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을 85일 앞둔 1월 16일 서울 동작구 사당1동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평소 동작을이 정치권의 관심에서 소외됐다며 이 같은 불만을 토로했다. 이곳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 씨는 “사당역 사거리부터 여기(사당1동)까지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자주 침수된다. 재작년에 특히 수해가 심했는데, 정치인들이 동작구에는 별다른 관심을 안 보여서 정말 서운했다”고 말했다. 그는 2022년 여름 기록적 폭우로 수해를 입은 사당동 주택가 모습이 담긴 영상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분통을 터뜨렸다.
[뉴시스, 이수진 페이스북 제공]
“정치인들, 수해는 막아야 할 것 아닌가”
주민들이 꼽은 또 다른 지역 현안은 교육·교통 인프라 부족이다. 이날 만난 동작을 주민 40대 최 모 씨는 “교육 인프라가 전반적으로 부족해서 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선 아쉽다”면서 “고등학교가 많지 않아 다른 구(區)에 있는 먼 학교에 배정되는 경우도 적잖다”고 말했다. 60대 주민 남 모 씨는 “이수교차로에서 과천(과천대로)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정말 심각하게 막힌다. 아마 서울 시내에서도 손꼽힐 정도 아닐까 싶은데,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지역 정가와 서울시도 주민 여론이 비등하자 대책을 마련하고 나섰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26일 이수과천복합터널㈜의 대표사 롯데건설㈜과 ‘이수~과천 복합터널 민간투자사업’ 실시협약을 체결했다. 동작구 이수교차로와 경기 과천시 과천대로를 잇는 5.61㎞ 길이의 왕복 4차로 도로터널과 저류용량 42만4000㎥의 빗물배수터널을 함께 건설하는 게 뼈대다. 복합터널은 2025년 상반기 착공, 2030년 개통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이 의원과 나 전 의원 모두 서울시에 복합터널 추진을 적극 촉구했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동작을에선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과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의 리턴 매치가 유력하게 예상되고 있다. 이 의원이 지난해 12월 지역구에서 개최한 의정보고회에 홍익표 원내대표와 장경태 최고위원이 참석해 힘을 실었고, 주민 800여 명이 참석했다. 국민의힘 동작을 당협위원장인 나 전 의원은 1월 8일 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해 출사표를 던졌다. 확실한 대진표는 각 당의 공천이 확정돼야 알 수 있지만 지역에서는 “결국 나경원, 이수진의 재대결이 펼쳐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동작을은 1987년 민주화 후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동안 민주당계 정당의 텃밭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동작을 표심은 특정 정당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보이진 않았다. 정몽준 전 의원, 나 전 의원 같은 보수정당의 유력 정치인에게 배지를 달아준 곳이기도 하다. 7선의 정몽준 전 의원이 본래 지역구였던 울산 동구를 떠나 서울에서 재선에 성공한 곳이 바로 동작을이다. 정 전 의원이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치러진 보궐선거에선 나 전 의원이 당선됐다. 이때 나 전 의원은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기동민 후보와 단일화한 정의당 노회찬 후보와 맞붙어 929표 차로 신승했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 동작을을 수성했다. 2020년 21대 총선 동작을 선거는 여성 법조인 출신 두 후보 간의 대결 구도로 치러졌다. 판사 시절 “일본 미쓰비시 사건, 신일본제철 사건 판결이 고의로 지연됐다”며 이른바 ‘사법 농단’ 의혹을 폭로한 이 의원은 정치 신인으로서 52.16%를 득표해 나 전 의원(45.04%)을 꺾었다.
동작을에서도 동(洞)마다 표심에 차이가 있다. 동작을은 사당1~5동, 상도1동, 흑석동으로 이뤄졌다. 이중 사당동은 특히 민주당 계열 정당에 대한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예전부터 호남 출향민이 많이 살았고 향우회 조직도 탄탄하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가령 사당1동의 경우 지난 총선에서 이 의원 득표율이 57.66%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였던 나 전 의원(38.69%)을 18.47%p 앞섰다. 반면 흑석동은 비교적 보수정당 선호도가 높다. 지난 총선에서 패한 나 전 의원이 흑석동에선 52.25%를 득표해 이 의원(44.97%)을 앞섰다. 흑석동에는 한강변 아파트 단지와 고급 단독 주택가를 중심으로 동작구의 대표적 부촌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흑석뉴타운’이 조성되면서 신축 아파트에 대거 입주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달아오르던 2021년 이곳 신축아파트가 실거래가 25억 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흑석동의 한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고령의 원주민이 대거 이주하고, 새 아파트로 비교적 젊은 계층이 이사하고 있다”며 “흑석뉴타운이 들어서며 주민 구성이 바뀐 게 선거 판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동작을 유권자 중 평소 국민의힘,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이들은 각각 나 전 의원과 이 의원에 대한 강한 지지를 나타냈지만, 상당수는 “두 사람이 실제 출마한 후 내건 지역 공약을 보고 누굴 뽑을지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정권심판이니, 야당심판이니 말들이 많은데 그런 건 관심 없고 지역 현안을 해결해 줄 적임자에게 표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여야 지지율이 박빙인 가운데, 제3지대 합종연횡으로 정치권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1월 11~12일 전국 유권자 1003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전화 임의걸기 및 자동응답 방식으로 실시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42.4%)과 국민의힘(39.6%)은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였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 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쪽에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동작을 표심을 고려하면, 4월 총선 결과는 후보의 ‘개인기’에 좌우될 공산이 크다.
현역 프리미엄 vs 지역구 관리
이 의원과 나 전 의원이 다시 맞붙을 경우 각각 현역 프리미엄과 지역구 관리 측면에서 강점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이 꼽은 이 의원의 성과는 동작구 주민들의 숙원 사업인 ‘흑석고(가칭) 개교’ 성사다. 현재 중앙대병원 자리에 있던 중대부고가 강남구 도곡동으로 이전한 후 한동안 흑석동에는 고등학교가 없었다. 이 의원은 지난해 6월 ‘2026년 3월 공립고 신설을 위한 교육청-동작구청 업무협약’ 체결에 기여했다. 당초 흑석동에 고교를 유치하는 방안으로 관악구 소재 학교 이전이 추진됐으나 무산된 바 있다. 이에 나 전 의원과 국민의힘 시·구의원들이 흑석고 신설 방안을 마련해 추진했다. 최근 나 전 의원은 흑석고를 과학중점학교로 지정하고 IB(국제바칼로레아) 프로그램을 도입해 명문고로 발전시키자고 제안했다.나 전 의원의 경우 4선 중진이라는 중량감에 더해 탄탄한 지역구 관리가 강점이다. 한 사당동 주민은 “나경원 전 의원은 지난번 낙선 후 최근까지 지역행사에 부지런히 참석하면서 주민과 접점을 꾸준히 늘려왔는데, 상당히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이수진 의원 지지자라는 한 흑석동 주민은 “이 의원이 국회에서 활약하는 것은 잘 알겠는데, 초선이라 그런지 지역구 주민과의 소통은 다소 아쉬운 것 같다”고 말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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