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최악.’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흔히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평양은 러시아와의 관계 증진을 통해 이를 돌파하려 시도하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고립에 빠진 모스크바는 이에 장단을 맞춰왔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현실화될 수 없는 제약도 차고 넘친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세 나라의 관계를 공시적·통시적으로 조명한 영문계간지 ‘글로벌아시아’ 최신호의 기획특집을 번역, 소개한다. 〈편집자 주〉
많은 전문가는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과 차별화될 수 있는 통치 스타일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분석해왔다. 특히 자신만의 대중적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시도라는 것. 이 과정에서 김정은은 할아버지인 김일성의 정책결정 방식을 따르고 있다는 징후도 엿보인다. 2013년 그가 내세운 핵 개발과 경제건설을 함께 이루자는 병진노선 역시 일찍이 경제·군사 부문의 동시 발전을 외쳤던 김일성의 기조를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일개 외국에 자원 팔아넘겼다’
김정은의 ‘김일성 따라 하기’는 이것만이 아니다. 양대 이웃국가인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경쟁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전략도 마찬가지다. 지난 수년간 김정은은 중국에 대한 외교적·전략적·경제적 의존에서 벗어나려 애써왔고, 이는 북·중 관계의 긴장감으로 이어졌다. 그 와중에 북한의 외교 어젠다에서 러시아가 갖는 중요성은 한층 강화됐다.김정은이 단순히 러시아로부터 경제, 에너지, 군사 지원 등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만은 아니다. 북한이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강하다. 러시아를 자신들 편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중국에 대응해 러시아 카드를 꺼내 들거나 러시아에 대해 중국 카드를 쓸 수 있는 여지를 키우는 게 목적이다.
6·25전쟁이 끝난 뒤 북한은 중·러 두 나라 모두와 우호조약을 체결했지만, 이후 공산주의 블록 해체 와중에 빚어진 중국과 옛 소련 사이의 긴장 관계를 영민하게 활용해 양측 모두로부터 지속적으로 물질적 지원을 받아냈다. 그러나 이러한 어부지리 전략은 1991년 소련 붕괴로 타격을 입었다. 94년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일은 새로 탄생한 러시아와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중국을 마주치게 된다. 당시 두 나라는 모두 한국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예컨대 북·중 고위급 교류가 재개된 것은 90년대 말에나 가능했다.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취임과 함께 북·러 관계도 호전되기 시작했다. 평양에 무관심하던 전임자 보리스 옐친과 달리 푸틴은 세계에서 러시아의 위상을 제고하려면 동북아를 무대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판단은 2003년 이후 6자회담 당사국 참여로 이어져 이 지역에서 러시아가 갖는 무게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개인적인 관계도 빠질 수 없다. 푸틴은 옛 소련과 러시아의 역대 대통령을 통틀어 북한을 방문한 유일한 인물이다. 모스크바와 극동러시아에서 잇달아 김정일과 회동을 가졌고, 마지막 회담은 김정일이 사망하기 불과 넉 달 전이었다.
중국은 2002년 2차 북핵 위기가 불거진 이래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좋을지 딜레마에 빠져 있는 상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한반도 비핵화와 안정을 추구한다는 방침에는 변동이 없다. 중국 주도로 시작된 6자회담은 2009년 중단된 이래 여전히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완성된 북한의 3대 권력승계는 중국과 러시아의 정책결정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물론 중국은 김정일 사망에 가장 먼저 애도를 표한 국가였고, 모든 최고위층 지도자가 주중 북한대사관에서 조문했다. 반면 김정은 체제의 초기 행동은 중국을 뒤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베이징의 만류에도 장거리 로켓 실험과 3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군부 및 당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숙청이 이어졌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2013년 12월 장성택의 공개처형이었다. 공개된 판결문에는 대중(對中) 경제협력 과정에서 ‘일개 외국에 국토와 천연자원을 팔아넘겼다’는 혐의가 포함됐다. 이 ‘외국’이 중국을 가리킨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군사 협력에 주목하는 이유
이후 북·중 관계는 악화일로다. 2013년 3차 핵실험 직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누구도 사사로운 이득을 위해 지역 전체, 나아가 전 세계를 혼돈에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당연히 북한을 겨냥한 말이었다. 더욱이 그는 2014년 7월 역대 중국 주석 가운데 최초로 평양에 앞서 서울을 방문한다. 한중 간 고위급 접촉은 확대됐지만 상응하는 북·중 간 교류는 사실상 중단 상태에 빠졌다. 식량과 연료 공급은 필요한 한도 내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김정은 체제가 정책결정 과정에서 중국의 국익을 고려하지 않고 있음은 명확했다. 2015년 중반에 이르러 양국 관계가 사상 최저점에 이른 이유다.2014년까지 북·러 관계는 이와 완전히 대조적이다. 북한의 새 지도자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던 러시아는 김정은 집권 초기 북한과의 관계에서 모멘텀을 이어나가지 못했지만, 관계가 호전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명확했다. 2012년 두 나라는 북한의 대(對)러 부채를 90%(약 110조 달러) 탕감해준다는 데 합의했고, 2014년 말에는 양자 무역 통화로 달러가 아닌 루블을 사용하기로 했다.
2013년 9월에는 러시아 국경도시인 하산과 북한 나선항에서 러시아가 운영하고 있는 화물터미널을 잇는 철도가 재건을 거쳐 개통됐고, 2014년 10월 러시아는 북한에 곡물 5만t을 제공했다. 같은 달 양국은 북한의 철도 시스템과 광산채굴기술 현대화 작업을 러시아가 지원한다는 데도 합의했고, 북한은 석탄과 다른 광물 자원으로 대가를 지급하기로 했다. ‘승리’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20년에 걸친 장기 사업으로 그 규모는 250억 달러(약 28조5000억 원)에 이른다.
김정은은 러시아 역시 방문한 적이 없지만 2014년 2월 소치겨울올림픽과 2015년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식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보냈다. 뒤집어 말하자면 아직 김정은은 지도자 자리에 오른 직후 중국을 첫 해외 순방지로 방문한 아버지 김정일의 관례를 따르지 않고 있다. 그 대신 그는 2015년 초 베이징보다 모스크바를 먼저 방문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흘림으로써 중국을 괴롭히는 전략을 택했다.
군사적 교류 내용도 흥미롭다. 2015년 2월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 총참모장은 중국을 제외하고 북한, 쿠바, 브라질, 베트남과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첨단무기 판매 여부다. 현재 북한 공군은 전투기 600여 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70%가량은 1950~60년대 옛 소련으로부터 제공받은 것이고, 최신예로 꼽히는 미그-29 전투기조차 소련 붕괴 이전에 공급받은 기종이다. 북한은 러시아를 통해 이들을 신형으로 교체하고자 하지만, 열악한 평양의 재정 상황에 북한의 군비 증강에 대한 러시아의 우려가 맞물려 아직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가 언제든 북한을 끌어당길 수 있는 카드인 셈이다.
김일성이 옛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이익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 89년까지 이어진 두 나라의 분열 덕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식에 참석하고자 두 나라 정상이 상호 방문한 2015년 상황은 이를 고스란히 방증한다. 중·러 교역량은 늘어나고, 공동 에너지 사업 체결도 마무리돼 가고 있다.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들어가는 군사 부문 판매 규모도 늘고 있다. 특히 두 나라 모두 미국이 동북아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일본이 군사 태세를 늘려가는 현재 상황에 대해 우려를 공유하고 있다.
‘국제사회 왕따’라는 동질감
반면 이러한 상황은 이를테면 정략결혼에 불과할 뿐, 두 나라가 1950년대 나눴던 최고 수준의 동맹 관계가 회복된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러시아는 새로 부상하는 부국(富國) 중국이 자신들을 깔보고 있다는 불만을 품고 있고, 베이징의 커져가는 영향력이 자국 극동지방에까지 번져오는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중국 역시 그간 자신의 영역 일부로 간주하던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가 보여주는 ‘팽창주의적 행동’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반도에 대한 두 나라의 시각은 많은 부분에서 엇갈리고, 김정은은 바로 이 부분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비핵화를 최대 국익으로 여긴다. 이 때문에 그간 북한과의 특수 관계를 활용해 평양의 돌발행동을 최소화하기 위한 압력을 가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체면을 유지하려 애쓰기도 했다. 그러나 베이징의 이러한 노력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체면은 물론 지역적 이익마저 챙기지 못하는 초라한 계산서만 남았을 뿐이다.
2015년 10월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서열 5위인 류윈산은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자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과 ‘정상적 관계’를 유지하고 나아가 양국 관계를 ‘향상’시키겠다는 메시지였다. 이러한 선의는 올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완전히 짓뭉개졌다. 과거와 달리 중국 측에 아무런 사전 고지가 없었다는 점이 가장 아픈 대목이었다.
러시아 역시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한다. 6자회담 당사국으로서 북한과의 대화 재개에도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최근 수년 사이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와 북한이 모두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 협력해 제재 압박을 줄이고 자국 경제를 되살리려는 러시아의 계산이 깔려 있다는 뜻이다.
북한 역시 러시아를 활용해 외교적 고립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 인권 문제나 대량살상무기 문제가 논의될 때 러시아가 갖고 있는 거부권은 엄청난 카드다. 물론 이러한 바람이 언제나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3월 2일 안보리가 채택한 역대 최강 수준의 대북제재 결의에 러시아가 찬성한 게 대표적이다.
따지고 보면 북한이 러시아와 맺고 있는 긴밀한 관계는 이른바 ‘전방위 외교’의 한 부분에 가깝다. 외형상 김일성을 흉내 내는 것처럼 보이는 김정은의 대외정책은 꼼꼼히 살펴보면 결이 사뭇 다르다. 중국에 기대기보다 직접적인 일대일 방식으로 미국, 한국, 일본 등을 상대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베이징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북한의 정책은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평양은 북·러 관계가 긴밀해지는 것에 중국이 불편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다. 6자회담 재개를 거듭 주장해온 중국은 4차 핵실험 이후 대화를 지지한다는 미지근한 발언 외에는 공식 언급을 삼가고 있다. 하지만 중국 대중의 온라인 여론을 살펴보면 북한 자체만이 아니라 북·러 관계 긴밀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베이징의 대외정책 결정 과정에서 대중 여론이 얼마나 영향력을 가질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최소한 이러한 분위기가 베이징 정책결정자들의 계산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는 될 수 있다.
북·중 국경과 북·러 국경의 차이
그간 북한과 밀월 관계를 누려온 러시아 역시 올해 들어 곤혹스러운 처지이기는 마찬가지다. 본질적으로 모스크바는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것에 반대하지만, 비핵화를 위해 물리적 압력을 사용한 것에도 반대한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미·중 합의 중심으로 마련되고 이 과정에서 자국이 배제된 것에 발끈하긴 했어도, 결국은 제재 강화에 찬성표를 던졌다. 더욱이 제재조치에 석탄과 항공연료가 금수품목으로 지정됐다는 점은 러시아가 구상해온 대북 경제협력 프로젝트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러시아로서는 비공개적인 루트를 통해서라도 평양에 6자회담 복귀를 종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셈이다.
북한에게 러시아는 중국을 제외하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이다. 김정은이 탈중국화 정책을 이어가려면 러시아로 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김정은이 5월 조선노동당 7차 당대회를 앞두고 국내에서의 위상 강화를 위해 추가로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북한의 대러 외교 행보 역시 발목이 잡힐 공산이 크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이미 서방의 눈 밖에 난 러시아지만, 여전히 북한 핵무기는 용인될 수 없다는 서방 세계의 처지를 공유하고 있다. 결국 김정은이 새로운 동맹국으로 러시아를 택해 중국의 대체재로 삼으려 한다면 이는 큰 오산일 수 있다는 의미다.
북한과 러시아의 국경선 길이는 17km이지만,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 길이는 1420km에 이른다. 국제정치에서 지리적 환경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 엄청난 공간적 불균형은 북한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 차이를 보여주는 일종의 상징이다. 북·중 사이에 고조된 긴장으로 김정은은 이 상황을 바꾸고 싶겠지만, 결국 북한의 외교전략상 핵심 파트너는 러시아가 아닌 중국일 수밖에 없다. 평양이 이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 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 아래 아시아 지역의 주요 현안에 대해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의 공론장 구실을 담당한다.
브라이언 브리지스·찬 체포 홍콩 링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ckkang@keaf.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