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북한이 4차 핵실험에 이어 광명성 4호 발사까지 단행했다. 최근 몇 차례 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북풍’이 이번 선거엔 어떤 영향을 끼칠까. 박근혜 대통령의 대통령선거(대선) 공약이던 ‘경제민주화’ 대신 ‘경제활성화’를 외치는 새누리당이 승기를 잡을 수 있을까. 정권심판론에 맞불을 놓은 야당심판론, 국민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호주머니 속 한 표를 만지작거리는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이슈는 무엇일까. 20대 총선의 승패를 가를 5대 변수를 분석했다.
1 경제활성화 vs 경제민주화
선거에서 경제는 언제나 중요한 변수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아니, 올해는 특히 더 그러하다. 본격적으로 경기 침체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저성장은 기정사실이다. 다만 성장률이 얼마나 떨어질지, 얼마나 오래갈지가 문제일 뿐이다. 가능한 한 덜 떨어지길 바랄 뿐이고, 그 기간도 짧길 바랄 뿐이다. 마이너스 성장으로 가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자, 10년보다 길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장일까 분배일까. 당장은 분배도 한 방법이다. 가진 자의 돈을 가지지 못한 자에게 나눠줘 국내 시장, 곧 내수를 확대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식으로 영원히 버틸 수는 없다. 가진 자의 돈까지 고갈되면 나눌 것도 없어진다. 공멸하는 길이다. 단기적으로는 분배를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성장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가진 자는 말한다. “나눠 먹고 끝내자는 말인가. 나도 알고 보면 빚더미다.” 가지지 못한 자는 말한다. “우리야말로 빚더미다. 우리 덕분에 번 돈인데 조금 풀어라. 돈을 풀어야 소비도 늘어날 것 아니냐.”
성장이냐 분배냐 논란이 오가는 사이에도 경기는 더 나빠질 것이다. 솔직히 우리에겐 성장도 필요하고 분배도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권은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경제활성화와 경제민주화 가운데 어느 쪽인지 선택하라고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이미 경제활성화 법안과 노동개혁 법안의 처리를 압박하는 중이다. 여기에 대해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은 소득주도성장론으로, 국민의당은 공정성장론으로 맞불을 놓겠다는 전략이다. “그래도 성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일단은 분배를 해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 사이에서 선택의 날은 다가오고 있다.
2 안보 원죄론 vs 안보 무능론
최근 북한의 공세가 거세다. 4차 핵실험에 이어 광명성 4호 발사까지 단행했다. 북한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부인하려 해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냥 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제거에 나설 것인가. 현실로 받아들인다면 방어 전략을 세워야 할 테고, 제거에 나서기로 한다면 공격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당장 방어 전략 가운데 하나를 놓고 여야의 생각이 갈린다. 정부 여당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를 서두르는 반면, 야당은 그에 반대한다. 정부 여당도 처음부터 사드 배치를 찬성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청와대와 정부는 미국 측으로부터 요청받은 바도 없고, 논의한 바도 없고, 결정된 바도 없다는 이른바 3NO(No Request, No Consultation, No Decision)를 고수해왔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와 ICBM 보유가 현실로 다가오자 황급히 태도를 바꿨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정부 쪽에서 김정은 정권의 교체, 곧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주장도 등장했다. 물론 새누리당 일각에서 핵무장론까지 나왔고 일부 보수단체의 동조 움직임까지 나타난다. 반면 더민주당 친노(친노무현)계 일부는 북한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내놔 논란이 일고 있다. 여기에 대해 새누리당은 또다시 종북숙주론을 제기할 개연성이 높다.안보 원죄론을 둘러싼 논란도 여전하다. 새누리당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화해협력정책, 특히 대규모 대북송금이 북핵 개발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더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대북 압박 일변도 정책이 화를 키운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보수정권이 안보에 유능하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무능했다는 지적이다. 안보 원죄론과 안보 무능론 사이에서도 국민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원죄에 대한 심판이냐, 아니면 무능에 대한 심판이냐.
북풍, 곧 북한 변수는 최근 선거에게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조금 다를 듯하다. 북한의 최근 태도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에도, 한국 총선에도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하는 눈치다. 북풍은 냉풍과 온풍 두 종류다. 무력시위가 냉풍이라면 대화공세는 온풍이다. 무력시위 뒤 대화공세는 북한의 정형화된 전략이다. 이번 봄 내내 북한은 냉풍과 온풍으로 미국과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그리고 4월 총선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3 복지 무책임론 vs 복지 포퓰리즘
차라리 희망을 주지 말았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은 희망을 남발했다. 수많은 무상 시리즈가 명백한 증거다. 영·유아 보육료도 지원해주겠다고 했고, 고교 무상교육도 보장해주겠다고 했다. 여야가 따로 없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자 누구도 전적으로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미루고 지방정부는 다시 지방교육청에 미룬다. 연일 서로 뒤엉켜 싸울 뿐이다.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공방과 보육대란은 이제 연례행사다.총선을 앞두고 저들은 또다시 희망고문에 나설 것이다. 이번에는 속지 않겠다고 다짐해보지만 솔직히 귀가 솔깃해지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은근한 기대에 호주머니 속 한 표를 만지작거리게 될 것이다. 저들은 희망을 남발하는 데 선수들이지만 희망을 깨는 데도 선수들이다. 상대방이 약속하는 달콤한 것은 무조건 공격 대상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야당은 과감한 무상 지향적 시리즈로 승부수를 던질 것이다. 당장 2월 11일 더민주당이 발표한 총선 민생복지 공약에서도 그런 내용이 다수 눈에 띈다. 이미 한 차례 논란을 빚은 소득하위 70%에 기초연금 20만 원을 차등 없이 지급하는 내용, 육아휴직 급여를 월 통상임금의 40%에서 100%로 인상하는 내용, 박 대통령도 약속했지만 아직 지키지 못하고 있는 고교 무상교육 등을 포함시킨 것이다. 각각 수천억 원이 소요되는 사업이다.
아직까지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은 복지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더민주당의 복지공약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은 처음에는 포퓰리즘이라며 공세를 퍼부을 것이다. 그렇게 눈치를 보다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면 막판에 뛰어들 것이 분명하다. 이런 식으로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진 듯했던 무상 지향적 복지공약은 실행 단계에 접어들면 또다시 책임 회피 속에 길을 잃을 것이다. 이럴 때마다 야당은 정부 여당의 복지 무책임론을 들고 나올 것이다. 포퓰리즘에 휘둘리고 무책임론에 흥분하는 사이 표심이 어디쯤에서 멈출지 두고 볼 일이다. 물론 너무 휘둘리지 말고 너무 흥분하지도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4 야당심판론 vs 정권심판론
이번에도 더민주당은 정권심판론을 제기할 것이다. 가장 만만한 선거 전략이기도 하지만 잘하면 바람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당첨만 된다면 복권만큼 손쉬운 돈벌이도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정권심판론은 최근 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2012년 총선 이후 대선을 거쳐 각종 재·보궐선거까지 연전연패를 유발했을 따름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권심판론이 위력을 발휘했다. 정말 심판을 해야 할 정도로 독재가 심했기 때문이다. 그때 이후 많은 세월이 흘렀다. 민주화의 갈증이 얼마간 해소됐고 진보정권도 두 차례나 경험했다. 보수정당이 역으로 정권심판론을 제기하는 모습도 봤다. 이제 정권심판론은 흘러간 옛 노래 같은 느낌을 줄 뿐 아니라, 누가 누구를 심판한다는 말이냐는 자조적 반응만 유발할 따름이다. 보수정권도 진보정권도 실망스럽기는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는 것을 국민이 알아버린 것이다.이런 변화를 감지한 새누리당이 이번 총선을 앞두고 새롭게 내놓은 상품이 바로 야당심판론이다. 가장 도덕적인 척했지만 임기 말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은 노무현 정권의 핵심이던 친노계가 지배하는 정당이자, 19대 국회 내내 국회선진화법 뒤에 숨어 비생산적인 반대만 일삼은 더민주당은 심판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처음 들어본 말인지라 솔깃했고 참신했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더민주당 비주류가 탈당해 새 정치와 중도개혁을 외치며 국민의당을 창당한 것이다. 아직 당세가 약하다고는 하지만, 호남에서는 더민주당과 경합 내지 강세를 보이는 새로운 야당의 출현은 더민주당 내 친노계를 겨냥한 야당심판론을 무디게 만드는 요인임이 분명하다. 박 대통령이 연일 국회심판론을 제기하는 것도 야당심판론을 무디게 만드는 요인이다. 날이 서야 하는데 자꾸 무뎌지는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어떤 신상품을 선보일지 두고 볼 일이다. 더민주당이 구제품인 정권심판론을 버릴지 여부도 물론 변수라 하겠다.
5 여권분열론 vs 야권연대론
야권연대 역시 진보진영의 단골 선거 메뉴다. 효력은 불분명하지만 일단 보기에는 그럴듯하다. 무엇보다 계산이 간단하다. 복잡한 방정식을 풀 필요도 없이 덧셈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정치공학이지만, 따지고 보면 게으른 자들의 선거 전략일지도 모르겠다. 더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대표 사퇴에 임박해 서둘러 정의당과 연대 합의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연일 국민의당과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당 대 당 선거연대가 힘들다면 박빙 승부가 예상되는 수도권에서 지역구별 후보단일화라도 성사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국민의당 내에서는 기류가 엇갈린다. 야권연대를 몰락으로 가는 길이라고 보는 시각과 그래도 연대를 해야 당선자 수를 늘릴 수 있다는 시각이 공존하는 것이다. 더민주당 처지에서는 선거연대가 무조건 유리하다. 제1야당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반면 국민의당 처지에서는 유불리 판단이 용이하지 않다. 결국은 정당과 후보 지지율인데, 아직 어떤 예단도 하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정당도 모습을 갖춰가는 단계고 후보도 영입 중이다. 모든 것이 진행형인 상태에서 선택을 해야만 한다. 선거연대를 할 경우 지역구 당선인이 늘어날 수 있는 반면, 비례대표 당선인은 줄어들 것을 각오해야 한다. 선거연대로 탈당 명분이 훼손되면서 아예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다. 선거연대를 하지 않고 끝까지 간다면 지역구 당선인은 줄어들겠지만 오히려 비례대표 당선인은 늘어난다. 특히 보수세력 지지층을 일부 흡수함으로써 전체 야권의 의석수가 늘어나는 효과를 누릴 수도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더민주당 같은 탈당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아예 없을 것으로 보기 어렵다. 박 대통령과 친박(친박근혜)계의 이른바 진박(眞朴) 마케팅이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로서는 절박할 것이다. 임기 말 레임덕도 막아야 하고 임기 이후 안전도 도모해야 한다. 문제는 수위다. 이미 도가 지나쳤다는 지적이 나오는 속에서 일부 비박(비박근혜)계 출마자는 아예 경선을 포기했거나,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강행할 움직임을 보인다. 이런 일이 곳곳에서 벌어진다면 여권분열로 오히려 야권이 반사이익을 얻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국민은 위대해야 한다. 절묘한 균형감각을 발휘해 국가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이쯤에서 멈추기엔 너무 아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