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DNA가 흐르는 재일교포 3세라는 선입관 때문일까.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이런 우호적인 느낌은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바뀌지 않았다.
오야마 겐타로(72) 회장이 이끄는 아이리스 오야마사(社)는 아마존 저팬 매출 2위(3조6000억 원)인 일본 최대 생활용품 기업이자, 해외에 16개 제조시설을 갖춘 글로벌 기업이다. 오야마 회장은 6월 1일 인천자유경제구역에 5000만 달러(약 560억 원)를 투자하는 양해각서를 인천시와 체결했다.
급여는 올리고, 인건비는 낮추고
그의 입지전적 성공담은 일본의 유력 경제신문 ‘니혼게이자이’에 31회에 걸쳐 연재된 ‘나의 이력서’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최근 국내에도 그의 자서전(‘도전에는 마침표가 없다’)이 출간됐다. 19세에 부친을 여의고 사업에 나선 그의 삶은 도전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자서전 내용 가운데 1973년 오일쇼크 때 오사카 공장 문을 닫은 이후 ‘다시는 직원을 해고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그대로 실천했나.
“회사가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있을 때 그런 일이 있었다. 이후 해고를 하지 않는다는 경영이념을 세웠다. 그러려면 늘 이익을 내는 회사가 돼야 했고 실제로 그렇게 해왔다.”
▼늘 이익을 낼 순 없다. 손실을 볼 때는 해당 분야의 직원들을 정리할 필요도 있을 텐데.
“오일쇼크 이후 단 한 번도 해고하지 않았다. 성장보다 이익을 내는 데 주력했다.”
한국의 불안한 고용시장을 생각하면 그의 얘기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매년 일정 수준으로 꾸준히 성장해온 회사이기에 가능한 것일까.
▼한국에서는 기업이 위기에 빠지면 해고 같은 인건비 절감부터 생각한다.
“미국 기업문화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미국 기업은 적자가 나지 않아도 비용이 상승하면 인원을 줄인다.”
그의 인상은 시골 할아버지처럼 친근하고 온화하다. 매번 엷은 미소를 머금고 답변하니 질문자의 마음도 편안하다. 어떤 공격적 질문을 해도 화낼 것 같지 않다. 이런 게 내공이고 고수의 경지일까.
▼경영원칙 가운데 ‘급여는 높게, 인건비는 낮게’가 있더라. 이거, 모순된 얘기 아닌가.
“생산성을 높이고자 자기계발에 필요한 급여는 올리고 전체 비용에서 인건비는 낮춘다는 뜻이다.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배석한 송순곤 아이리스코리아 대표가 부연한다.
“급여를 올리면 더 열심히 일해 매출이 증가하는 선순환을 얘기하는 것이다. 지난 35년간 연평균 10%씩 매출이 늘었다. 이익의 5%는 일 잘하는 직원들에게 더 얹어준다.”
▼한국은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 사회적 양극화의 원인이기도 하다. 일본은 어떤가.
“필요에 따라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 노동자를 고용한다. 하지만 일할 곳이 많지 않을 때 얘기다. 일본 기업은 활발하게 구인활동을 한다. 앞으로 정규직 고용이 더 늘어날 것이다.”
▼아이리스는 어떤가.
“정규직 60%, 비정규직 40%이다. 풀타임이 안 되기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것뿐이다.”
송 대표가 거들었다.
“한국의 비정규직 개념과는 다르다. 차별이 아니라 직무가 다를 뿐이다. 처음부터 그걸 용인하고 들어온다.”
▼한국에선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단지 신분이 다르다는 이유로 낮은 급여를 받는 등 차별이 심하다.
“그런 개념의 비정규직이 일본에도 있다. 비정규직에게 정규직과 같은 수준의 급여를 주는 개혁을 추진 중이다.”
모든 직원과 대차대조표 공유
▼아이리스에도 노동조합이 있나.“당연하다. 하지만 회사와 대립한 적이 없다. 늘 회사 방침대로 따라줬다.”
세상에 이런 노조도 있다니. 믿기지 않아 다시 물어봤다.
▼단 한 번도 노조가 집단행동에 나선 적이 없나.
“없다. 급여 불만도 없고.”
송 대표가 다시 나섰다.
“열린 경영을 하기 때문이다. 대차대조표를 모든 직원과 공유한다. 속이는 게 없으니 직원들이 회사를 신뢰한다.”
▼아이리스 정도의 기업이면 사회공헌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역사회나 국가를 위해 어떤 일을 하나.
“정부와 미야기현의 위원으로 일한다. 대학에서 고문도 맡고 있다. 업무의 절반이 사회공헌과 관련돼 있다. 회사는 기부를 많이 하고 지역의 스포츠·문화사업도 지원한다.”
▼지난해 사회공헌에 지출한 금액이 얼마나 되나.
“30억 엔(약 300억 원)쯤 된다. 이런 얘기는 일본에서는 부끄럽다. 별로 내세우고 싶지 않다.”
아이리스가 사회공헌 기업의 이미지를 갖게 된 계기는 2011년 발생한 동일본 지진이다. 당시 아이리스는 이재민에게 무료로 생활용품을 공급하고 인재육성학교를 세웠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에 3억 엔을 기부해 좋은 평판을 얻었다. 평판은 곧 매출 상승과 회사 발전으로 이어졌다. 송 대표가 “니혼게이자이 신문에서 오야마 회장이 한국계인 걸 알면서도 31회나 자전적 이야기를 연재한 건 그만큼 일본 사회에서 인정받는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오야마 회장은 1945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27년 일본으로 건너온 그의 할아버지는 경남 함안 출신이다. 8남매 중 장남인 그는 매년 함안을 방문해 제사를 지낸다. 작은 플라스틱공장을 운영하던 그의 아버지는 42세에 세상을 떠났다. 혹시 한국인 핏줄이라고 차별받지는 않았을까.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한국의 많은 대졸 청년이 취업난에 허덕인다.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한국 사회의 문제점 중 하나는 지나치게 학력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화이트칼라에 대한 욕망이 강하다 보니 대학 졸업 후 현장에 가기 싫어한다. 중요한 건 일이다. 일류 대학 나와도 현장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일 중심으로 취업하기를 권하고 싶다.”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 촬영 때 여담처럼 물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그의 대답이 웃음을 자아냈다. “소설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남의 얘기보다 내 인생 스토리에 더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