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리단길과 조화를 이루며 호황 국면에 들어선 잠실·송파 상권. [뉴스1]
공실률과 임대가 변동률은 상권 흐름을 정확히 읽을 수 있는 2개 눈이다. 올해 1분기 서울 주요 대학가와 광역거점역세권 상권은 지난해 동기 대비 ‘활발국면’에 위치한 상권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그래프1 참조).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묶여 있던 대학생과 광역 통근 수요의 유입이 이들 상권에 활력소가 됐음을 알린다.
공실률이 감소하고 임대가가 증가하는 활발국면에 위치한 대학가 상권으로는 ‘성신여대’ ‘숙명여대’를 꼽을 수 있다, 숙명여대 상권은 지난해 동기 대비 공실률이 2.5%p나 감소하며 1분기 서울 전체 상권 평균 공실률(8.6%)의 절반 수준인 4.3% 공실률을 기록했다. 광역거점역세권은 수유역, 상봉역, 사당역 상권 공실률이 감소하고 임대가가 상승하며 활발국면에 위치했다. 사당역은 ‘방배재건축’, 수유역은 ‘창동역세권’과 ‘강북 모아타운개발’에 따른 배후 수요 확장 기대감이 상권지표에 반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중 방배재건축은 향후 개발 시 총 1만2000가구 배후 수요가 예상되는데, 현재 약 8000가구가 재건축의 8부 능선인 관리처분 단계를 밟고 있어 2025년쯤 사당역 상권의 확장을 기대케 한다. 수유역 상권은 지난해 대비 공실률이 크게 감소해 1분기 3.6% 공실률을 기록했다. 공실 감소의 1등 공신인 강북 모아타운개발은 강북구 번동 1~11구역이 모아타운 시범사업지로 선정돼 2261채가 들어설 예정이다. 모아주택은 소위 오세훈표 재개발로 불리며 ‘정비계획수립, 조합추진승인, 관리처분계획인가’ 생략으로 5년 사업 기간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번동 모아타운을 배후 수요로 둔 수유역 상권은 2030년쯤 수요 확장 호재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건대입구 공실률 급증
반면 서울 주요 대학가 상권 중 경희대와 건대입구 상권은 활황을 맞이한 대다수 대학가 상권과 달리 임대가가 상승하고 공실률이 증가하며 ‘둔화국면’에 진입했다. 경희대 상권은 인근 이문·휘경뉴타운 개발과 청량리 역세권 개발 압력이 임대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며 상권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경희대 상권은 먹거리 이외에 영화관, 대형 서점 등 ‘놀거리·즐길거리’가 빈약해 앞으로도 공실률이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건대입구 상권은 평소 4%대에 머물던 공실률이 올해 들어 7.8%까지 급증하며 부담스러운 임대가 인상에 따른 상권 악화가 예상된다. 건대입구 상권 수요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서울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 승하차 인원 추이를 살펴보면 5월 8만3000명을 기록해 코로나19 사태 직전 수준인 2019년 12월 10만 명의 80% 수준에 불과했다.둔화국면을 넘어 이미 불황국면에 빠진 대학가 상권도 있다. 한때 ‘샤로수길’로 인기를 끌었던 서울대입구역 상권이다. 다른 ‘◯◯◯길’처럼 샤로수길 역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낙후된 지역이 개발되면서 대형 시설이 들어서는 현상) 심화로 불황국면에 이르렀는데, 그 원인이 독특하다. 샤로수길 상권을 아파트 단지로 개발하겠다며 2018년 지역주택조합 ‘편백숲조합’이 설립됐고, 이로 인해 샤로수길 빌라 매매 가격이 2배 이상 급등하며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됐다. 마침 편백숲조합은 조합설립에 필요한 조합원을 다 모으지 못하고 소송전으로 치달으며 파국을 맞았고, 샤로수길은 지역주택조합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현재 불황국면에 이르렀다.
용산역 주변 매출 늘어나
서울 비(非)강남 주요 상권을 진단해보자. 가장 두드러지게 공실률 감소를 보인 곳은 이태원 상권이다(그래프2 참조). 이 지역 공실률은 지난해 동기 대비 9.8%p나 감소했다. 지난해 핼러윈데이를 앞두고 발생한 ‘10·29참사’ 이후 이태원 상권 회복세를 주도한 곳은 녹사평역 인근 ‘해방촌 상권’과 한강진역(한남동) 인근 ‘한남동 카페거리’ 상권이다. 두 지역의 서울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과 녹사평역의 승하차 인원은 코로나19 사태 직전 수준까지 회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데이터랩의 분석에 따르면 용산구 지역 맛집 톱10에 패션5, 고메이494, 쥬에 등 한남동 맛집들이 이름을 올린 반면, 이태원역 인근 상가는 순위에 들지 못해 핼러윈 상흔이 쉽게 치유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렸다.
용산역 상권과 잠실·송파 상권도 활발국면에 진입했다. 두 상권을 관통하는 성공 키워드는 바로 ‘대기업 배후 수요와 ◯리단길의 시너지 효과’다. 대통령실 이전 후 용산공원 개방, 용산정비창 개발 등 강력한 개발 드라이브를 등에 업은 용산역 상권은 아모레퍼시픽, LS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하이브엔터테인먼트 등 대기업들이 배후 수요로 자리 잡았으며, ‘용리단길’이라는 힙한 골목상권이 성장하고 있다. 2017년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용리단길의 월평균 전체 매출액은 2019년 100억 원에서 올해 1분기 181억 원으로 8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기간 주요 상권의 매출액 증가율(성수역 54%, 을지로 30%, 압구정 로데오 28%)을 능가하는 성장세다. 용산역 랜드마크인 ‘용산아이파크몰’ 역시 꾸준한 성장을 기록하며 1분기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27% 상승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 대비 57% 증가한 수준이다.
잠실·송파 상권은 쿠팡, 대한제당, 삼성SDS, 씨젠뿐 아니라 송파구청 같은 관공서 등 든든한 배후 수요가 있다. 무엇보다 송파 랜드마크인 롯데월드몰과 벚꽃시즌마다 매출이 폭발하는 길거리 상권인 송리단길이 조화를 이루며 호황을 이끌고 있다.
임대가는 하락 중이지만 공실률이 감소하는 ‘회복국면’에 위치한 상권은 ‘노량진 상권’이다. 노량진 상권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학령인구·공시생 감소라는 악재로 학원가, 고시원이 텅텅 비어 갔지만, 이는 오히려 노량진 상권에 ‘반전’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소수 대형 학원과 스타강사는 여전히 건재하기에 노량진 학원 상권은 기존 ‘양’에서 ‘질’로 전환을 꾀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시생이 사라진 자리에는 종로, 여의도, 마곡 등 업무지구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몰려들어 질적으로 향상된 레지던스가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향후 노량진 상권의 든든한 배후 수요로 자리 잡을 노량진뉴타운은 대부분 사업시행인가 이후 단계를 밟고 있어 수년 내 ‘디에이치’ ‘써밋’ ‘아크로’ 등 고급 브랜드 아파트들이 건설될 예정이다. 또한 지난해 6월 서울시는 ‘한강철교 남단 저이용부지 지구단위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노량진역 일대를 여의도와 용산을 연결하는 한강변 거점도시로 개발한다는 구상을 담고 있어 노량진은 서울에서 가장 극적인 상권 가치 향상이 기대되는 원픽 투자처가 될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둔화국면’에 위치한 상권을 살펴보자. 왕십리와 잠실새내역 상권은 공실이 증가하는 상황이다, 4개 호선이 지나는 쿼드러플 역세권인 왕십리 상권, 잠실종합운동장과 잠실 엘리트(엘스, 리센츠, 트리지움) 같은 든든한 배후 수요가 자리한 잠실새내역(옛 신천역) 상권이 둔화국면에 있다는 것은 의외다. 두 상권이 둔화국면에 들어선 주요인은 모두 ‘주변 상권의 강세’ 때문이다. 잠실새내역 상권은 인근 잠실·송파 상권으로 수요를 뺏기고 있다. 또한 강남으로는 코엑스 상권이 잠실새내역 상권을 위협하는 형국이다.
잠실새내역 상권 둔화국면
왕십리 상권 역시 남쪽으로 ‘마포·합정’ 수준의 강력한 상권인 성수동 상권이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초고층 마천루로 환골탈태 중인 청량리 상권이 자리하고 있다. 청량리역은 앞으로 왕십리보다 더 많은 7개 노선(현재 지하철 1호선, 경강선(KTX), 경의중앙선, 경춘선, 수인분당선에 향후 GTX–B, GTX-C 노선 추가)이 지나갈 예정으로, 이래저래 주변 상권의 강력한 개발 호재에 치일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앞서 살펴본 ‘건대입구 상권’ 역시 확장되는 성수동 상권의 수요 반경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한강 건너에 압구정·청담·강남역 상권이 위치해 향후 상권 회복이 요원한 상황이다.지금까지 서울 주요 상권의 흐름을 짚어봤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뜨는 상권의 조건은 ‘유효 수요를 오래 붙잡을 수 있는 문화 인프라’ ‘대기업과 대규모 주거타운의 든든한 배후 수요’ ‘기세를 떨치는 회오리 상권의 수요 반경에서 벗어난 안전 입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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