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1932~2006)은 다양한 작업도구가 있는 작업장에서 비디오를 예술작품으로 만들었다. 목공소 같은 작업장 벽에는 일하면서 끄적인 낙서도 있다. 작품을 구상하며 고심하던 거인의 땀 냄새가 거기 배어 있는 듯하다. 2008년 10월 문을 연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 2층에 뉴욕의 마지막 작업장을 재현해놓았다. 여느 화가의 화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빠르게 전개되는 수많은 비디오 화면의 변화나 담담히 앉아 있는 철부처의 고독이 탄생한 공간이다.
11월 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에서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 문화로 세상을 바꾸다’ 특별전이 개막했다. 한국 문화재의 수집 및 보존을 대표하는 간송 전형필의 옛 그림과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세계적 작품이 도심 한 공간에서 처음 만난 전시회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한 조선 중기에서 말기까지 주요 화가의 그림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전시해온 백남준의 대표작이 묶여 전시되고 있다. 17세기 김명국과 18세기 심사정의 남종화가 나오고, 숱한 기행으로 유명한 18세기 최북과 19세기 장승업의 작품이 백남준의 ‘TV첼로’ ‘인디언게이트’ ‘달에 사는 토끼’ ‘머리를 위한 선’ ‘코끼리 마차’ ‘비디오 샹들리에 1번’ 등과 자리를 같이 했다.
백남준의 대표작 ‘TV부처’와 자신의 눈을 찔러 ‘한국의 고흐’라 불리는 최북(1712~1786)의 ‘관수삼매’(觀水三昧·물을 보며 삼매에 들다)의 조합에 관심이 집중됐다. 최북은 ‘붓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란 뜻인 ‘호생관(毫生館)’을 호로 썼다. 중인 출신인 그는 직업화가가 돼 서울과 평양, 동래, 만주 등을 떠돌았다. 30대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1747년에는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건너가 그림을 그렸다. 최북은 그림 값이 너무 적으면 찢어버렸고, 너무 후하면 그림 값도 모른다며 손가락질했다. 술에 취하면 자기가 최고라고 말하던 자존심 강한 인물이었다. 한 세도가가 힘으로 그림을 빼앗으려 하자 자신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며 스스로 눈을 찔러 애꾸가 됐다. 금강산을 유람할 때는 “천하의 명인 최북은 천하의 명산에서 죽어야 한다”며 구룡연에 투신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 문장가 남공철은 “최북은 화가이면서 주객이기도 했고 또한 미치광이였다”고 평했다. 그는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다 성 모퉁이에서 쓰러져 얼어 죽었다.
최북의 ‘관수삼매’는 가부좌한 스님이 물살이 빠른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그림이다. 스님 앞에 있는 작은 종이는 경전 일부를 쓴 것인 듯하다. 스님이 본인 내면의 참된 자아에 이르지 못했는지 아직 경전 구절에 집착하고 있다. 나와 물은 둘이 아니고 하나인 것을 직관한 깨달음을 담은 그림이다. 바로 그 옆에 백남준의 1974년 작품 ‘TV부처’가 전시된다. 부처는 TV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다. 관람객이 TV 속 부처를 바라보려면 폐쇄회로 카메라에 잡혀 오히려 관람객 본인의 모습이 나온다. 화면에서 관람객은 부처가 된다. 스스로 응시하고 집중할 때 자신도 모르게 깨달음이 다가온다. 이 설치 작품은 서구 철학계와 지식인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옛 그림과 현대 거장의 작품에서 우리는 성찰의 의미를 알게 된다. 또 다른 최북의 작품 ‘호계삼소’(虎溪三笑·호계 세 사람의 웃음소리)와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 ‘슈베르트’ ‘율곡’ ‘찰리 채플린’도 깨달음이 주제다. 본인이 물려받은 재능과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낸 인물들이 거기 있다. 깊은 울림을 전하는 이 전시는 내년 2월 5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