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를 부른 그룹 이글스의 드러머 돈 헨리는 매니저이던 어빙 아조프에게 지방이나 해외 공연을 갈 때마다 항상 골프장 인근에 있는 호텔과 리조트로만 숙소를 잡게 했다. 그룹 리더 글렌 프레이(Glenn Frey)가 열광적인 골퍼였기 때문이다. 1월 18일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였던 프레이가 류머티즘 관절염, 궤양성 대장염, 폐렴에 의한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 향년 67세. 프레이는 1971년 드러머 돈 헨리, 기타리스트 버니 리던, 베이시스트 랜디 마이스너와 함께 이글스를 결성하고 이듬해 첫 앨범 ‘이글스’를 발표했다. 우리에게 알려진 ‘호텔 캘리포니아’가 지금부터 40년 전인 1976년 발표되면서 이글스는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그 밖에 ‘데스페라도(Desperado)’ ‘더 새드 카페(The Sad Cafe)’ ‘테이크 잇 이지(Take It Easy)’도 대표적 히트곡들이다.
프레이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에는 크리스티 커, 제이슨 고어, 로코 미디에이트, 도티 페퍼, 존 댈리 등 프로골프 선수들이 전하는 조의(弔意)의 글이 끝없이 이어졌다. 아놀드 파머는 프레이와 함께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어깨동무한 사진을 올려 고인을 기렸다. 한창 시절 타이거 우즈는 시즌이 끝난 후 음악가 친구들을 불러 ‘타이거 잼’ ‘블록 파티’라는 이름의 행사를 가진 뒤 여기서 나온 수익금을 기부하곤 했다. 프레이는 우즈가 단골로 초청한 가수였다. 영국 런던의 명문 코스 서닝데일골프클럽은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조기를 게양했다.
가수 한 명이 죽었다고 프로선수들과 골프장까지 모두 나서 애도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가 PGA투어에 남긴 족적이 무척 크기 때문이다. 심지어 태평양 서해안을 따라 열리는 밥호프클래식, AT&T페블비치내셔널프로암 등 일명 서해안 윙(West Coast Wing) 대회들이 모두 프레이의 영향력과 노력으로 이만큼 발전했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 그는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30여 년간 적극적으로 자선 골프이벤트를 개최하는 한편, 할리우드 스타가 참여하는 골프 대회를 키운 숨은 공로자였다.
프레이가 사망한 바로 그 주 라킨타 PGA웨스트에선 고인이 무척 아꼈던 밥호프클래식 대회가 열려 관계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프레이는 라킨타 PGA웨스트에 페어웨이 빌라 한 채를 보유한 골프장 회원으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7년 중 6번을 선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이어진 AT&T페블비치내셔널프로암 대회에서도 96년부터 크레이그 스태들러와 한 조로 호흡을 맞춰 플레이했고, 그중 두 번은 2위를 기록했다.
프레이는 기타는 오른손으로 치면서 골프는 필 미켈슨처럼 왼손으로 쳤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벨에어골프장에서 그와 자주 라운드를 펼쳤던 프로골퍼 프래드 팩슨은 “프레이의 류머티즘 관절염이 심해지면서 슬라이스 샷 빈도도 점점 늘었다”며 “하지만 숏게임에선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투지를 보이곤 했다”고 아쉬워했다. 골프 전문지 ‘골프다이제스트’가 2년에 한 번씩 발표하는 음악가 핸디캡 랭킹에 따르면 그는 한평생 핸디캡 15를 유지했다.
지인들에 따르면 프레이는 그래미상을 받거나 음반이 다 팔리는 것보다 페블비치 18번 홀 티잉그라운드에 서는 것을 더 가치 있게 평가했다고 한다. 그래서 종종 라운드할 때면 “세상에 여기보다 더 좋은 데가 어디 있어?”를 연발하곤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호텔 캘리포니아’의 후렴구는 이렇다. ‘호텔 캘리포니아에 온 걸 환영해요. 이곳은 아름다운 곳이죠. 사람들은 이곳에서 인생을 즐기고 있어요.’ 프레이가 가는 공연장 옆에 골프장이 있었기에 이런 멋진 가사가 나오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