니 방해가 되는 병력을 철수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실탄도 지급하지 않은 관심 병사들로 이뤄진 진압부대는 언론의 조롱거리가 됐다.
이런 수준의 최전방 부대가 과연 전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느냐에 대한 의문에 우리는 솔직해져야 한다. 지난 17년간 비무장지대(DMZ)에서 남북한 군의 교전이 없었고 총성이 멈춘 전방에서 큰 사건 없이 지냈기 망정이지, 남북한 군사 대치가 심각해져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한다면 어찌될 것인가. 군 당국은 이에 대해 어떤 답을 갖고 있는가.
대만과 러시아 군대는 병영 내 구타와 가혹행위로 악명 높았다. 공교롭게도 모두 징병제 국가였다. 이에 따라 대만군은 2017년 완전 모병제, 러시아군은 2020년까지 90% 모병제로 전환한다. 책임감이 부족한 징집병에게 전투력을 기대하기란 어렵고, 이들의 직업윤리와 도덕성이 붕괴되는 것을 막을 길이 마땅치 않다는 인식은 이제 세계적인 추세다. 한국만 이에 대한 고민을 회피할 이유가 없다.
많은 군사전문가는 모병제 전환에 대한 논의가 한국군으로 하여금 더욱 현대적인 전쟁을 수행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귀한 자원을 제대로 써먹기 위해 병력 운용의 효율성을 도모할 때라야 비로소 군 운영이 선진화될 수 있다는 취지다. 곳곳에 숨은 유휴 병력을 식별해 효율화해야 한다면, 무엇보다 군 스스로 현대적 전쟁 수행 태세로 혁신하는 동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만이 한국군의 유일한 살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일군이 기갑전력으로 마지노선을 우회해 공격하자 프랑스의 군사전략은 간단히 붕괴했다. 이후로 ‘마지노선’이라는 용어는 혁신을 모르는 군대의 전근대적 사고와 관행을 일컫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전쟁이란 예나 지금이나 국방비나 무기, 병력 숫자만으로 그 승패를 논할 수 없다. 전쟁에서 이기는 군대는 다름 아닌 ‘혁신할 줄 아는 군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총참모부의 뛰어난 장군들과 장교단이 보여준 집단정신이 바로 ‘혁신’이었다.
63만 병력을 보유한 한국군은 250km의 휴전선과 그 인근 전방에 병력 절반인 30만 명을 배치하고 있다. 징병된 병사들과 의무복무 중인 초급 간부 위주로 운영되는 최전방 부대는 시간이 정지된 세계다. 많이 죽고 많이 죽이는 전근대적 소모전 교리를 고수하며 일렬로 죽 늘어서 경계하는 모습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진 게 없다.
프랑스 군대에게 마지노선 고수가 신념화돼 있었다면, 한국군은 여전히 6·25전쟁의 이미지에 고착돼 휴전선 방위에 국방력의 태반을 쏟아붓고 있다. 북한이 3일 전쟁으로 일컫는 ‘통일대전’ 시나리오를 표방하며 군사전략을 현대적으로 변환하는 중에도 그에 상응하는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전투 발전은커녕 유지에만 급급
무기체계가 현대화하면 군사전략도 변하게 마련이고, 전쟁 역시 현대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시공간이 확대된 현대 전쟁은 ‘아무 생각 없는’ 상당수 병사나 시간만 때우는 의무복무자의 영역이 아니다. 오직 전투에 대한 전문가, 프로 군인만이 수행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전쟁이다. 그러나 우리 병영을 보면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대가만 받고 징집된 병사를 주축으로, 자기 임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자신감도 결여된 초급 간부가 숫자만 채우는 형태에 가깝다. 장병들의 생명 가치를 총체적으로 경시한 채 윽박지르고 조여붙이며 지시만 내리면 국방은 저절로 된다는 고급 지휘관들의 안이한 사고와 타성만 답습되고 있다.
특히 지상군은 무기체계 현대화보다 병력 수를 유지하는 데 지극히 민감한 행태를 보이면서 국방을 현대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집요하게 방해해왔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은 전투 발전은커녕 기존 부대 유지에 급급한 오늘날의 현실이다. 잦은 사고와 병영 부조리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 역시 재래식 군대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한국군 지상군이 가진 집단의식의 부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거대한 비합리를 지탱하는 핵심 기제 가운데 하나가 국민개병주의, 즉 징병제라 할 수 있다. 이런 제도하에서 전방 부대는 억지로 끌려왔다는 피해 의식에 젖은 병사와 오지에서 고생하는 걸 서럽게 인식하는 초급 간부의 집합체다. 결국 가장 중요한 임무를 요구하는 안보 최전선에 가장 경험 없고 의욕이 결여된 아마추어만 잔뜩 우겨 넣은 모양새다. 마치 그것이 국가안보이자 애국심인 양 포장한 채 말이다.
한국군의 전면전 작전계획에 의하면 개전 초기 제1전투지역(FEBA 알파) 방위에서만 전방 병력의 40%가 손실된다. 10만 명이 넘는 숫자다. 최전방 전투원에게는 “진지를 사수하라”는 지상명령과 부대가 궤멸될 경우의 집결장소를 알려주는 것 외에는 특별한 작전지침이나 전문화한 교육과정이 없다. 일선 전투원에 대한 교육은 북한을 주적이라고 가르치는 정신교육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릇 전투원이라면 자신이 위치한 장소의 자연환경과 부대의 구실, 임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겠지만, 이 정도 전문성은 군 생활을 10년 가까이 한 중대장이나 가능할 것이다.
2002년 전방 1사단의 북한군 귀순 사건이나 2012년 22사단의 ‘노크 귀순’ 사건을 보자. 북한군이 “귀순하러 왔다”고 소리 지르고 총을 쏘며 자기 위치를 알려도, 이를 지켜보는 해당 부대원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생활관에 닥쳐 노크한 뒤에야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묻고 “귀순하러 왔다”고 답하자 비로소 안내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이었다. 1사단 귀순 사건 역시 중대장이 직접 나와 통문을 열고 안내하면서 비로소 종결됐다.
병력 운용 효율성 도모할 때
6월 22사단 총기난사 사건 당시 임모 병장을 검거하려고 출동한 병력이 자그마치 9개 대대였다. 이를 지휘하던 연대장은 “너무 많은 병력이 출동해 통제가 안 된다”며 군단에 직접 전화를 걸어 “내가 사태를 수습할 테니 방해가 되는 병력을 철수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실탄도 지급하지 않은 관심 병사들로 이뤄진 진압부대는 언론의 조롱거리가 됐다.
이런 수준의 최전방 부대가 과연 전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느냐에 대한 의문에 우리는 솔직해져야 한다. 지난 17년간 비무장지대(DMZ)에서 남북한 군의 교전이 없었고 총성이 멈춘 전방에서 큰 사건 없이 지냈기 망정이지, 남북한 군사 대치가 심각해져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한다면 어찌될 것인가. 군 당국은 이에 대해 어떤 답을 갖고 있는가.
대만과 러시아 군대는 병영 내 구타와 가혹행위로 악명 높았다. 공교롭게도 모두 징병제 국가였다. 이에 따라 대만군은 2017년 완전 모병제, 러시아군은 2020년까지 90% 모병제로 전환한다. 책임감이 부족한 징집병에게 전투력을 기대하기란 어렵고, 이들의 직업윤리와 도덕성이 붕괴되는 것을 막을 길이 마땅치 않다는 인식은 이제 세계적인 추세다. 한국만 이에 대한 고민을 회피할 이유가 없다.
많은 군사전문가는 모병제 전환에 대한 논의가 한국군으로 하여금 더욱 현대적인 전쟁을 수행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귀한 자원을 제대로 써먹기 위해 병력 운용의 효율성을 도모할 때라야 비로소 군 운영이 선진화될 수 있다는 취지다. 곳곳에 숨은 유휴 병력을 식별해 효율화해야 한다면, 무엇보다 군 스스로 현대적 전쟁 수행 태세로 혁신하는 동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만이 한국군의 유일한 살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