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병신년(丙申年)은 붉은(丙) 원숭이(申) 해라고 한다. 십간십이지를 해석한 상징적 표현이지만, 원숭이 가운데는 정말 ‘붉은털원숭이’라는 종이 있다. 이 원숭이가 원숭이해를 맞아 사람들에게 고약한 선물을 안겨줬다. 최근 중남미 임신부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소두증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지카바이러스다.
연초 외신을 통해 지카바이러스와 소두증 얘기를 듣기 전까지 사람들은 대부분 이 두 단어를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소두증은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작은 기형을 가리키는 말로, 이 증상을 갖고 태어난 아기는 발작과 발달지체, 학습장애, 운동장애 등을 보이며 심할 경우 사망한다. 그동안 소두증은 희귀질환이자, 유전적 결함이 주요 요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브라질 보건당국이 동부지역에서 소두증 신생아가 급증하는 현상을 발견했고, 그 뒤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2월 2일 현재 4783건의 사례를 확인했다. 이는 평년의 수십 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보다 6개월 앞선 지난해 5월 브라질에서는 이집트숲모기가 옮기는 지카바이러스가 나타나 많은 사람이 감염됐다. 이에 따라 임신 초기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임신부들이 소두증 아기를 낳은 것 아니냐는 가설이 급부상했다.지카바이러스가 확산되자 결국 세계보건기구(WHO)는 2월 1일 ‘국제보건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마거릿 챈 WHO 사무총장은 “현재 급격히 퍼지고 있는 지카바이러스가 소두증과 신경계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며 비상사태 선포 배경을 설명하면서도 “하지만 인과관계가 확실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소두증 신생아 또는 태아(유산한 경우)에게서 지카바이러스가 검출된 사례는 15건이 보고됐다. 소두증 진단 4783건 가운데 면밀히 조사한 1113건에서 산모가 확실히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가 404건이었다.
이런 정황 증거에도 ‘지카바이러스 감염이 신생아의 소두증을 일으켰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작용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된 임신부 대다수가 머리 크기가 정상인 아기를 출산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최근 몇몇 의사는 소두증 사례가 과장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상과 소두증을 나누는 머리 크기 기준이 애매한 상태에서 소두증 공포가 높아지자 의사들이 웬만하면 소두증 진단을 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소두증 진단을 받은 아기에 대한 정밀 재진단 결과 732명 가운데 270명만이 진짜 소두증이었다. 나머지는 오진이었다. 물론 이를 감안하더라도 소두증이 급증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브라질은 요즘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2월부터 시작되는 우기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지카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집트숲모기가 급증할 테고, 만일 둘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 올 연말에도 소두증 신생아가 많이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아열대기후 지역이 대부분인 브라질에는 연중 모기가 있지만 건기와 겨울(그래도 평균기온이 20도가 넘는다)에는 상대적으로 출현 빈도가 낮다. 브라질 당국은 8월(남반구라 겨울)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기간에 임신부의 자국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유전자 변이 가능성
지카바이러스는 1947년 아프리카 우간다 지카숲에 사는 붉은털원숭이 혈액에서 처음 검출됐다. 지카는 루간다어(우간다의 주요 언어)로 ‘울창하다’는 뜻으로, 여기서 바이러스 이름이 나왔다. 이듬해 이 지역에 서식하는 모기에서 지카바이러스가 검출되면서 모기가 매개해 원숭이가 감염되는 바이러스로 밝혀졌다.
1950년대 사람이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가 처음 보고됐지만 이는 드물게 일어나는 ‘사고’로 간주됐다. 그리고 감염되더라도 80%는 증상이 없고 증상이라야 가벼운 발열과 발진, 두통을 며칠 앓는 게 고작이었다. 이러한 증상은 ‘지카열’이라 불리며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그런데 2007년 미크로네시아 얍(Yap) 섬에서 지카열 ‘팬데믹’(대유행)이 일어났다. 증상이 나타난 환자는 49명에 불과했지만(죽거나 입원한 사람은 없었다), 그 뒤 3세 이상 주민을 대상으로 혈청검사를 한 결과 대상자의 73%가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이를 전환점으로 지카바이러스는 본격적으로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2013년 남태평양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타히티 섬)에 상륙한 지카바이러스는 이듬해까지 인구의 10%인 3만여 명을 감염시켰다. 그중에는 입원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태의 환자도 있었다. 특히 73명은 말초신경이 손상되는 ‘길랑바레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지카바이러스가 심각한 신경질환도 일으킬 수 있음이 알려진 첫 사례다. 이후 지카바이러스는 남미와 중미에 상륙해 수많은 사람을 감염시키고 현재 소두증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그렇다면 존재가 알려진 뒤에도 60년 넘게 얌전히 있던 ‘녀석’이 왜 갑자기 공포의 대상이 됐을까. 유전자에 변이라도 생긴 것일까. 최근 연구 결과는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음을 알려주고 있다. 지카바이러스 게놈(genome·유전체)은 2007년 처음 해독됐는데, 그 뒤 추가 연구를 통해 지카바이러스가 아프리카형과 아시아형으로 갈라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금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시아형으로, 최근 연구 결과 NP1이라는 유전자에 변이가 발생했으며 그 결과 인체 감염 시 증식 속도가 빨라진 것으로 보인다.
지카바이러스 공포가 확산해도 ‘나는 중남미에 갈 일이 없으니 상관없는 얘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유감스러운 사실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지카바이러스를 옮기는 숲모기 종류인 흰줄숲모기가 살고 있다는 점이다. 중남미를 여행하다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귀국해 흰줄숲모기에 물리면 한반도에도 지카바이러스가 퍼질 수 있는 셈이다. 다만 보건당국은 그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또 하나 우려할 점은 지카바이러스가 사람 사이에서도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모기가 매개하는 바이러스는 사람 사이에서는 옮지 않는다. 그러나 지카바이러스는 성관계를 통해 감염된 사례가 3건 보고됐다(셋 다 정액을 통해 남성에게서 여성에게로 옮겨갔다). 따라서 남편이나 연인이 중남미지역에 다녀왔을 경우 한동안 금욕하거나 성관계 시 콘돔을 쓰는 게 좋다.
이러한 공포는 언제쯤 사라질까. 지카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를 전부 없애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얘기인 만큼, 결국 해결책은 백신 개발이 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지카바이러스 백신을 만드는 일이 크게 어렵지는 않을 듯하다. 지카바이러스와 구조가 비슷한 황열바이러스, 일본뇌염바이러스, 뎅기열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 이미 성공적으로 개발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동물실험과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므로 일이 잘 풀리더라도 수년은 지나야 사람들이 지카바이러스 백신을 접종할 수 있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