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5월 31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의 대북 접촉을 승인했다. 6·15남측위는 접촉 승인이 나자 곧바로 6·15북측위에 팩스를 보내 “6·15민족공동행사를 개성에서 열고 남측 참가 인원은 수십 명으로 한다”는 의사를 타진했다. 하지만 북측은 6·15민족공동행사의 평양 개최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정부가 남북 접촉을 허용하자 앞으로 남북의 사회·문화 교류가 대폭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공동행사 허용에는 신중한 태도
6·15남측위는 4월 중국 선양에서 6·15북측위와 실무 협의를 갖고 행사와 관련해 논의한 바 있다. 대북 접촉으로 행사 내용과 대표단 규모가 결정되면 6·15남측위는 방북 신청을 할 예정이다. 북한에서 남북 6·15민족공동행사를 치르는 건 2008년 6월 이후 9년 만이다. 6·15민족공동행사는 분단 이후 최초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6·15 공동선언을 발표한 것을 기념해 이듬해부터 매년 남북을 오가며 여는 행사다. 노무현 정부 때는 통일부 장관이 참석하기도 했다.하지만 통일부는 6·15민족공동행사 허용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6월 1일 통일부 당국자는 “예단하지 않는 게 좋겠다”면서 “구체적으로 방북 신청을 하면 검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6·15남측위가 북측과 합의한 내용이 먼저 나와야 한다. 행사 목적이나 장소, 형식, 참가 인물 등 여러 변수가 있어 당장 방북 승인이 된다, 안 된다 얘기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이렇게 고심하는 이유는 남북 민간단체가 북한에서 공동행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기조를 흩뜨리는 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6·15 대북접촉 승인 결정도 정부 내 이견이 적잖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통일부는 5월 26일 민간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접경지역 말라리아 남북 공동방역사업’ 추진을 위한 북한 주민 접촉을 승인한 바 있다. 이는 지난해 1월 북한 핵실험으로 정부가 남북 민간교류를 중단한 이후 처음이다.
이 단체는 2008년 5월부터 2011년 8월까지 4년간 사업비 21억 원을 투입해 말라리아 공동방역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접경지역인 경기, 인천, 강원의 말라리아 감염환자 수는 2007년 1616명에서 2013년 339명으로 약 80% 감소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2012년 사업 중단 이후 남한 접경지역 말라리아 환자 수가 2014년 458명, 2015년 545명, 지난해 492명으로 늘었다.
특히 남한 말라리아 환자의 80% 이상이 북한발(發) 말라리아 매개 모기에 의해 감염된 것으로 추정돼 공동방역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은 “5월 26일 오후 북한 측에 말라리아 공동방역 관련 내용을 팩스로 보냈다. 북한이 내부 절차를 거쳐야 해 답을 받으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6월 초 물자를 반출하고 10일 평양 방문을 추진 중이지만 지금 속도라면 계획대로 되기는 다소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통일부에는 20여 개 단체가 대북접촉 신청을 한 상태다. 이번 6·15남측위의 대북접촉이 승인되면서 이들 단체에도 접촉 승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 어린이에게 의료, 영양, 교육을 지원하는 ‘어린이어깨동무’도 방북 준비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어린이어깨동무 관계자는 “대북접촉 승인에 이어 조만간 방북 길이 열리면 그동안 지원했던 평양 어깨동무어린이 병원, 평양원산 어깨동무 콩우유공장, 평양 어깨동무 학용품공장 등의 상태를 파악하고 지원 방향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독교계도 남북 교류에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통일부에 대북접촉 신청서를 내고 실무단이 방북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교류해온 NCCK는 방북 승인을 받으면 20여 명의 방문단을 꾸릴 예정이다. NCCK는 2014년 이후 부활절 기도문 공동작성 등 제한적 차원에서 교류하며 관계를 이어왔다.
남북관계 개선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다. 올해 들어 아홉 번째,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주 연속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해 안팎의 우려를 낳고 있다. 북한은 5월 14일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을 시작으로 일주일 만인 21일에는 사거리 2000km로 추정되는 ‘북극성 2형’을 발사했다. 29일에는 스커드 계열로 추정되는 단거리미사일을 강원 원산 일대에서 발사했는데 459km를 날아가 동해에 떨어졌다.
3주 연속 장거리미사일 발사
북한이 추가 미사일 도발에 나설 경우 6·15남측위의 방북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북 퍼주기 논란이 일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통일 주춧돌을 놓고자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찾겠다는 이른바 ‘文샤인’ 대북민간교류정책이 시험대에 오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이명박 정부는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이 발생하자 모든 남북 교역과 인적 교류를 중단하는 5·24조치를 단행했고,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2월 10일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잇따른 탄도미사일 도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분위기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인도적 지원과 민간교류는 옳은 방향이다. 더 나아가 북핵 문제 같은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가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데, 남북 간 대화 채널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남북 교류 협력을 적극적으로 넓히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편 남북 민간교류에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개성공단기업협회도 최근 이사회를 통해 방북 신청을 결의하고 내부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장 방북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인도적 지원은 여러 국가가 동참하고 있어 국제사회의 제재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개성공단은 경협과 관련해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남북 상황과 여러 사항을 고려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우라고 판단될 때 방북 승인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