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내가 정치를 해도 저것보다 낫겠다”고 개탄한다. 정치라는 말만 들어도 짜증이 나는데 입만 열면 정치 이야기를 한다. 지지하는 정당도 선호하는 정치인도 없지만, 특정 정당이 싫어서 또는 특정 후보가 싫어서 상대 정당, 상대 후보를 찍는다. 한국 정치는 동네북이다. 한국인은 정치 스트레스를 넘어 혐오증에 걸릴 지경이다. 그런데 또 정치 이야기를 한다.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와 내일신문 공동기획인 ‘표심의 역습’은 흥미로운 결과들을 보여준다. 2014년 2월과 2015년 6월 두 차례 조사에서 ‘TV나 신문에서 정치권 뉴스를 보면 짜증이 난다’고 응답한 사람이 각각 63.5%, 62%에 달했다. 그렇다고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같은 조사에서 ‘이 세상에 정치가 없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는 응답은 13.2%, 12.4%에 그쳤다. 즉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도 정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진 국민이 절대다수다. 또 ‘내가 정치를 해도 지금 정치인보다 나을 것이다’에 찬성하는 이는 22.5%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도덕성과 전문성을 갖춘 정치인이 정치를 잘해주기를 기대한다. 한국 유권자를 세대, 지역, 계층, 이념 등으로 분석한 ‘표심의 역습’은 ‘국민이 아직 정치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고 결론짓는다.
어떻게 해야 구경하는 정치에서 참여하는 정치로 바꿀 수 있을까. 스기타 아쓰시 일본 호세이대 법학부 교수는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원제 ‘정치적 사고’)에서 결정, 대표, 토론, 권력, 자유, 사회, 한계, 거리라는 8개 키워드를 통해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재인식을 제안했다. 스기타 교수는 1장 ‘결정’ 편에서 “자신이 정치의 당사자라는 생각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그때야말로 정말 무력해져버릴 것”이라며 민주정치인 이상 모든 게 유권자 책임이라 했고, 2장 ‘대표’ 편에서는 “대표란 일종의 배우로서 정치극을 통해 민의의 형성을 돕는 존재”라고 정의한다. 정치인은 각각의 배역을 연기하고 국민은 그들이 펼치는 정치극을 보며 정치적 쟁점이 무엇인지, 대립 축은 어디에 있는지, 나는 누구의 의견에 가깝고, 어떤 점이 다른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8장 ‘거리’ 편에서는 “다양한 가치관 사이의 조정이 바로 정치”라고 정의하면서 정치는 선악을 논하는 장이 아님을 강조했다. 스기타 교수는 ‘정치적 거리’란 개념에 대해 “정치적 거리를 두지 않는 사람은 정치의 과제를 단순화해서 파악하고, 조금만 궁리하거나 새로운 제도 또는 헌법만 있으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정치의 복잡성이나 불투명성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스스로 당사자로서 관여하면서도 거리를 두는 것이 정치를 마주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스기타식 정치 공부는 이처럼 거리를 두고 천천히 정치와 마주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불가사의한 국가
빅터 차 지음/ 김용순 옮김/ 아산정책연구원/
704쪽/ 2만2000원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담당 국장, 6자회담 차석 대표를 지낸 저자가 본 북한은 “국가 간 관계에서 학살에 준하는 정책을 펼치고, 수많은 경제적 실패에도 아직까지 건재한” 불가사의한 민족국가다. 하지만 2005년 9월 미국이 북한 예금계좌 동결을 선언했을 때와 2014년 2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했을 때 북한은 허를 찔려 쩔쩔맸다. 이때 경험을 토대로 북한을 압박하는 전략을 수립하라고 권고한다.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엘렌 디사나야케 지음/ 김성동 옮김/ 연암서가/
364쪽/ 2만 원
저자는 ‘인간이라는 종이 예술을 필요로 한다’는 과학적 가설을 입증하고자 예술을 하나의 행동으로 간주하고 진화생물학, 문화인류학, 형질인류학, 인지심리학, 발달심리학, 서구문화사, 최신 미학 지식 등을 총동원했다. 궁극적으로 예술이 왜 인간의 생존과 사회적 삶에 필연적 요소인지, 예술을 추구하는 고유한 인간 행동의 진화론적 의미는 무엇인지 설명하고자 했다.
생명설계도, 게놈
매트 리들리 지음/ 하영미 외 옮김/ 반니/
440쪽/ 1만8000원
게놈은 유전자와 염색체의 합성어로, 생물 세포에 담긴 유전정보 전체를 가리키고 생명 현상을 결정짓기에 ‘생명설계도’라고도 부른다. 다윈주의자인 저자가 23쌍의 염색체를 크기 순서대로 나열하고 각 염색체 옆에 생명, 종, 역사, 운명, 환경, 지능, 본능, 이기주의 등 인류 본성과 관련된 주제를 붙였다. 성을 결정하는 X와 Y 염색체에 붙은 표제어는 충돌이다.
게코스키의 독서편력
릭 게코스키 지음/ 한기찬 옮김/ 뮤진트리/
408쪽/ 1만7000원
희귀본 서적상, 장서가, 독서광으로 알려진 릭 게코스키의 독서회고록. 읽을거리가 없으면 신용카드 숫자라도 읽을 만큼 읽기 중독자인 그가 삶의 단계별로 책이 어떻게 자신을 채워왔는지 털어놓았다. 네 살 꼬마에게 코끼리라는 동물의 존재를 처음 알게 해준 닥터 수스의 동화 ‘알을 품는 호튼’부터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엘리엇의 ‘황무지’ 같은 고전까지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한 책 이야기.
카뮈로부터 온 편지
이정서 지음/ 새움/ 372쪽/ 1만4200원
2년 전 ‘김화영의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연재를 통해 오역 문제를 지적했던 저자가 ‘이방인’을 번역한 6개월간 과정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했다. 주인공 이윤이 죽은 카뮈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원 문장과 번역 문장을 비교하면서 오역이 어떻게 작품 의미를 훼손하는지를 보여준다.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에멀린 팽크허스트 지음/ 김진아·권승혁 옮김/
현실문화/ 480쪽/ 1만8000원
20세기 초 영국에서 여성참정권 운동을 이끌며 미국 ‘타임’ 선정 ‘20세기 가장 중요한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린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자서전. 에멀린은 “인류의 절반이 자유롭지 못할 때 진정한 평화란 있을 수 없다”며 1903년 여성사회정치연합을 창설했지만, 곧 평화행진만으로는 투표권을 획득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가두시위와 유리창 깨기, 방화, 단식투쟁 같은 전투적 투쟁에 나섰다.
삶의 끝에서
다비드 메나셰 지음/ 허형은 옮김/ 문학동네/
280쪽/ 1만3800원
고교 영어교사인 저자는 학생들에게 ‘우선순위 리스트’를 만들게 해 스스로 원하는 삶의 방향을 설정하도록 가르쳐왔다. 뇌종양 말기 선고를 받고 더는 교단에 설 수 없게 되자 그는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자신이 강조해온 가치들이 아이들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됐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2012년 11월부터 2013년 2월까지 101일간 31개 도시에서 제자 75명을 만난 기록. 저자는 2014년 11월 20일 마흔한 살로 생을 마감했다.
핫시트
댄 샤피로 지음/ 신영경 옮김/ 한스미디어/
440쪽/ 1만8000원
공동창업자를 찾아내 제품을 개발하고, 투자자들을 설득하고, 성공을 이끌어내고, 마지막에 회사를 매각하기까지 스타트업 전 과정을 설명한 책. 창업, 자금 조달, 리더십, 경영, 종반전 등 5단계로 나눠 최고경영자(CEO)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들려준다. 3D(3차원) 레이저프린터를 만드는 스타트업 CEO인 저자가 수십 개 스타트업을 멘토링하며 쌓은 경험을 토대로 쓴, ‘스타트업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서바이벌 가이드북’이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