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정치 3자 정립구도
현시점에서 연말 대선을 가늠해볼 수 있는 첫 번째 키워드는 ‘제3의 대안(third option)’이다. 이의 현재적 표현은 ‘안철수 현상’이다. 1995년 박찬종 전 의원은 지지율 1위의 무소속 후보로 서울시장에 도전했다 결국 떨어졌다. 정주영 전 국민당 대표도, 이인제 자유선진당 의원도 한때 돌풍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어김없이 실패했다.
지난해 10월 마침내 성공한 사례가 나왔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시민후보’로 도전해 기성 정당의 후보를 경선과 본선에서 거푸 꺾고 서울시장이 됐다. 이 하나의 지표만 보면 제3의 대안을 모색하는 여론 흐름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하겠다. 그러면 가능성 영역에만 머무르던 제3의 대안이 대선에서도 현실화할 수 있을까. 분명한 사실은 무소속이나 제3당 후보로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이다.
방법은 양대 정당의 후보가 되든지, 아니면 박원순 시장처럼 무소속이더라도 야권 단일후보가 되는 것이다. 최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행보를 보면 1952년 미국 대선의 아이젠하워 후보처럼 시민후보를 콘셉트로 하는 대선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의할 것은 이 전략이 무소속 후보로 가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성 정당과 거리를 두다 대선 레이스 직전에 특정 정당의 후보직을 차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전략의 관건은 기성 정당의 경선에 참여하든, 박원순 시장처럼 시민후보로서 정당 후보와 최종 단일화 경선을 벌이든 자신의 운신 폭을 최대한 넓히는 것이다. 안 원장의 성패는 어떤 경로를 거치든 제3의 대안이라는 의미를 얼마나 충분히 담보하느냐에 달렸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구도는 3자 정립이다. 정치권 내 보수와 진보의 대결, 그리고 장외에 있는 제3의 흐름이 그것이다. 그동안 잠복했던 제3의 흐름은 2011년 서울시장선거에서 강력한 실체로 자리 잡았다. 당시 제3의 흐름은 정치권 내 진보 진영과 결합해 보수를 제압했다. 박원순 후보가 나경원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후보보다 7.2%포인트 더 얻은 것은 3자 정립구도가 2대 1 구도로 바뀌었을 때의 위력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올해 초 야권이 통합 과정을 거치면서 제3의 흐름 일부가 야권에 합류했다. 게다가 정당의 무대인 총선도 있었다. 이 때문에 제3의 흐름은 가시권 밖으로 밀려나 약화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제3의 흐름이 다시 움직인다. 안철수 원장이 ‘강연정치’를 펼치는 것이다. 총선이라는 블랙홀 탓에 일시적으로나마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져야 하는 시기를 헤쳐 가려는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그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제3의 흐름을 확장하려 든다면 기성 정당으로선 상당히 곤혹스러울 것이다. 안 원장이 개인이 아니라 ‘안철수 현상’으로 말해지는 제3의 흐름을 기존 정당이 효과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잡아채지 않으면 대선 지형의 유동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당내 경쟁자를 완전히 압도할 정도의 뚜렷한 대권주자가 없는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 등 야권에는 심각한 위협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의 존재 때문에 민주당 소속 후보의 지지율은 마치 유리천장에 막힌 듯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또 제3의 후보 주변에 모였던 유권자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여권으로 이동할 소지도 있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상당한 지지율을 보이던 고건 전 총리가 대선 무대에서 퇴장하자 그 지지층 중 상당수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로 이동한 것이 좋은 예다. 따라서 여야 공히 제3의 흐름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대선 판세가 달라질 전망이다. 안 원장이 대선 후반까지 상당한 지지율을 유지하다 특정 진영의 손을 들어주지 않은 채 포기해버리면 민주당은 황당한 처지에 몰릴 수도 있다. 닭 쫓다 지붕 쳐다보는 꼴에 다름 아니다.
# 보수의 유효후보 vs 진보의 “…”
두 번째 키워드는 ‘정당의 대표성’이다. 새누리당은 친이(친이명박)와 친박(친박근혜) 간 갈등을 큰 충돌이나 분열 없이 무마했다. 일부 보수가 당을 새롭게 만들기는 했으나 문자 그대로 오합지졸에 불과할 뿐 보수 일각을 허물기엔 역부족이다. 따라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새누리당은 보수 및 영남 지지를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기능하기에 충분하다.
반면 민주당은 아직 누구를 대표하는지 불분명하다. 가장 강한 지지기반이던 호남이 흔들리고 있다. 의미 있는 대선 후보, 즉 유효후보 중 호남 출신은 없다. 당 대표는 2010년 10·3 전당대회부터 내리 비(非)호남 출신에게 넘어갔다. 지도부에서도 호남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다. 선출직 6명 가운데 호남은 박지원 최고위원이 유일하다. 그도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호남을 이끄는 리더라기보다 ‘노회한 관리자’ 이미지가 강하다.
2010년 지방선거 승리 후 민주당은 진보성을 강화해왔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민주노동당과 합치면서 내건 것이 대중적 진보정당론이다. 진보정당이 대중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의 노선은 진보적 대중정당이다. 기왕의 대중성에다 진보성을 강화하자는 논리다. 그렇다면 그 지지기반은 사회·경제적 약자가 돼야 한다. 계층적으로 보면 중·하층이 주력 기반이 돼야 하는데, 민주당과 이들 간 결속은 매우 느슨하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일부가 참여했으나 아직은 미미하다는 것이 냉정한 평가다. 이념이나 정치성향으로 진영을 구분할 때 아무리 후하게 봐도 민주당은 새누리당보다 진영 대표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17대 총선 투표율은 60.6%였다. 18대 총선은 46.1%였다. 14.5%포인트가 떨어진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연령대별로만 투표율을 조사하기 때문에 계층적으로 누가 기권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학계 검증에 따르면, 대체로 저소득층이 투표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한다. 또 하나, 정당 간 차별성이 떨어지면 투표율이 낮아진다고 한다. 18대 총선에서는 정책적 차별성이 거의 없었다. 이를 종합해 추론하면, 민주당에 실망한 다수 유권자가 기권한 셈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자산 수준을 넣어 여론조사를 했을 때, 사회·경제적 약자가 야권을 지지하는 성향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당이 계층적 중·하층의 이해와 요구를 잘 대변해 이들과 결속을 깊게 하고, 이들을 효율적으로 선거에 동원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민주당이 누구를 대변할지, 즉 대표성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세대 문제도 이런 계층적 틀 속에서 이해할 때 사회적 균열로 작동할 것이다.
# 내 삶의 질 개선은 누가?
세 번째 키워드는 ‘시대정신’이다. 마키아벨리가 명쾌하게 지적했듯이, 시대와 불화를 겪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 정권교체 열망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새 정치에 대한 기대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에 대한 바람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각각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렇다면 다음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누구는 통합을 말하고, 누구는 복지를 말한다. 또 노동이나 공정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양극화 해소, 일자리나 교육을 거론하기도 한다. 이런 논의에는 가치와 정책, 과제 등이 뒤섞여 있다. 서로 다른 층위가 착종돼 있어 그중 하나를 선택해 ‘이거야’라고 말하기 어렵다.
현재 우리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와는 다른 해법으로 해결해달라는 주문이 늘어난다. 과거엔 ‘성장’ 해법이 통했다면, 이제는 ‘분배’ 요구가 강해지고 있다. 성장이 ‘낙수경제’를 지향한다면, 분배는 ‘분수경제’를 지향한다. 이제 누가 내 삶의 질을 개선해줄 수 있는지가 절대 다수의 관심 포인트다. 즉, 시대정신은 이른바 ‘착한 경제’다. 이에 대한 비전과 해법을 잘 제시하고, 그것을 온전하게 구현할 신뢰와 역량을 보여주는 쪽이 시대흐름을 탈 것이다. 다시 말해, 후보 이름에 대통령이란 호칭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쪽이 승자가 된다.
# 회고적 투표냐, 전망적 투표냐
네 번째 키워드는 ‘선거의 성격’이다. 성격은 과거를 잣대로 하느냐, 미래를 준거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현 정권에 대한 평가가 선거의 초점이라면 그것을 회고적 투표라고 한다. 반대로 앞으로 누가 더 잘할 것인지에 초점이 모아진다면 전망적 투표라고 한다. 대개 집권 후반으로 갈수록 회고적 투표가 기승을 부리고 집권 기간이 지날수록 반대층이 늘어난다. 이 때문에 19대 총선처럼 집권 후반에 치르는 황혼선거에선 여당이 대체로 수세적 위치에 처한다. 반대로 대선 직후 치르는 신혼선거에선 여당이 강세를 띤다. 대선을 통해 형성된 다수연합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대선 후 3개월이 조금 지난 뒤에 치른 18대 총선이 대표적이다.
18대 대선의 초점이 ‘회고’에 맞춰진다면 여당 후보가 승리하기 힘들다. 현 정부에 대한 반감, 즉 반MB(이명박) 정서가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책임정치 차원에서 정당에 심판의 화살을 돌리는 건 정석이다. 하지만 단임제가 갖는 제도적 효과, 지난 대선 경선에서의 대립과 19대 총선 공천과정에서의 대거 학살 등으로 박근혜 비대위원장도 반MB 이미지를 확보했다. 이 때문에 연말 대선에서 회고적 투표가 주류를 이루기는 힘들어 보인다. 다른 관점도 있다. 박 비대위원장이 MB와 차별화에 나서지 않고, 또 비록 복지를 내걸어도 기본적으로 시장보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므로 ‘전망’이 힘을 못 쓸 것이란 추론이다.
사실 어느 선거에서든 하나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선거는 일면체가 아니라 다면체라 할 수 있다. 대선은 회고적 투표와 전망적 투표가 결합하겠지만 둘 중 어느 측면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지 평가해볼 수는 있다. 역대 대선을 보면, 회고적 투표보다는 전망적 투표가 더 우세했다. 반노무현 정서가 대세였던 지난 대선에서조차 이명박 후보가 경제를 살릴 것이란 전망이 없었다면 그런 일방적 게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대선도 전망적 투표가 훨씬 더 강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박 비대위원장처럼 견고한 고정 지지층이 있는 후보자가 유리하지만, 전망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전개될 이른바 비전 다툼, 정책 싸움 역시 대단히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 노선 or 인물 중 어떤 프레임 선택
대개 선거는 큰 흐름을 잡고, 이를 주도하는 쪽이 이긴다. 정당 간 차별성이 옅어지면 누가 더 매력적인지, 누가 더 신뢰할 만한지에 따라 판세가 결정된다. 1997년 영국 총선이 그랬다. 노동당은 제3의 길을 내세워 보수당과의 정책 차별성을 없애버렸다. 그러면서 섹시한 블레어를 내세워 무미건조한 메이저를 앞세운 보수당을 이겼다. 차별성이 뚜렷하다면 어느 노선과 정책이 민심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1945년 영국 노동당이 그랬다. 확실한 복지노선으로 전쟁 영웅 처칠을 꺾었다. 노선이나 인물 중 어떤 프레임으로 갈 것인지는 각 당의 몫이다. 이것이 대선의 다섯 번째 키워드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개혁보수를 지향하면서 지금의 인물 경쟁력을 유지한다면 저울 추는 여당 쪽으로 기울 것으로 보인다.
변화무쌍한 것이 정치고, 조변석개하는 것이 민심이다. 따라서 8개월이나 남은 지금, 대선 그림을 선명하게 그리기는 불가능하다. 현재로선 큰 흐름의 방향이나 대강의 주제를 짚어보는 것이 전부다. 따라서 막연하게 그려본다면, 총선 결과 대선에서도 새누리당이 일단 우위를 점했다. 문제는 야당이 이 흐름을 반전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연말 대선을 가늠해볼 수 있는 첫 번째 키워드는 ‘제3의 대안(third option)’이다. 이의 현재적 표현은 ‘안철수 현상’이다. 1995년 박찬종 전 의원은 지지율 1위의 무소속 후보로 서울시장에 도전했다 결국 떨어졌다. 정주영 전 국민당 대표도, 이인제 자유선진당 의원도 한때 돌풍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어김없이 실패했다.
지난해 10월 마침내 성공한 사례가 나왔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시민후보’로 도전해 기성 정당의 후보를 경선과 본선에서 거푸 꺾고 서울시장이 됐다. 이 하나의 지표만 보면 제3의 대안을 모색하는 여론 흐름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하겠다. 그러면 가능성 영역에만 머무르던 제3의 대안이 대선에서도 현실화할 수 있을까. 분명한 사실은 무소속이나 제3당 후보로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이다.
방법은 양대 정당의 후보가 되든지, 아니면 박원순 시장처럼 무소속이더라도 야권 단일후보가 되는 것이다. 최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행보를 보면 1952년 미국 대선의 아이젠하워 후보처럼 시민후보를 콘셉트로 하는 대선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의할 것은 이 전략이 무소속 후보로 가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성 정당과 거리를 두다 대선 레이스 직전에 특정 정당의 후보직을 차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전략의 관건은 기성 정당의 경선에 참여하든, 박원순 시장처럼 시민후보로서 정당 후보와 최종 단일화 경선을 벌이든 자신의 운신 폭을 최대한 넓히는 것이다. 안 원장의 성패는 어떤 경로를 거치든 제3의 대안이라는 의미를 얼마나 충분히 담보하느냐에 달렸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구도는 3자 정립이다. 정치권 내 보수와 진보의 대결, 그리고 장외에 있는 제3의 흐름이 그것이다. 그동안 잠복했던 제3의 흐름은 2011년 서울시장선거에서 강력한 실체로 자리 잡았다. 당시 제3의 흐름은 정치권 내 진보 진영과 결합해 보수를 제압했다. 박원순 후보가 나경원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후보보다 7.2%포인트 더 얻은 것은 3자 정립구도가 2대 1 구도로 바뀌었을 때의 위력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올해 초 야권이 통합 과정을 거치면서 제3의 흐름 일부가 야권에 합류했다. 게다가 정당의 무대인 총선도 있었다. 이 때문에 제3의 흐름은 가시권 밖으로 밀려나 약화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제3의 흐름이 다시 움직인다. 안철수 원장이 ‘강연정치’를 펼치는 것이다. 총선이라는 블랙홀 탓에 일시적으로나마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져야 하는 시기를 헤쳐 가려는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그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제3의 흐름을 확장하려 든다면 기성 정당으로선 상당히 곤혹스러울 것이다. 안 원장이 개인이 아니라 ‘안철수 현상’으로 말해지는 제3의 흐름을 기존 정당이 효과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잡아채지 않으면 대선 지형의 유동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당내 경쟁자를 완전히 압도할 정도의 뚜렷한 대권주자가 없는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 등 야권에는 심각한 위협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의 존재 때문에 민주당 소속 후보의 지지율은 마치 유리천장에 막힌 듯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또 제3의 후보 주변에 모였던 유권자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여권으로 이동할 소지도 있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상당한 지지율을 보이던 고건 전 총리가 대선 무대에서 퇴장하자 그 지지층 중 상당수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로 이동한 것이 좋은 예다. 따라서 여야 공히 제3의 흐름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대선 판세가 달라질 전망이다. 안 원장이 대선 후반까지 상당한 지지율을 유지하다 특정 진영의 손을 들어주지 않은 채 포기해버리면 민주당은 황당한 처지에 몰릴 수도 있다. 닭 쫓다 지붕 쳐다보는 꼴에 다름 아니다.
통합진보당 19대 총선 선대본부 출범식 모습.
두 번째 키워드는 ‘정당의 대표성’이다. 새누리당은 친이(친이명박)와 친박(친박근혜) 간 갈등을 큰 충돌이나 분열 없이 무마했다. 일부 보수가 당을 새롭게 만들기는 했으나 문자 그대로 오합지졸에 불과할 뿐 보수 일각을 허물기엔 역부족이다. 따라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새누리당은 보수 및 영남 지지를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기능하기에 충분하다.
반면 민주당은 아직 누구를 대표하는지 불분명하다. 가장 강한 지지기반이던 호남이 흔들리고 있다. 의미 있는 대선 후보, 즉 유효후보 중 호남 출신은 없다. 당 대표는 2010년 10·3 전당대회부터 내리 비(非)호남 출신에게 넘어갔다. 지도부에서도 호남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다. 선출직 6명 가운데 호남은 박지원 최고위원이 유일하다. 그도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호남을 이끄는 리더라기보다 ‘노회한 관리자’ 이미지가 강하다.
2010년 지방선거 승리 후 민주당은 진보성을 강화해왔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민주노동당과 합치면서 내건 것이 대중적 진보정당론이다. 진보정당이 대중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의 노선은 진보적 대중정당이다. 기왕의 대중성에다 진보성을 강화하자는 논리다. 그렇다면 그 지지기반은 사회·경제적 약자가 돼야 한다. 계층적으로 보면 중·하층이 주력 기반이 돼야 하는데, 민주당과 이들 간 결속은 매우 느슨하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일부가 참여했으나 아직은 미미하다는 것이 냉정한 평가다. 이념이나 정치성향으로 진영을 구분할 때 아무리 후하게 봐도 민주당은 새누리당보다 진영 대표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17대 총선 투표율은 60.6%였다. 18대 총선은 46.1%였다. 14.5%포인트가 떨어진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연령대별로만 투표율을 조사하기 때문에 계층적으로 누가 기권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학계 검증에 따르면, 대체로 저소득층이 투표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한다. 또 하나, 정당 간 차별성이 떨어지면 투표율이 낮아진다고 한다. 18대 총선에서는 정책적 차별성이 거의 없었다. 이를 종합해 추론하면, 민주당에 실망한 다수 유권자가 기권한 셈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자산 수준을 넣어 여론조사를 했을 때, 사회·경제적 약자가 야권을 지지하는 성향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당이 계층적 중·하층의 이해와 요구를 잘 대변해 이들과 결속을 깊게 하고, 이들을 효율적으로 선거에 동원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민주당이 누구를 대변할지, 즉 대표성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세대 문제도 이런 계층적 틀 속에서 이해할 때 사회적 균열로 작동할 것이다.
# 내 삶의 질 개선은 누가?
세 번째 키워드는 ‘시대정신’이다. 마키아벨리가 명쾌하게 지적했듯이, 시대와 불화를 겪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 정권교체 열망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새 정치에 대한 기대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에 대한 바람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각각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렇다면 다음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누구는 통합을 말하고, 누구는 복지를 말한다. 또 노동이나 공정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양극화 해소, 일자리나 교육을 거론하기도 한다. 이런 논의에는 가치와 정책, 과제 등이 뒤섞여 있다. 서로 다른 층위가 착종돼 있어 그중 하나를 선택해 ‘이거야’라고 말하기 어렵다.
현재 우리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와는 다른 해법으로 해결해달라는 주문이 늘어난다. 과거엔 ‘성장’ 해법이 통했다면, 이제는 ‘분배’ 요구가 강해지고 있다. 성장이 ‘낙수경제’를 지향한다면, 분배는 ‘분수경제’를 지향한다. 이제 누가 내 삶의 질을 개선해줄 수 있는지가 절대 다수의 관심 포인트다. 즉, 시대정신은 이른바 ‘착한 경제’다. 이에 대한 비전과 해법을 잘 제시하고, 그것을 온전하게 구현할 신뢰와 역량을 보여주는 쪽이 시대흐름을 탈 것이다. 다시 말해, 후보 이름에 대통령이란 호칭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쪽이 승자가 된다.
# 회고적 투표냐, 전망적 투표냐
네 번째 키워드는 ‘선거의 성격’이다. 성격은 과거를 잣대로 하느냐, 미래를 준거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현 정권에 대한 평가가 선거의 초점이라면 그것을 회고적 투표라고 한다. 반대로 앞으로 누가 더 잘할 것인지에 초점이 모아진다면 전망적 투표라고 한다. 대개 집권 후반으로 갈수록 회고적 투표가 기승을 부리고 집권 기간이 지날수록 반대층이 늘어난다. 이 때문에 19대 총선처럼 집권 후반에 치르는 황혼선거에선 여당이 대체로 수세적 위치에 처한다. 반대로 대선 직후 치르는 신혼선거에선 여당이 강세를 띤다. 대선을 통해 형성된 다수연합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대선 후 3개월이 조금 지난 뒤에 치른 18대 총선이 대표적이다.
18대 대선의 초점이 ‘회고’에 맞춰진다면 여당 후보가 승리하기 힘들다. 현 정부에 대한 반감, 즉 반MB(이명박) 정서가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책임정치 차원에서 정당에 심판의 화살을 돌리는 건 정석이다. 하지만 단임제가 갖는 제도적 효과, 지난 대선 경선에서의 대립과 19대 총선 공천과정에서의 대거 학살 등으로 박근혜 비대위원장도 반MB 이미지를 확보했다. 이 때문에 연말 대선에서 회고적 투표가 주류를 이루기는 힘들어 보인다. 다른 관점도 있다. 박 비대위원장이 MB와 차별화에 나서지 않고, 또 비록 복지를 내걸어도 기본적으로 시장보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므로 ‘전망’이 힘을 못 쓸 것이란 추론이다.
사실 어느 선거에서든 하나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선거는 일면체가 아니라 다면체라 할 수 있다. 대선은 회고적 투표와 전망적 투표가 결합하겠지만 둘 중 어느 측면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지 평가해볼 수는 있다. 역대 대선을 보면, 회고적 투표보다는 전망적 투표가 더 우세했다. 반노무현 정서가 대세였던 지난 대선에서조차 이명박 후보가 경제를 살릴 것이란 전망이 없었다면 그런 일방적 게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대선도 전망적 투표가 훨씬 더 강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박 비대위원장처럼 견고한 고정 지지층이 있는 후보자가 유리하지만, 전망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전개될 이른바 비전 다툼, 정책 싸움 역시 대단히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 노선 or 인물 중 어떤 프레임 선택
대개 선거는 큰 흐름을 잡고, 이를 주도하는 쪽이 이긴다. 정당 간 차별성이 옅어지면 누가 더 매력적인지, 누가 더 신뢰할 만한지에 따라 판세가 결정된다. 1997년 영국 총선이 그랬다. 노동당은 제3의 길을 내세워 보수당과의 정책 차별성을 없애버렸다. 그러면서 섹시한 블레어를 내세워 무미건조한 메이저를 앞세운 보수당을 이겼다. 차별성이 뚜렷하다면 어느 노선과 정책이 민심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1945년 영국 노동당이 그랬다. 확실한 복지노선으로 전쟁 영웅 처칠을 꺾었다. 노선이나 인물 중 어떤 프레임으로 갈 것인지는 각 당의 몫이다. 이것이 대선의 다섯 번째 키워드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개혁보수를 지향하면서 지금의 인물 경쟁력을 유지한다면 저울 추는 여당 쪽으로 기울 것으로 보인다.
변화무쌍한 것이 정치고, 조변석개하는 것이 민심이다. 따라서 8개월이나 남은 지금, 대선 그림을 선명하게 그리기는 불가능하다. 현재로선 큰 흐름의 방향이나 대강의 주제를 짚어보는 것이 전부다. 따라서 막연하게 그려본다면, 총선 결과 대선에서도 새누리당이 일단 우위를 점했다. 문제는 야당이 이 흐름을 반전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