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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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찬 인생’ 살고 싶다면 다양한 경험 쌓으며 인생을 낭비해보라

[김재준의 다빈치스쿨] 정신없이 바쁜 것 아닌, 나누며 멋있게 사는 에너지 넘치는 삶

  •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입력2024-03-12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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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한 갤러리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주제로 이야기 한 적이 있다. 필자가 좋아하는 말인 “Live a full life(꽉 찬 인생을 살아라)”에 대해 설명했는데, 필자의 책 ‘화가처럼 생각하기 1’에 관련 내용이 담겼다.

    “인생을 허비했다” 생각된다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뭔가를 끝까지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네, 맞습니다. 정말 끝까지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것의 중요성을 잘 모르고 살죠. ‘Live a full life(꽉 찬 인생을 살아라).’ 내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사람은 대부분 그저 그렇게 살아가죠.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꽉 찬 인생을 살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김재준의 ‘화가처럼 생각하기 1’ 중에서)
    



    어느 날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연재하는 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이 책의 해당 부분을 소개하며 멋진 해설을 내놨다. ‘꽉 찬 인생’이라는 제목의 글로, “늘 빡빡한 일정으로 정신없이 바쁜 것이 꽉 찬 인생은 아니다”라는 것이 요지였다. 고 이사장은 “자기 일에 몰두하고 초지일관하되, 지치지 않도록 쉴 때 쉬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도움받고 도움도 주고, 시간도 나누고 마음도 나눠가면서 맛있게 멋있게 사는 인생, 그렇게 하루하루가 에너지 넘치는 삶이 꽉 찬 인생이다”라고 했다.

    필자의 삶은 어땠을까. 넘치는 호기심을 가진 덕에 다양한 경험을 해봤지만, 반대로 지나칠 정도로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도 든다. 하고 싶은 일도 모두 해본 것 같아 여한이 없는데, 어쩐지 쓸쓸한 느낌이 드는 것도 피할 수 없다. “삶이라는 모순으로 가득 찬 무대에서 나는 어떤 배우였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중요한 배역을 맡은 삼류 배우였을까, 작은 역할을 맡은 일류 배우였을까. 아마도 재능 없는 엑스트라가 아니었을까.

    영화 ‘아마데우스’ ‘빠삐용’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위부터). [IMDB 제공]

    영화 ‘아마데우스’ ‘빠삐용’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위부터). [IMDB 제공]

    음악 애호가라면 대부분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연주를 즐기고 좋아한다. 하지만 피아노에 인생을 건 피아니스트라면 사뭇 얘기가 다르다. 임윤찬의 연주에 감탄하면서도 그에 대한 시기와 질투, 그에 못 미치는 재능을 가진 자신에 대한 슬픔을 복합적으로 느끼지 않을까. “쏟아지는 박수갈채는 나의 것이어야 하는데 하느님은 왜 나에게는 이런 재능을 허락하지 않으셨을까”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살리에리의 마음이 이랬을 테다. 피아니스트 딸을 둔 어머니가 있다면 임윤찬의 연주에 분노를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부쩍 드는 요즘이다. “내가 꽉 찬 인생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에 씁쓸한 감정도 든다. 당장 영화 ‘빠삐용’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살인 혐의로 감옥에 갇힌 빠삐용이 악몽을 꾸는 장면이다. 그는 꿈속에서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며 재판관에게 무죄를 주장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너는 살인죄로 기소된 게 아니다. 네가 저지른 죄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흉악한 범죄, 바로 인생을 낭비한 죄다.”

    필자는 “인생을 극단적으로 낭비함으로써 오히려 꽉 찬 인생을 산 것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한다. 물론 꽉 찬 인생이 행복한 인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슬프거나 허무한 경우도 많을 테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다양한 체험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 Seize the day, boys.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주인공 존 키팅 선생이 한 말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마라”는 의미다. ‘카르페 디엠’은 고대 로마시대 시에서 나타나듯이, 2000년 전 농경사회와 관련된 은유다. 잘 익은 과일을 따듯이 ‘하루를 따다(pluck the day)’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현재를 얕지 않게, 깊이 꽉 차게 느끼고 향유하라는 의미와도 통한다.

    한국에서 이 말은 자본주의의 극단적 소비성을 반영해 해석돼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투적으로 시간을 소비하도록 강요하는 문구로 받아들이는 이도 적잖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성공하라”는 자기개발적 메시지로 이해하는 이도 있다. “한국은 유교와 기독교, 자본주의의 단점만 가진 사회”라는 비판이 뼈아프게 다가오는 지점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1819~1892)의 시 ‘나의 노래(Song of myself)’를 다시금 읽어보게 만든다. 휘트먼은 시에서 “난 나 자신을 찬미하고, 나 자신을 노래하네(I celebrate myself, and sing myself)”라고 했다. 휘트먼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그 해답은 바로 다음 구절인 “내가 받아들이는 것을, 당신도 받아들이리라, 내게 속하는 모든 원자가 또한 당신을 이루고 있으니”라는 표현에 담겨 있다. 그에게 ‘나’는 ‘당신’과 동일체를 이루는 ‘우주적 나’라고 볼 수 있다. 휘트먼은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고, 자연과 일체가 되는 것을 축하하면서 삶과 자유를 누리하고 말한다. 당시 미국의 젊은 정신까지도 느껴진다. 이번 주말 ‘빠삐용’ ‘아마데우스’ ‘죽은 시인의 사회’ 3편을 연속으로 보며 꽉 찬 인생을 즐겨보려 한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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