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국가가 북한의 위협을 핑계로 다른 국가의 국익을 훼손하는 행위를 하는 것에 반대한다.”
우첸 중국 국방부 대변인이 일본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 움직임과 관련해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성명 내용의 일부다. 일본 정부가 조만간 사드 도입을 결정할 것으로 보이자 중국 정부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이달 말 열릴 미국과 외교·국방장관(2+2)회담에서 사드와 이지스함의 레이더 및 미사일을 육상에 배치하는 ‘이지스 어쇼어(Aegis Ashore)’를 도입하는 등 미사일방어(MD)체계 강화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미국 정부에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견제하려면 MD체계 강화가 최우선 과제라는 점을 강조할 방침이다. 일본에선 3월 6일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 4발 중 3발이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 떨어진 이후 MD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조돼왔다. 특히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안전보장조사회는 30일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와 사드, 이지스 어쇼어 등의 즉각적인 도입 등 방위력 강화를 촉구하는 건의안을 아베 신조 총리에게 전달했다. 아베 총리도 이 건의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드 도입 타당성 여부 조사
일본 정부는 이미 와카미야 겐지 방위성 부대신을 위원장으로 하는 사드 도입 검토위원회를 구성해 타당성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당초 일본 정부는 차기 중기방위력 정비계획 기간(2019~2023)에 사드 도입을 결정할 계획이었지만,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기술이 향상됨에 따라 그 시기를 앞당길 방침이다. 일본 방위성은 올여름까지 사드 도입 검토위원회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 뒤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이 1월 미국 괌에 배치된 사드 기지를 시찰하기도 했다.일본 정부가 사드 도입 이유로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을 내세우고 있지만, 중국의 탄도미사일을 방어하겠다는 목적도 갖고 있다. 중국은 산둥성 지역에 일본 전체를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 1800km의 둥펑(DF)-21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배치했다. DF-21은 재래식 탄두를 탑재하지만 필요할 경우 200~500kt급 핵탄두를 최대 5기까지 실을 수 있다.
중국은 또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주일 미군기지를 효과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최신예 탄도미사일 DF-16B를 실전배치했다.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1000km인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이 탐지거리 2000km인 조기경보용 X밴드 레이더를 운영하고 있는 이유도 북한은 물론, 중국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이 그동안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에 관광 금지 등 각종 보복 조치를 가해온 것도 일본을 상당히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일찌감치 일본의 사드 도입 의사를 간파하고 이를 막고자 대한(對韓) 보복 조치를 통해 일본을 견제해온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2012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둘러싸고 중국이 경제 보복 조치를 내렸을 때 이를 극복한 경험이 있는 만큼 중국이 또다시 보복 조치를 단행하더라도 개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 중요한 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의 사드 도입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측에 주일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는 것보다 일본 정부가 미국산 무기를 대거 구매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아베 총리도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생각을 눈치 채고 MD체계 강화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가 일본의 MD체계 강화를 견제하는 데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일본의 군사력 강화에 빌미 제공
일본 처지에선 중국이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개발을 강력하게 저지하지 않는 것이 군사력 강화에 명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속으론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만약 일본이 사드를 오키나와 같은 남서부에 배치한다면 중국에게는 심각한 전략적 위협이 될 수 있다.훠젠강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원 일본연구소 연구원이 “일본이 사드를 도입하려는 것은 군사대국에 한 발짝 더 다가가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한 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은 일단 러시아와 협력을 통해 일본의 사드 도입을 막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지만 별 효과는 없을 듯하다. 중국은 또 올해 러시아와 MD연합 훈련을 공동으로 실시하는 등 군사적인 대응 방안도 마련했지만, 오히려 일본의 군사력 강화에 빌미만 제공할 수 있다.
중국은 일본이 최근 헬기 항공모함 가가호를 실전배치하자 마뜩잖은 반응을 보였다. 중국 관영언론들은 가가호의 실전배치를 ‘악마함의 부활’이라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가가호는 과거 중국 침략의 선봉에 섰던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항공모함과 똑같은 이름이다. 옛 가가호가 처음 참전한 전쟁은 1932년 중국과 일본이 무력 충돌한 상하이 사변이었다.
세계 해전사에서 항모가 실전에 참가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후에도 가가호는 37년 중일전쟁의 계기가 된 루거우차오 사건 등 중국과의 전투에 주로 참전했다. 이 때문에 당시 중국에선 가가호를 ‘악마함’이라고 불렀다.
가가호는 1941년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에도 참가했으며, 42년 미드웨이 해전 때 미군 폭격기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일본이 중국 침략의 선두에 섰던 옛 함정 이름을 헬기 항모에 다시 사용한 것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할 수 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가가호의 재등장이 일본 군국주의 부활의 시작이 아니길 바란다”고 지적한 것도 일본의 의도를 경계한 것이다.
가가호는 중국을 공격할 수 있는 전력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헬기 항모로는 네 번째 함정인 가가호는 최대배수량 2만7000t, 길이 248m, 폭 38m로 일본 해상자위대가 보유한 함정 가운데 최대 규모다. 함정 전체에 갑판이 깔렸고 별도의 격납고가 마련돼 헬기 14대를 운용할 수 있다.
가가호는 육·해·공군 자위대의 합동작전을 지휘하는 해상사령부 구실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직이착륙 수송기 MV-22 오스프리를 탑재할 수 있어 해병대인 수륙기동단 병력도 수송 가능하다. 특히 가가호는 유사시 갑판 일부를 개조해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 F-35B도 탑재할 수 있다.
인줘 중국 해군 예비역 소장은 “가가호는 막강한 전력을 갖춘 항모”라면서 “조만간 중국 해군에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두원룽 중국 군사과학원 연구원도 “일본이 가가호 같은 헬기 항모를 실전배치한 목적은 장거리 작전 능력을 높이려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또 헬기 항모인 이즈모호를 5월 초부터 석 달간 남중국해에 파견할 계획이다. 이즈모호가 남중국해에 투입되는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이즈모호는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스리랑카 등에 기항한 뒤 7월 인도양에서 미국, 인도 해군과 공동 해상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즈모호는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청나라의 배상금으로 건조한 순양함 이름과 똑같다. 옛 이즈모호도 1937년 상하이를 공격한 일본 해군 함정들의 기함이었다. 일본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군사대국의 길을 단계적으로 밟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앞으로 중·일 양국 간 치열한 군비 경쟁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