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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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러시아 ‘몽니’에 급등한 국제유가, 전망은?

고금리 맞물려 세계경제 불안정성 심화… 국내 물가 자극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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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3-10-0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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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유가가 한국 경제에 또 하나의 뇌관으로 부상했다.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7, 8월부터 대대적인 원유 감산에 나선 것이 직접적 원인이다. 고유가 현상은 미국 국채발(發)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과 맞물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제유가가 주요 산유국 감산에 따른 상승 요인과 세계경제 침체라는 하락 요인이 경합하는 가운데 한동안 배럴당 80~90달러 안팎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2019년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만났다.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2019년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만났다. [뉴시스]

    “2026년 국제유가 150달러 간다” 전망도

    올해 3분기 국제유가는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 가격은 2분기 배럴당 70달러(약 9만4460원)대였으나 9월 말 94달러(약 12만6870원)를 돌파했다(그래프1 참조). 한국이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 가격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와 뉴욕상업거래소에 상장된 서부텍사스유(WTI)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급등했다. 이에 따라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를 중심으로 국제유가가 향후 150달러(약 20만2450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왔다. 크리스티안 말렉 JP모건 애널리스트는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브렌트유가 내년 배럴당 90~110달러에 거래되고, 2025년에는 100~120달러, 2026년에 이르면 15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며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생산능력 충격으로 ‘슈퍼 사이클’에 진입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최근 주요 산유국이 생산량을 줄인 가운데 원유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탄소중립 기조에 따라 화석연료 생산업체의 투자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어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유가 급등은 산유국의 가격 방어와 정치적 ‘몽니’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점에서 당장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3월 미국과 유럽의 은행 파산 사태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 우려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이에 사우디와 러시아를 중심으로 원유 생산량 조절에 합의했고 4월 오펙(OPEC·석유수출국기구)과 오펙플러스는 대대적인 원유 감산 계획을 발표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원유 수요가 급락하자 주요 산유국은 생산량을 크게 줄였고 지난해 8월 예년 수준을 회복한 터였다. 그러나 유가가 계속 저조하자 다시금 감산에 나선 것이다. 10월 4일(현지 시간) 사우디와 러시아는 원유 감산 및 공급량 감축 조치를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침공 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 맞불을 놓으려는 러시아, 조 바이든 정부 출범 후 미국과 불화하는 사우디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린 ‘컬래버’이기도 하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각각 국내 경제 상황으로 원유 감산과 수출량 통제에 나설 수밖에 없다. 사우디의 경우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가 주도하는 ‘네옴시티’ 건설 등 대규모 인프라 구축 사업에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러시아는 원유 수출로 외자를 확보하는 한편, 자국 내 석유 수요를 충당해야 한다는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최근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대대적 공세에 맞서 일전일퇴를 거듭하고 있다. 대규모 기갑부대와 항공 전력을 운용하려면 막대한 연료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가을 추수에 필요한 농기계용 연료 수요, 동절기 난방유 수요까지 겹쳐 러시아의 내수 에너지 부족이 심각하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10월 들어 국제유가가 향후 약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미국 3대 은행인 씨티은행은 4분기 전망 보고서에서 “브렌트유 가격이 올해 4분기 평균 82달러, 내년에는 평균 74달러로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과 브라질, 캐나다, 가이아나 등의 원유 생산량이 늘어나리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국제유가는 당초 우려와 달리
    10월 초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한전채 발행으로 기업 자금조달 어려워질 수도”

    국제유가 추이에 대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고유가 상황은 슈퍼 사이클이라기보다 사우디, 러시아의 감산 조치와 관련성이 크다”면서 “JP모건 등 일각의 전망처럼 150달러까지 급등할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다만 성 교수는 “신재생에너지의 기술적 효율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후 관련 규제가 강화된 점도 에너지 가격을 높이고 있다”며 “산유국의 감산 조치와 별개로 국제사회의 저탄소 에너지 정책이 지속적으로 원유 가격 인상을 유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지낸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는 동절기가 다가오는 가운데 러시아와 사우디의 감산 조치가 금방 바뀌기는 어렵다”며 “내년 봄까지는 유가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유가에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당장 소비자가 체감하는 주유소 기름값 상승세가 심상찮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6월 L당 약 1580원이던 전국 주유소 보통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9월 약 1768원으로 올랐다(그래프2 참조). 같은 시기 경유 평균 판매가도 약 1394원에서 1666원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기름값은 장바구니 물가 전반을 자극했다. 통계청이 집계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2.99로 전년 대비 3.7% 올라 4월 이후 5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국제유가가 계속 급등할 경우 에너지 수입국인 한국으로서는 경제와 산업 전반에 심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에너지 가격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고금리 기조와 맞물려 국내 경제에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주헌 교수는 “원유 가격 급등이 한국전력공사(한전)의 적자 문제를 악화해 한국 경제 전반에 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가 급등은 원유 가격과 연동된 천연가스 가격도 덩달아 자극한다. 주요 발전 원료인 천연가스 가격마저 오르면 가계 경제는 물론, 한전의 적자 문제도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어지는 박 교수의 설명이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채권 발행한도에 거의 도달한 한전의 재정 문제가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한전법을 개정해 또다시 발행한도를 높여 당장 급한 불을 끄더라도, 한전이 대규모 회사채를 발행하면 국내 채권시장의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가뜩이나 미국이 다시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보이는데, 민간 기업은 회사채를 통한 자금조달이 더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한전의 심각한 적자라는 중간 고리만 없다면 최근 고유가 상황이 과거처럼 에너지나 산업 부문에 국한된 어려움 정도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고금리 추세가 맞물리면서 자칫 고유가가 경제 전반에 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4분기 주식투자는 쉬어라”

    흔히 정유업계는 고유가 수혜주로 꼽힌다. 다만 이 같은 공식에 착목한 투자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제유가라는 단일 변수만 믿고 투자하기에는 국내외 주식시장 전반이 침체 국면이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미국 국채금리마저 강세를 보이며 뉴욕 증시는 10월 4일 하락했고 같은 날 코스피는 2.4%, 코스닥은 4% 떨어졌다. 9월 들어 우상향 곡선을 그리던 국내 주요 정유업계 주가도 주식시장 전반의 침체 탓에 다시 하락했다. 고유가 테마주로 묶여 9월 들어 50% 가까이 급등한 한 중견 에너지기업 주가는 두 자릿수 하락세를 보였다.

    남석관 베스트인컴 대표는 “국내 정유업계 주가가 오르려면 중국 경제가 살아나는 등 석유제품 수요가 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면서 “국내 증시에서 고유가 현상과 맞물려 급등한 종목은 투기 세력이 들어온 결과로 보이며, 이를 증명하듯 최근 다시 주가가 빠졌다”고 분석했다. 남 대표는 “올해 4분기에는 주식투자를 쉬면서 현금을 확보해놓고, 다음 시장에서 오를 종목이 무엇인지 모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같은 고유가 상황에서는 수혜주로 불리는 부문에서도 뜬금없는 급등세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큰 세력이 매수해야 하는데, 그보다 좋은 섹터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투자할 것 같지 않다. 최근 중국 경기가 바닥을 통과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을 필두로 실물경제가 살아나면 고유가 국면 속 정유·석유화학 섹터에서 실적이 좋은 종목은 상승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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