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기간 중 “압도적으로 지지를 모아달라”던 대국민 호소는 얼마나 현실화됐을까. 김상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는 “5자 대결구도에서 40% 넘는 지지율을 기록한 것은 사실상 과반 득표의 의미가 있다”며 ‘압도적 승리’에 방점을 뒀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과반이 되지 못해 ‘절반의 승리’라는 시각도 있다.
먼저 압도적 승리라는 주장의 근거를 살펴보자. 후보 다섯 명이 치열하게 경쟁하던 이번 대선에서 문 대통령은 지지율 40%를 넘겼다. 2위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24.03%로 전체 지지율에서 4분의 1 수준에 머물렀고, 3위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21.41% 득표율로 5분의 1 수준이었다. 그에 반해 문 대통령은 전체 지지율의 3분의 1을 훌쩍 넘겨 41.08% 득표율을 기록했다.
절반의 승리
그러나 기준을 바꿔보면 전혀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이번 대선에서는 전체 유권자 4247만9710명 가운데 3280만7908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그중 1342만3800명이 문 대통령을 선택했다. 전체 유권자를 기준으로 하면 31.6%만이 문 대통령에게 한 표를 행사한 것이다.
즉 유권자 가운데 3000만 명에 가까운 2905만5910명은 문 대통령에 대한 신임을 거부하거나 선택 자체를 포기했다. 거칠게 표현하면 국민의 3분의 2가 문 대통령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
김상진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선보일 협치 내용에 따라 국정운영이 탄력을 받을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통해 청와대나 정부, 여당이 독주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의 명령을 확인한 만큼 그 뜻을 잘 받드는 국정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치로 눈을 돌리면 집권여당이 된 민주당의 운신이 녹록지 않다. 전체 300석에서 절반에 한참 못 미치는 120석만 갖고 있다. 제1야당 자유한국당 94석(바른정당을 탈당한 뒤 복당 의사를 밝힌 12명의 의원은 5월 11일 현재 입당 여부가 확정되지 않아 무소속 상태임), 제2야당 국민의당 40석, 제3야당 바른정당이 20석을 차지하고 있다. 4개 정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복잡한 고차방정식 같은 여야 협상을 거쳐야 정책 입법이 가능하다.
국회선진화법으로 국회 내 다수당이라도 의석수가 180석에 미치지 못하면 예산안을 제외한 법안 처리가 불가능하다. 당선 전부터 연정과 협치 얘기가 나온 배경에는 여당인 민주당이 독자적으로 문재인 행정부의 정책입법을 뒷받침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연정과 협치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직을 두고 경쟁하던 야당이 상대 정당의 공약 이행을 위해 발 벗고 협조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고도의 정치력이 발휘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는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연정 및 협치에 대한 의지를 살펴볼 수 있는 바로미터는 각종 인사다. 대통령과 함께 국정운영을 해나갈 국무위원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보면 연정의 폭과 협치 가능성을 점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이낙연 전남도지사를 국무총리로 지명하고, 전남 장흥 출신인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과 전북 전주 출신인 윤영찬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수석 등 호남 인사를 주요 포스트에 임명했다. 이는 대선 때 자신에게 60%대의 높은 지지를 보낸 호남 유권자에게 보답하는 동시에 향후 국정운영의 키를 쥐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부산·경남(PK) 출신인 문 대통령이 호남 인사 중용을 통해 영호남 대탕평인사 원칙을 국민에게 선보이는 한편, 정치적으로는 호남이 근거지인 국민의당을 압박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안철수 은퇴 발언에 담긴 속뜻
호남 출신 총리 지명은 국민의당이 총리 인준에 딴죽을 걸 수 없도록 만드는 효과도 있다.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에서 본부장을 지낸 한 인사는 “우리로서는 이 총리 카드가 좋다고도, 싫다고도 할 수 없는 절묘한 카드”라고 평했다. 호남 총리를 반대하는 순간 국민의당에 대한 호남의 지지가 민주당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총리 지명이 호남 유권자를 겨냥한 카드라면, 대선 때 문재인 선대위 총괄본부장을 지낸 송영길 의원의 ‘안철수 정계 은퇴 발언’은 국민의당과 ‘당 대 당’ 통합을 염두에 둔 정계개편용 사전 포석의 성격이 짙다. 1년 뒤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 때 호남 주도권을 놓고 경쟁할 국민의당을 일찌감치 제압하고자 구심점인 안철수 전 대선후보와 국민의당 호남 의원들을 떼어놓으려 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송 의원은 안철수 은퇴 발언이 정치적 갑질 논란으로 번지자 5월 11일 사과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창업주(안철수)를 몰아낸 뒤 국민의당과 인수합병(M&A)해 민주당이 절반 넘는 의석을 확보하려 한다는 본심이 송 의원의 발언을 통해 드러났다는 관측이 많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지방선거를 1년 뒤 치르기 때문에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정계개편 유혹을 강하게 느낄 것”이라며 “민주당이 통합을 시도할 때 안 전 후보가 강력히 저항하는 가운데 국민의당 의원들이 통합파와 자주파로 분열된다면 당이 현재 틀을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호남지역 한 언론사 간부도 “이번 대선에서 호남 유권자들은 문 대통령 지지로 실리를 택했다”며 “이번 대선을 계기로 민심의 균형추가 다시 민주당으로 향하면서 국민의당은 존폐 기로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당은 호남지역 현직 단체장과 지방의원 가운데 20%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며 “내년 지방선거 전 국민의당이 민주당에 흡수 통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호남 출신 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임명으로 호남을 국정운영 파트너로 삼은 문재인 대통령이 진보와 중도층은 물론, 보수까지 아우르는 내각 구성을 통해 연정과 협치의 틀을 짤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다른 정당의 당적을 갖고 있더라도 그 당적을 버리라고 요구하지 않고 함께 일하겠다’ ‘합리적 진보, 개혁적 보수와 함께하겠다’며 통합정부의 밑그림을 제시했다.
달라도 다 함께?
민주당 통합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영선 의원은 5월 11일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통합정부가 추구하는 목적은 국민 통합에 있다”며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이면 (당적에 상관없이) 함께 국정운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자유한국당 의원도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정의를 추구하는 어떤 가치를 공유하면 누구든 함께 일하고 싶다는 것이 새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 초대 내각에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심지어 자유한국당 소속 탄핵 찬성파 의원에게까지 국정 참여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이런 민주당에게 ‘개혁적 보수’를 표방하는 바른정당은 알맞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조각 때 바른정당 의원을 입각시킬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 초선의원은 “대선이 끝났지만 연정과 협치라는 국민적 요구를 이행해야 할 책임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며 “문 대통령이 국민의당은 물론, 바른정당에까지 국정 참여를 권유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문 대통령이 바른정당을 국정운영의 한 축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은 자유한국당 중심으로 보수가 결집하는 것을 막으려는 뜻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보수세력이 여전히 많은 것을 감안할 때 바른정당을 지지하는 보수가 존립할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 장차 거대 야당의 등장과 저항을 사전에 예방하는 길이 될 수 있다. 민주당과 바른정당 주변에서는 대선후보로 나섰던 유승민 의원의 입각 가능성이 거론된다. 유 의원은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취임식에 직접 참석했다. 송영길 의원은 트위터에 ‘가장 먼저 당선 축하전화를 해주시고 취임식장에 참석한 유승민 의원에게 감사하다’며 각별한 관심을 표하기도 했다. 또 유 의원의 입각은 ‘문재인만 아니면 돼’라는 심정으로 홍준표 대선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대구 민심을 달래는 효과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적폐청산을 위한 정계개편
바른정당 의원의 입각 여부가 문재인 정부가 보수까지 아우른다는 것을 보여줄 시금석이라면, 정의당 의원의 국정운영 참여는 진보 이념과 노선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를 띤다. 김형준 교수는 “문 대통령과 민주당 처지에선 국민의당보다 상대적으로 덜 껄끄러운 정의당과 먼저 연대할 가능성이 있다”며 “장차 대연정으로 나아가기 위해 먼저 소연정을 시도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 민주당이 처한 현실은 1987년 대선 이후 88년 총선 때 여소야대 상황이 만들어진 노태우 정부 초기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여소야대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강제하는 힘이 있다. 당시 국민적 숙원이던 5공 청문회 등을 여야 합의로 이뤄낸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정국을 주도하려는 여당 처지에서는 야당과 대화하느라 번번이 자기 주도의 국정운영이 발목 잡히는 데 고민이 깊을 수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집권 3년 차인 90년 3당 합당을 통해 여소야대를 인위적으로 여대야소로 만든 뒤 대외적으로 한중수교 등 북방정책을 추진했고, 국내적으로는 ‘범죄와의 전쟁’을 벌였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걸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통합을 제시했다. 내각 인선 등을 통해 국민통합정부를 출범해 적폐청산에 나설지, 아니면 적폐청산을 위해 정계개편에 먼저 나설지 주목된다.
김형준 교수는 “여소야대 상황은 대립과 분열 가능성을 내포한다”며 “문 대통령이 특단의 포용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면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야당들의 대통령 흔들기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선 때 문 후보 주변에서 나왔던 ‘보수를 불태우겠다’ ‘적폐집단’ ‘궤멸시켜야 한다’ 같은 식의 태도로는 국정을 과거로 돌아가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명분 살리고 실리도 챙긴 대통령비서실 인선인사가 곧 만사라고 한다. 좋은 인재를 뽑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만 가지 일이 잘 풀리고 순리대로 돌아가게 하는 길이라는 의미다. 뒤집어 해석하면 인사를 잘하는 것은 만 가지 일이 잘 돌아가게 하는 것처럼 어렵다는 얘기도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장에 호남 출신 임종석을, 민정수석에 부산 출신 조국을 앉혔다. 호남을 배려하고 PK(부산·경남)를 아우르는 두 토끼를 다 잡으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조 수석 임명에는 비(非)검찰 출신으로 검찰개혁 적임자라는 설명이 붙었다.
그런데 올해 만 51세인 젊은 ‘영(young)실장’과 검찰개혁의 선봉이 될 조 수석이 서로 ‘케미’를 맞춰 청와대 보좌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려면 접착제 구실을 할 인물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있다. 이를 위해 참여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정무기획비서관을 지내고 이후에도 문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보좌했던 윤건영 전 문재인 대선캠프 종합상황실 부실장이 국정상황실장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대통령이 말을 놓을 정도로 편하게 여기는 윤 전 부실장이 국정상황실장직을 맡아 조율하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새 정부는 문 대통령을 정점으로 임종석-조국-윤건영 삼각체제로 운영될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한 사람은 양정철 전 문재인 대선후보 비서실 부실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에 빗댄 문재인의 ‘3철’로,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은 “양 전 부실장은 문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데다, 홍보 주특기를 갖고 있어 정부 대변인 격의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으로 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기자실 대못질로 언론과 불편한 관계를 맺기도 한 그가 10년 만에 정부의 대언론 접촉창구로서 다시 언론 앞에 서게 될지 주목된다. 한편 여권 일각에서는 대통령에게 측근 전진 배치라는 정치적 부담을 주지 않고자 한동안 정무직에 나서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