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게트(baguette)는 흔히 프랑스의 상징으로 불린다. 프랑스에선 오후 6시쯤이면 바게트를 들고 귀가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바게트는 기다란 생김새 그대로 라틴어의 지팡이(baculum)라는 말에서 유래됐다. 빵이 상징인 나라는 프랑스가 유일할 것이다.
그 때문인지 성장동력을 잃고 구조적 경기침체에 빠져 있는 프랑스의 경제상황을 ‘바게트 폭탄’이라고 표현한다.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에게 승리한 에마뉘엘 마크롱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바로 바게트 폭탄을 제거하는 것이다. 프랑스 국민이 마크롱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경제 살리기가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저성장-고실업 늪에 빠져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다는 말까지 듣고 있다.
유럽의 병자, 프랑스
실제로 프랑스는 유럽 라이벌인 독일과 영국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낮고 실업률은 높다. 독일과 영국의 2013~2016년 평균 경제성장률은 각각 1.4%, 2.3%를 기록한 반면, 프랑스는 0.9%에 그쳤다. 또 수출 경쟁력 약화로 2000년부터 17년 연속해 무역수지 적자를 보고 있다. 프랑스의 지난해 실업률은 10.1%로, 2013년 이후 4년간 10%대를 기록했다. 유로존에서 7번째로 높다.프랑스보다 실업률이 높은 국가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 재정위기를 겪은 나라밖에 없다. 특히 1월 기준 25세 이하 청년층의 실업률은 23.6%였다. 현재 프랑스 청년층은 학교를 졸업해도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최저임금에 시달리며 비정규직과 임시직을 전전하는 젊은이가 부지기수다. 세계 5위였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인도에 뒤져 7위로 밀려났다. 1인당 국민소득도 세계 22위까지 추락했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75년까지 이른바 ‘영광의 30년(Trente Glorieuses)’을 구가하면서 국력을 키웠다. 경제학자 장 푸라스티에가 명명한 이 기간에 프랑스는 연평균 5.1%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실업률은 1.4%로 완전고용을 실현했고, 대량소비사회가 열리면서 국민 생활수준도 급속히 향상됐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가 정착되고, 연 5주간 유급휴가가 주어지는 등 사회보장제도와 근로 조건도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샤를 드골 대통령(1959~69년 재임·이하 재임 기간)의 독자적인 외교·안보 노선으로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올라갔을 뿐 아니라 과학기술, 사상과 철학, 문학과 예술에서도 세계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후 프랑스 정치지도자들은 ‘영광의 30년’을 이어가는 데 실패했다. 좌파인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1981~95), 우파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1995~2007), 우파인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2007~2012), 좌파인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2012~2017)이 차례로 집권했지만 프랑스 경제는 뻗어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했다. 주류 정치 세력인 중도 우파 공화당과 중도 좌파 사회당 출신 정치지도자들의 실패는 아웃사이더(비주류)의 출현을 가능케 했다. 중도를 표방하는 앙마르슈(En Marche·전진)라는 정당을 창당한 마크롱이 대권을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사회당이나 공화당 소속이 아닌 대통령이 등장한 것은 1958년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처음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이후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39세) 대통령이 된 마크롱이 정치에 뛰어든 것은 올랑드 대통령의 경제수석비서관과 대통령실 부실장 및 경제장관을 지내면서 프랑스가 새롭게 태어나려면 경제개혁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올랑드 정부에서 친(親)기업 경제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2015년 그는 노조와 사회당의 반발에도 경제활성화를 위해 파리 샹젤리제 같은 관광지구 내 상점의 일요일 및 심야 영업 제한을 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프랑스에선 노동자의 휴식권을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1906년부터 상점들의 일요일 및 심야 영업을 법으로 금지했다. 그는 또 성역이란 말을 들어온 ‘주(週) 35시간 근무제’ 폐지와 고용·해고 조건 완화 등을 내용으로 한 노동법 개정도 추진했다. 프랑스 노동시간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적은 편이다. 그 결과 고용·해고 조건은 일부 완화됐지만 노조의 대규모 반대 파업과 사회당의 반발, 공화당의 비협조로 노동시간은 건드리지 못했다. 심지어 그는 노조원들이 던진 달걀에 얻어맞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4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새로운 정치운동을 시작하겠다”며 경제장관을 사임하고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에 나섰다.
유럽의 미래를 선택하다
마크롱은 역대 대통령과 비교할 때 가장 적극적으로 경제개혁을 추진할 것이 분명하다. 엘리트 산실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하고 재정감독청에서 근무하다 투자은행인 로스차일드에서 인수합병(M&A) 전문가로 활동한 경력이 전부지만, 올랑드 정권에서 일하는 동안 ‘프랑스 병’을 고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주요 공약을 보면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 35시간 근무제를 유지하되 기업 단위에서 탄력적으로 운영 △법인세 인하(33.3→25%) △부유세는 상속 부동산에만 적용 △노동 유연성 강화 등을 약속했다. 이는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방안들이다. 또 대대적인 경기부양책도 추진한다. 향후 5년간 교육, 에너지, 환경, 교통, 보건 등 공공부문에 500억 유로(약 60조8000억 원)를 투자하고 행정 현대화, 공공부문 감축 등으로 재정적자를 GDP의 3% 이하로 맞추겠다는 입장이다.
마크롱은 또 유럽연합(EU)과 협력 강화를 프랑스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EU 개혁을 요구하면서도 강력한 유럽통합과 자유무역주의를 강조해왔다. 이 때문에 독일 등 EU 회원국은 EU·유로존 탈퇴, 보호무역, 고립주의, 반세계화, 프랑화 도입 등을 주장해온 르펜 대신 마크롱의 당선에 반색하고 있다.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프랑스가 유럽의 미래를 선택해 행복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마크롱은 5월 8일 당명을 앙마르슈에서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로 바꾸고 6월 11, 18일 있을 총선 준비에 들어갔다. 현재는 의석이 한 석도 없지만 전체 의석 577석 가운데 289석 이상을 얻어 다수당이 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5월 11일 공약대로 공천자 577명의 절반은 여성, 절반은 의회 경험이 없는 정치 신인으로 채울 예정이다. 하지만 레퓌블리크 앙마르슈가 과반을 얻지 못하면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동거정부)을 출범해야 한다.
공화당은 프랑수아 바루앵 상원의원을 새 대표로 선출하고 총선에서 승리해 마크롱과 동거정부를 구성한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당 지지율이 바닥인 상황에서 공화당이 제1당이 될 수도 있다. 아무튼 “프랑스를 더욱 강하게, 새롭게 개혁하겠다”는 마크롱이 젊음을 앞세워 프랑스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