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되리라고 예상했던 ‘반풍(潘風)’은 현실정치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 채 빠르게 소멸했다. 1월 1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국민연설을 통해 “나라를 위해 이 한 몸 불사를 것”이라며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교체”를 선언하고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포부를 설파한 지 20일 만이다.
그동안 반 전 총장의 행적은 크게 ‘서민 밀착 행보’ ‘제3지대론을 매개로 한 정치권과 접촉’ ‘정파 초월 개헌 추진체 구성 등 비전 제시’ 순으로 이어졌다(19쪽 표 참조).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정치권에선 반 전 총장이 행적을 거꾸로 했다면 대통령선거(대선) 불출마 선언이라는 최악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은 “반 전 총장이 귀국했을 때 사나흘 정도는 디테일한 행보보다 국민에게 대한민국 발전에 대한 큰 그림을 화두로 던졌어야 했다”며 “그렇게 비전을 제시해 새로운 정치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심었어야 이후 활동에 부담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소장은 또 “기존 정치인과 똑같은 방식으로 홀로 뛰다 보니 감동을 주지 못했고, 결국 대중의 기대에도 부응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귀국 첫날부터 스텝이 꼬인 반 전 총장의 일정을 따라가봤다.
‘서민 코스프레’ 논란과 혹독한 검증
반 전 총장은 1월 12일 인천국제공항에서부터 ‘서민 코스프레’ 논란에 휩싸였다. 공항철도 승차권을 뽑기 위해 1만 원권 2장을 겹쳐서 무인발매기에 넣는 모습이 그 시작이었다.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서민적’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계획이었으나, 미처 승차권 뽑는 법까지는 파악하지 못해 역효과가 났다. 서울 사당동 자택에서 하룻밤을 보낸 반 전 총장은 그다음 날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했는데, 이때 미리 준비한 쪽지를 꺼내놓고 방명록에 쓰는 모습도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충북 음성 사회복지시설 꽃동네를 방문한 1월 14일에는 본인이 턱받이를 한 채 몸이 불편해 누워 있는 노인에게 죽을 먹이는 모습이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사람을 누인 채 죽을 떠 먹이면 목에 걸릴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반 전 총장은 “꽃동네에서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민생현장에서 활동이 어설프게만 느껴졌다. 반풍(潘風)이 불기도 전 반풍(反風)이 먼저 불어온 셈이다.
지난 10년간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바쁘게 보냈지만, 항상 대한민국 국민의 삶에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주려는 듯 그는 숨 가쁘게 전국을 누볐다. 그러나 의전에 익숙하던 생활을 접고 갑작스레 변화를 시도하다 보니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1월 18일 광주 조선대 강연에 나선 반 전 총장은 “청년들이 글로벌 스탠더드한 시야를 가졌으면 좋겠다”면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하는 만큼 해외로 진출하고, 정 일이 없으면 자원봉사라도 했으면 한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세계를 순회하다 자원봉사를 하는 한국 청년들을 만나면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일하는 모습을 강조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상 최악의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층은 비난을 쏟아냈다. 청년 취업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하지 않고 뜬구름 잡듯 노력만 강조한 것이 이유였다.
이날 반 전 총장이 기자에게 ‘나쁜 놈들’이란 표현을 쓴 것도 구설에 올랐다. 한 인터넷신문 기자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입장을 끈질기게 묻자 “내가 마치 역사에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 나쁜 놈들”이라며 짜증을 낸 것. 이런 예민한 문제에 언론의 공세가 이어질 수 있음에도 마음의 대비가 없었던 셈이다.
연이은 구설에 여론과 누리꾼의 반응은 싸늘했다. 한 누리꾼은 “국민을 바보로 아냐. 금수저가 흙수저 흉내를 내고 있다”고 힐난했다. “어리바리한 서민행보가 연일 온 국민에게 큰 웃음을 주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웃을 일 없는 요즘, 국민을 웃게 만든다”고도 했다. 또 다른 누리꾼도 “반기문 턱받이는 검색순위에서 내려올 줄 모르니, 홍보로는 이만한 게 없는 것 같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큰 그림을 그리고 정치권에 기반을 어느 정도 확보한 뒤 조직적으로 민생 체험에 나섰다면 이 정도 실수나 언행은 크게 부각되지 않은 채 넘어갈 수도 있었다.
이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약 2억6300만 원)를 받았다거나, 동생 기상 씨와 조카 주현 씨가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순실 게이트’의 근본 원인이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부실 검증 때문이라는 반성이 나오는 상황에서 반 전 총장의 측근, 친인척 비리에 대한 가혹한 검증이 이어질 태세였지만 대응도 철저해 보이지 않았다.
1월 19일부터 사나흘간 이명박 전 대통령, 정세균 국회의장,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만난 반 전 총장은 22일에는 공식일정을 잡지 않았다. 서울 마포캠프 사무실에서 25일 열릴 관훈클럽 대선후보 토론회 준비를 했다. 김숙 전 주유엔 대표부 대사 등 캠프 멤버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이각범 전 대통령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등과 함께 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캠프 관계자들은 지지기반 확보와 외연 확대를 위해 기존 정당 입당, 신당 창당, 제3지대에서 세력을 모아 정치적 역량을 키우는 이른바 ‘빅텐트’ 등을 세우고자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제3지대론을 매개로 한 정치권 접촉
1월 25일 관훈클럽 토론회를 마친 반 전 총장은 26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을 찾았다. 이날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이사장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동행했다. 27일 설 연휴 첫날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을 시작으로 29일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 30일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와 잇따라 회동했다. 이유는 하나. 제3지대 세력이 뭉치는 ‘빅텐트’ 연대를 타진하기 위해서였다.
반 전 총장도 귀국 전부터 제3지대 구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새누리당의 기반이 급격히 허물어졌기 때문에 새 정치를 위해선 외연을 키우는 제3지대 혹은 빅텐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그래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경쟁구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설 연휴 전후로 반 전 총장은 여야를 넘나들며 잇따라 사람들을 만나 ‘빅텐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지만 합의는 이루지 못한 채 서로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사실상 퇴짜를 맞은 셈이다. 반기문 캠프 측 ‘빅텐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중심을 잡아주는 큰 기둥이 없다는 것이다. ‘빅텐트’를 세우려면 본인만의 브랜드와 콘텐츠, 사람 등 기둥을 갖춘 후 주위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빅텐트’로 불러모았어야 하지만 반 전 총장은 그런 수순을 밟지 못했다.
그가 귀국 비행기 안에서 자신의 이념이라고 표방한 ‘진보적 보수주의’의 실체도 불분명했다. 반 전 총장은 대선 불출마 선언 다음 날인 2월 2일 “진보적 보수주의라는 주장이 논란을 일으킨 이유를 알 수 없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은 전체 국민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정치에선 모순된 수사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반반행보’라는 지적이 이어지자 반 전 총장에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빅텐트’가 아니라 ‘빈텐트’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부 갈등도 만만치 않았다. 반기문 캠프에 모여든 측근들의 힘겨루기에 체계적이고 통일된 조직이 세워지지 않았다. 캠프로 찾아온 여당의 다선의원에게 노트북컴퓨터 한 대 주고 일을 시작하라고 했을 정도로 사람 관리가 되지 않았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반기문 캠프와 연락이 잘 안 된다는 불평이 높았다.
같은 시기 ‘빅텐트’ 경쟁을 하던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에게도 밀리기 시작했다. 안 전 대표는 38석의 현역의원을 보유한 정당 소속이라는 것이 가장 큰 힘으로 작용했다. 호남이라는 든든한 지지기반도 빼놓을 수 없었다. 안 전 대표는 기본적으로 양쪽 기둥은 세워져 있는 상황에서 출발한 셈이었다.
나머지 기둥은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손을 잡으면서 채워가기 시작했다. 1월 30일에 만난 두 사람은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등 사실상 연대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각자 주창해온 ‘공정성장’과 ‘동반성장’을 함께 실현하기로 하는 등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추기로 했다. 이미 이들은 2012년 대선 연대가 무산된 이후에도 안 전 대표가 정 전 총리에게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며 ‘안-정 연대’를 시도해왔다.
한 정치평론가도 “빅텐트의 실질적인 핵심 세력은 국민의당”이라면서 “정운찬 전 총리에 이어 손학규 의장과 연대를 더하면 안철수 빅텐트는 더욱 튼튼해질 것”이라며 안 전 대표의 우위를 내다봤다.
1월 31일 대선 불출마 선언 하루 전날 반 전 총장은 마포캠프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모든 정당과 정파로 개헌추진협의체를 구성해 대선 전 본격적으로 개헌 추진에 나서자”고 공개 제안했다. 이어 “외교·안보·통일 등 외치는 대통령이 맡고 경제·사회 등 내치는 총리가 담당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을 주장했다. 또 “5년 단임 대통령제를 폐기하고 분권과 협치가 가능한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차기 대통령 임기도 충분히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했다.
반 전 총장의 ‘대선 전 개헌’ 주장은 1월 25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먼저 나왔다. 반 전 총장은 “패권과 편 가르기에서 분권과 협치의 좋은 정치로 가야 하고 개헌은 대선 전 이뤄야 한다”고 했다. 설을 앞두고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반 전 총장은 대선 전 개헌에 유보적인 문 전 대표를 비판하며 ‘양자구도 만들기’에 공세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개헌추진협의체 제안…뒤늦은 비전 제시
반 전 총장은 이날 정치권을 향해 사실상 마지막 카드를 뽑아든 셈이다. 귀국 이후 계속 떨어지고 있는 지지율이 문제였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 조사 결과를 보면 반 전 총장 지지율은 지난해 10월 셋째 주 22.2%로 18.9%인 문 전 대표보다 앞서고 있었다. 그리고 12월 셋째 주 23.1%로 정점을 찍은 뒤 귀국 직후인 1월 둘째 주 22.2%를 기록한 반 전 총장 지지율은 셋째 주 19.8%, 넷째 주 15.4%까지 떨어졌다(그래프 참조·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반 전 총장은 여야 대선주자 지지율 2위를 유지했지만 문 전 대표가 1월 셋째 주 29.1%에 이어 넷째 주 32.8%를 기록해 차이는 갈수록 벌어졌다. 2월 1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처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서도 문 전 대표가 32.8% 지지를 받아 13.1%의 반 전 총장을 크게 앞섰다.
정치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반 전 총장의 이날 제안에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기자간담회 직후 곧바로 독자 세력화나 기존 정당 입당 등 다른 정치적 선택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더는 카드가 없었다. 이런 비전은 귀국 초기 제시했어야 반향을 불러올 수 있었으나 지지율이 10% 이상 빠진 뒤에 내놓자 ‘약발’이 전혀 없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귀국 후 주요 일지◆민생 탐방기
1월 12일 귀국. 서울역 거쳐 사당동 자택 도착
13일 국립서울현충원 전직 대통령 묘역 참배.
청년들과 김치찌개 점심
14일 충북 음성·충주 고향 방문
15일 경기 평택 2함대 사령부 방문, 천안함 추모
16일 경남 거제조선소와 부산 자갈치시장 방문
17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 참배. 전남 진도 팽목항 방문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참배 후 조선대 강연.
대구 서문시장 방문
◆정치권 접촉기
1월 19일 국립대전현충원 참배.
이명박 전 대통령, 손명순 여사 예방
20일 정세균 국회의장,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면담.
조계사 방문
21일 강원 평창 방문 취소
22일 서울 마포캠프 사무실에서 정책 다듬기
23일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들과 간담회.
연합뉴스, KBS와 인터뷰
24일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면담.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방문
25일 새누리당 의원들과 회동. 관훈클럽 토론회 참석
26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 참배.
김형호 전 국회의장 면담
27일 서울 동작경찰서 남성지구대와 동작소방서 방문.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면담
28일 충북 음성 선산 성묘
29일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 면담
30일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 면담
◆비전 선포 및 사퇴
1월 31일 개헌추진협의체 제안
2월 1일 새누리당, 바른정당, 정의당 대표 예방.
대통령선거 불출마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