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미치광이 전략, 우크라이나戰 종전 위한 노림수?

핵 사용 위협 초강경 카드… “진짜 미치광이” “협상 기술” 분석 엇갈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2-10-0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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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경찰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동원령 반대 시위자를 연행하고 있다. [TASS]

    러시아 경찰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동원령 반대 시위자를 연행하고 있다. [TASS]

    ‘미치광이(Madman) 전략’은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전쟁을 끝내기 위해 구사했던 방책을 말한다. 닉슨 전 대통령은 전 세계 주둔 미군에 핵전쟁 경계령을 내린 다음 자신은 화가 나면 자제를 못 해 핵 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소문을 퍼뜨려 북베트남(월맹)을 배후 지원하던 소련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의도적으로 자신을 충동적이고 비이성적인 인물이자 작은 일에도 발끈해 언제든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미치광이로 포장한 것이다.

    실제로 닉슨 전 대통령은 1969년 10월부터 1973년 1월까지 전략핵 폭격기들을 소련 국경 부근까지 정기적으로 비행시킴으로써 소련을 위협했다. 결국 소련은 닉슨 전 대통령을 핵전쟁을 감행할 위험한 지도자로 인식하고 북베트남을 압박해 협상 테이블에 앉게 했다. 미국과 북베트남, 남베트남(월남)은 1973년 1월 27일 베트남에서 전쟁 종결과 평화 회복에 관한 ‘파리협정’에 서명했다.

    부분 동원령, 강제병합 우크라이나 지역 방어 목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닉슨 전 대통령을 벤치마킹해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9월 21일 대(對)국민 연설을 통해 부분 동원령을 발동하면서 핵 사용을 위협하는 등 초강경 카드를 꺼내 들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러시아의 주권, 영토적 통합성 보호를 위해 부분적 동원을 하자는 국방부와 총참모부의 제안을 지지한다”며 “대통령령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러시아 국방부는 소련 시절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동원령을 발동해 예비군 30만 명을 소집하기로 했다.

    푸틴 대통령이 동원령을 내린 것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지난 7개월간 러시아군 전력이 크게 약화했기 때문이다. 서방과 우크라이나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당시 군 투입 규모는 18만 명이었지만 현재는 전사·부상·탈영에 따른 병력 손실이 8만~9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러시아군은 최근 우크라이나군 공세에 밀려 북동부 하르키우주에서 퇴각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는 그동안 민간 용병기업인 와그너그룹을 투입하고 심지어 수감 중인 죄수를 병력으로 보충하는 등 총력을 기울였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동원령은 불리한 전황을 뒤집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예비군을 동원하지 않겠다”고 장담했지만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전에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이미 수차례 거짓말을 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의 동원령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과 남부 헤르손주, 자포리자주 등 4개 지역에서 9월 23부터 27일까지 실시한 러시아와의 합병에 대한 주민투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실상 강제로 실시된 합병 찬반 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이 나옴에 따라 이들 지역은 러시아 영토가 된다. 우크라이나 영토의 15%가 러시아로 넘어가는 셈인데, 러시아는 2014년에도 같은 방식으로 주민투표를 거쳐 크름반도(러시아명 크림반도)를 자국 영토로 병합한 바 있다. 러시아군은 예비군을 이들 4개 지역에 투입해 말 그대로 ‘영토 방어’ 임무를 수행하게 할 계획이다. 매슈 슈미트 미국 뉴헤이븐대 교수는 “푸틴 대통령이 군대 동원을 정당화하려고 주민투표를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다수 전문가 “푸틴은 미치광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월 21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부분 동원령 발동과 핵 사용 가능성을 밝히고 있다. [러시아 크렘링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월 21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부분 동원령 발동과 핵 사용 가능성을 밝히고 있다. [러시아 크렘링궁]

    더욱 주목되는 것은 푸틴 대통령이 “서방이 러시아를 파괴하고 핵무기를 사용할 계획을 하고 있다”면서 “러시아도 영토 보전을 위협받을 때 당연히 영토와 국민 보호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며, 이는 허풍이 아니다”라고 경고한 점이다. 푸틴 대통령은 그동안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2월 28일 푸틴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전략로켓군과 북해함대, 태평양함대 등에 전투 준비 태세를 내리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의 ‘입’으로 통하는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3월 22일 미국 CNN 방송과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어떤 조건에서 핵을 사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국가 존립에 위협이 있을 때”라면서 “푸틴 대통령은 전술핵 사용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페스코프 대변인이 언급한 것처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전술핵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전술핵은 소형 핵무기를 말하며, 폭발 위력은 보통 수십kt(킬로톤: 1kt은 TNT 1000t의 폭발력)에서 수백kt이다. 국지전 등에서 전술적 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야포와 단거리미사일에 장착하거나 전투기와 폭격기에 탑재하거나, 또는 사람이 메고 다니다 특정 지역에서 폭발시킬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의 핵 위협 의도는 미국 등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저지하고, 우크라이나 4개 지역을 자국 영토로 인정받으려는 속셈이라고 볼 수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들 4개 지역이 러시아에 편입되면 러시아의 완전한 보호를 받게 될 것”이라면서 “핵무기 사용 원칙은 러시아 영토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푸틴 대통령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러시아에 편입된 점령지를 포함해 러시아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 전략핵무기를 비롯한 모든 무기가 사용될 수 있다”고 한 술 더 뜨기도 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의 이런 주장은 푸틴 대통령이 2020년 6월 2일 서명한 ‘핵 억지력 분야 국가정책 원칙’이라는 이른바 ‘핵 독트린’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푸틴 대통령은 자칫하면 제3차 세계대전을 촉발할 수 있는 핵전쟁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을까. 서방 군사 전문가와 정보 분석가의 상당수는 푸틴 대통령을 핵전쟁을 벌일 수 있는 ‘미치광이’로 보고 있다. 커트 볼커 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주재 미국대사는 “푸틴은 모든 결정을 비이성적으로 할 만큼 미치광이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푸틴은 실제로 전술핵탄두를 사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울리히 쿤 독일 함부르크대 교수도 “전쟁이 러시아에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고 서방의 압박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푸틴이 핵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레고리 트레버턴 전 미국 국가정보위원회 위원장은 “푸틴은 워낙 은밀해 혼자 오판(誤判)하고 경솔한 짓을 할 수 있다”며 “푸틴은 러시아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더 타임스’는 “푸틴은 권력이 무소불위 수준으로 커지면서 성격이 왜곡되고 과대망상, 판단력 저하 등 오만증후군(Hubris syndrome)에 빠졌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제임스 클래퍼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푸틴이 미쳤다고 생각한다”고 밝혔고, 마이클 맥폴 전 주러시아 미국대사도 “푸틴을 30년 넘게 지켜봤는데, 요즘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방사능 피폭 대비 나선 유럽 국가들

    전술핵을 탑재할 수 있는 러시아군의 이스칸데르-M 미사일. [러시아 국방부]

    전술핵을 탑재할 수 있는 러시아군의 이스칸데르-M 미사일. [러시아 국방부]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은 러시아에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정책 고위 대표도 러시아의 핵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우려했다. 폴란드 등 일부 유럽 국가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국민에게 요오드 알약을 배포했다. 요오드는 방사능 피폭 전 미리 먹어두면 체내 방사능 축적을 줄여주는 효과를 가진 약품이다.

    러시아군은 푸틴 대통령이 명령할 경우 전술핵무기를 언제든 사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러시아군은 이미 2018년부터 재래식 탄두뿐 아니라, 전술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이스칸데르-M 지대지미사일을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50㎞ 떨어진 벨고로드 등에 배치해왔다. 러시아군은 또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을 미그(Mig)-31 전투기에서 발사할 수 있다. 전술핵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킨잘은 미국 미사일방어(MD)체제로는 요격이 불가능하다.

    반면 푸틴 대통령이 미치광이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치밀한 계산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서방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협상 전술’이라는 분석도 있다. 푸틴 대통령의 목표는 우크라이나 4개 지역을 자국 영토로 만들고 미국과 협상을 통해 종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의 연설비서관 출신인 아바스 갈리야모프 러시아 정치평론가는 “푸틴의 유일한 승리 전략은 ‘완전한 광인(狂人)’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서방 국가들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협상 테이블에 앉아 푸틴의 요구 몇 개만 들어주라’고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푸틴은 자살을 택할 정도로 미치지 않았다”며 “서방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신문의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처럼 단호함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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