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을 고궁 매력이 담긴 정원도시로 만들겠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1월 13일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주간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오세훈 하면 ‘개발’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요, 저야말로 서울 문화재와 역사를 ‘복원’하고 ‘보존’해 시민들에게 돌려드리는 시장이라 자부합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1월 13일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문화재 복원에 대한 소신을 밝히며 이같이 강조했다. “도시개발에만 관심 있다”는 일각의 평가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 시장은 2006년 민선 4기로 서울시정을 맡은 후 15년 임기 동안 꾸준히 문화재 복원 정책을 추진해왔다. 흥인지문에서 광화문으로, 광화문에서 다시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서울시의 ‘역사축 사업’은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다(지도 참조).

오 시장이 꿈꾸는 서울은 ‘정원도시’다. 그가 서울 문화재 복원에 관심을 쏟는 이유도 이와 맞닿아 있다. 오 시장은 “우리 고궁 역시 일종의 정원으로 볼 수 있다”며 “시민들이 역사 공간을 거닐면서 역사성을 마음껏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을 녹지생태와 고궁 매력이 담긴 정원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문화재 복원에서 ‘디자인’을 특히 강조했다. “역사성을 주제로 문화재가 돋보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 대목에서 문화재청과 시각차가 있다는 오 시장은 “문화재청이 문화재 복원에 관심이 많고 관련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무엇이 문화재를 돋보이게 하는지 등 디자인 감각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흥인지문 복원, 가장 자랑스러워”

서울 문화재 복원에 힘을 쏟고 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역사 자체의 사실관계에 천착하는 시각이 있고, 역사를 끊임없이 재해석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도 있다. 상반되는 이 두 시각이 때로는 충돌하기도 한다. 무엇이 옳은지는 영원한 논쟁거리다. 이 가운데 역사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밝혀내 복원하는 작업은 문화재청의 임무다. 서울시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후자라고 본다. 2006년 취임 후부터 서울의 큰 자산 중 하나인 역사 문화재 복원에 집중해온 이유다. 서울의 본모습을 시민과 함께 찾아나가는 것이 도시발전은 물론, 시민의 자부심과 연대의식을 강화하는 데도 꼭 필요한 문화적 자산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45세에 서울시장이 됐다. 그때부터 문화재 복원과 주변 경관 정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그 나이에 문화재에 관심이 많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시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도시디자인도 여러 각도에서 할 수 있다. 멋에 중점을 둘 수도 있고, 재미에 중점을 둘 수도 있다. 후자를 펀(fun)디자인이라고 부른다. 이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 탓에 ‘삶이 팍팍하다’고 느끼는 도시민들에게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도록 생활 속에서 잔잔한 재미를 주는 디자인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역사성을 바탕으로 하는 디자인은 도시민에게 역사에 기반한 자부심을 준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오랜 시간 하나하나 구슬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개중에는 10년 이상 공들인 작품들도 있다.”

문화재 복원 행보는 어디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나.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흥인지문 인근을 복원한 일이다. 서울 문화재 복원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민선 4기) 당시 동대문 일대가 훌륭한 역사 문화재와 수려한 자연환경을 갖췄음에도 시민의 접근이 어렵고 주변이 낙후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디자인에서는 배경이 굉장히 중요하다. 배경을 새롭게 디자인하면 문화재의 역사성이 돋보이면서도 주민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지만, 동대문 일대에 ‘동대문운동장’과 ‘이대 동대문병원’이 있었다. 2009년 10월 동대문운동장 터에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을 개장했고, 2010년 5월 이대 동대문병원 터 일대에 ‘흥인지문 공원’을 완공했다. 두 지역의 녹지공원화는 결과적으로 동대문의 경관 변화와 발전을 이끌었다. 특히 흥인지문 공원의 경우 시설물을 최소화하고 낙산 서울 성곽과 연계함으로써 도시 한복판에서 산책과 트레킹은 물론, 휴식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역사성 차원에서는 어떤가.

“역사성 관점에서도 쾌거였다. 과거 일제가 우리 역사 유물 위에 동대문운동장을 지었다. 당시 터를 말끔히 치우지 않고, 그 위를 흙으로 덮어 건물을 올렸다. 동대문운동장을 허물고 나니 성곽 터가 그대로 드러나면서 ‘이간수문’ 등 역사 유적들이 나왔다. 이 역사 유적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안팎으로 보존한 상태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여러 행사가 열리다 보니 이곳에 관심이 쏠리는 경향이 있는데, 뒤쪽으로 가보면 의미 있는 역사 공간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흥인지문 복원은 창경궁 복원과 함께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작업이다.”

“종묘 복원, 운명과도 같은 일”

서순라길 일대(위)와 서울돈화문국악당. [서울관광재단 제공, 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창덕궁 복원은 어땠나. 중간에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

“창덕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서울시민이 가장 좋아하는 궁이자 대표적인 야간 명소다. 요즘 세대는 잘 모를 수 있지만 과거 창덕궁 앞에 주유소가 2개 있었다. 이 주유소들이 창덕궁 주변 경관을 해쳐 마음이 아팠는데 다른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더라. 이 공간을 복원하려면 먼저 두 주유소 부지를 매입해야 했다. 알고 봤더니 당시 이화여대 총장이던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의 부친이 주유소 주인이었다. 감사하게도 이 위원장의 부친이 창덕궁 복원에 협조했다. 이 위원장이 알게 모르게 부친을 설득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덕분에 2009년 주유소 2개 부지를 매입할 수 있었고, 이 자리에 전문 국악공연장인 ‘서울돈화문국악당’과 국내 최초 민요박물관인 ‘서울우리소리박물관’을 지을 수 있었다. 애당초 이 자리는 우리 음악과 관련된 시설이 많은 곳이었다.”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창덕궁 인근이 핫하다. 최근 창덕궁 낙선재 건너편에 있는 서순라길에 가봤는데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더라.

“서순라길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과 종묘를 잇는 도심 속 핵심 가로다. 종묘 돌담을 따라 늘어선 운치 있는 공간인데, 수십 년간 정비가 안 된 상태로 버려져 있다 보니 밤에 혼자 걷기 무서울 정도로 음습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에 노변주차장을 없애고 차로 폭을 축소해 서울을 대표하는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했다. 종묘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바닥에 널찍한 돌을 깔고 나무도 많이 심었다. 지금은 숲에서 산책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서순라길 인근이 힙한 카페촌이 됐더라. 젊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데이트를 즐겨 보기에 좋았다.”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율곡로’를 방문하는 젊은 층도 늘었다.

“창경궁-종묘 연결 복원 사업을 2007년에 시작했다. 알다시피 과거 일본이 종묘와 창경궁을 많이 훼손했다. 지금은 옛 모습을 복원했지만, 과거에는 창경궁 안에 동물원이 있었다. 종묘는 한국 최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만큼 보존과 복원을 마쳐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한테는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2007년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2011년 서울시를 떠난 후 10년 만에 돌아왔는데 그때까지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더라. 다시 서울시로 돌아와 내 손으로 직접 마무리할 수 있어 뿌듯했다. 일제가 없앤 창경궁-종묘 궁궐 담장과 북신문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복원 과정에서 발굴된 옛 종묘 담장 석재와 기초석을 30% 이상 재사용하기도 했다.”

인근 ‘열린송현 녹지광장’도 하나의 문화 축으로 봐도 될까.

“열린송현 녹지광장은 창덕궁과 종묘, 인사동, 경복궁 등을 잇는 문화 연결고리다.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송현동 부지(3만6903㎡)는 서울광장의 3배 규모다. 부지를 둘러싸고 있던 4m 장벽을 1.2m 돌담으로 낮췄고, 담장 안에 1만㎡ 넓이의 중앙잔디광장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배경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은 공간을 비우는 것이다. 앞서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인근을 비워서 디자인했듯이 이곳도 비움으로 배경을 디자인했다.”

광장 부지에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과 ‘이건희기증관’이 들어선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확정된 것은 아니다. 최근 이승만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가 방문했는데 ‘여론이 모이면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두 건축물이 들어오더라도 북악산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중심을 비우는 디자인 원칙은 그대로 살릴 것이다.”

“경복궁, 자금성 못지않아”

10월 15일을 기점으로 광화문 월대가 복원됐다. [서울시 제공]

10월 15일 광화문 월대가 복원됐다. 이를 두고 “녹색과 역사를 중심으로 그려오던 도심 공간 디자인에 화룡점정을 찍은 날”이라고 평가했다.

“역사 유적을 최대한 활용해 도시를 돋보이게 하는 공간을 만들고, 국민으로 하여금 역사에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 내 도시 디자인의 대원칙이다. 중국 자금성을 보면서 ‘월대를 복원한다면 경복궁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역사성의 위용을 뽐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월대 복원에 동의했다. 당초 문화재청이 월대 복원을 제안했지만 서울시는 교통 문제 때문에 망설였다. 사실상 거절했던 셈인데 과감하게 수용한 것이다. 서울 시민에게 죄송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직선 차선을 곡선 차선으로 바꿨을 뿐 차선 수를 줄이지는 않았다.”

광화문 월대를 두고 “역사가 깊지 않은데 굳이 복원해야 했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종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부정적인 만큼 ‘이 시기에 지어진 시설물을 복원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인데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서울시청 앞 서울도서관은 일제가 만든 과거 시청 건물이라 허무는 것이 맞다. 왜 다른 잣대가 적용되는지 모르겠다. 역사를 보는 눈은 2개다. 있는 그대로 후손에게 전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돋보이게 할 필요도 있다. 월대가 만들어짐으로써 경복궁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를 스스로 축소하고 왜곡할 필요는 없다. 여러 관련 문헌 등에 따르면 조선 전기에도 월대와 유사한 시설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앞서 시행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역시 큰 관심을 받았다.

“취임 첫해인 2006년 광화문광장 조성 계획을 발표했고, 2009년 시민에게 개방했다. 당시 ‘한국의 샹젤리제’로 불리며 국내외적으로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훗날 ‘시민들이 쉴 공간이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고민이 깊어졌다. 이에 기존 광화문광장에 대한 시민과 관광객의 호응이 높았음에도 역사문화광장의 가치와 시민 휴식공간의 역할을 동시에 만족할 수 있도록 재구조화를 추진했다. 녹지 공간을 3.3배 늘리는 등 광화문광장의 휴식 기능을 강화했다. 아이들이 광화문광장에서 행복하게 뛰어놀 수 있도록 수경시설도 늘렸다. 광화문 월대까지 복원되면서 역사성까지 강화된 새로운 광화문광장이 탄생했다.”

한양도성 유네스코 등재 노력

서울 한양도성은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과거 서울시장이 사용하던 관사가 성곽 위에 있었고, 오 시장은 민선 4기 재임 시절 한양도성을 염두에 두고 공관 이전을 검토했다. 현재 해당 건물은 역대 한양도성을 알리는 안내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오 시장의 노력으로 2009년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한국위원회 학술대회에서 한양도성의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한양도성이 유네스코에 등재되면 서울은 전 세계 수도 중 유일하게 도성을 세계유산으로 보유한 도시가 된다.

오 시장 개인적으로도 아쉬움이 있을 법했다. 중간에 시정에서 물러나면서 한양도성의 세계유산 등재신청서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임기인 2016년 제출됐기 때문이다. 오 시장은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했는데 정작 그 결실은 전임 시장에게 돌아갔다. 심정이 어땠나”라는 기자의 물음에 “중요한 점은 현재 유네스코 잠정목록에 등재된 한양도성이 실제로 지정될 때까지 계속해서 노력하는 것이지, 누가 추진했고 누가 결실을 가져갔느냐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문화재 돋보이게 하는 방법 다양해”

지금도 문화재 복원과 관련해 정부와 협의를 지속하고 있나. 최근 정부가 ‘국가상징공간 프로젝트’를 발표했는데, 이 중 국가상징가로(광화문-숭례문-서울역-용산-한강) 조성사업 주체는 사실상 서울시 아닌가.

“국가상징가로 조성사업은 2010년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가 공동 추진한 ‘국가상징거리 조성 계획’에서 출발했다. 올해 9월 11일 정부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국가상징공간 조성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가운데 광화문-숭례문-서울역-용산-한강을 잇는 국가상징가로 사업을 서울시가 전액 시비로 추진한다. 이미 지난해 프랑스 파리 출장에서 국가상징가로 조성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국가상징가로가 조성되면 국가 정체성과 역사성은 물론, 서울의 미래 비전을 전 세계에 알리는 핵심 거점이 될 것이다.”

올해 초 ‘서울한옥 4.0 재창조’ 계획을 발표했다. 2008년에도 ‘한옥선언’을 했는데, 한옥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한옥이야말로 서울 고유의 역사성과 전통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은평한옥마을’이라는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서울에 한옥마을 10여 곳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전 사업과 비교해 개선된 측면도 있다. 이전에는 전통 양식에 따라 한옥을 짓다 보니 거주자가 생활하기에 불편한 측면이 있었다. 이번 서울한옥 4.0 재창조 선언을 통해 관련 가이드라인을 완화했다. 큰 틀에서 한옥 외관을 갖췄다면 생활 편의성을 높이는 식으로 지어졌더라도 한옥으로 간주하게 했다. 서울 곳곳에 크고 작은 한옥마을을 만들어 주거 역사성을 이어갈 계획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최근 문화재 주변 재정비 규정을 합리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변 지역 슬럼화도 큰 문제인데, 문화재청과 따로 협의하고 있나.

“5월 최응천 문화재청장과 만나 문화재 규제 완화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서울시 입장은 문화재에 대한 일방적 규제를 완화해 도시 슬럼화 발생을 막고, 도심 내 문화재 가치를 더욱 높여 시민들이 제대로 누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문화재청의 입장도 일견 이해가 된다. 문화재 주변부가 개발되면서 문화재가 왜소해 보일 수 있어 이를 우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재를 돋보이게 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앞서 말한 흥인지문, 창덕궁 사례만 보더라도 주변 환경이 쾌적하게 정비됐을 때 오히려 역사유적 가치가 높아진다. 미국 뉴욕 그랜드센트럴역이나 일본 도쿄역 근처 마천루 역시 유사한 사례다. 단순 보존을 넘어선, ‘역사 존중의 도시’를 조성하기 위해 문화재청과 협의를 이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