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재임 시절 자위대를 사열하는 모습. [일본 총리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2006년 7월 출간한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美しい國へ)’에 나오는 대목이다. 아베는 이 책을 통해 개헌으로 제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라는 오욕의 과거사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서 경제대국에 걸맞은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베가 말하는 ‘아름다운 나라’는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서 정치·경제·외교·군사적으로 강대국인 나라를 의미한다. 아베는 이 책이 출간되고 두 달 후 집권 여당인 자유민주당(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데 이어 전후(戰後) 가장 젊은 총리(당시 52세)가 됐다. 하지만 취임 후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등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2007년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하면서 1년 만에 물러났다. 절치부심한 아베는 2012년 2차 집권에 성공한 뒤 7년 8개월간 재임하면서 개헌을 추진했지만 2020년 9월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이 악화해 사임했다.
외조부 유지 잇고자 개헌에 집착한 아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운데)가 7월 8일 가두 유세 도중 총을 맞고 사망했다. [뉴시스]
아베는 그동안 자신이 적극 주장해온 개헌을 추진하고자 7월 10일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승리할 수 있도록 전국을 돌며 유세를 지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군사력 팽창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등 현 세계정세를 감안할 때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베는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해 개헌을 발의할 수 있는 의석수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 모두에서 전체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개헌안이 발의되고 국민투표에서 과반이 찬성해야 개헌할 수 있다. 아베는 총리 퇴임 이후 지난해 11월 자민당에서 최대 파벌인 아베파 수장으로 선출되면서 취임 일성으로 개헌을 화두로 던졌다. 당시 아베는 “자민당 출범 이후 당의 목표인 개헌에 우리가 앞장서자”고 강조했다. 아베의 이런 강력한 의지에 따라 자민당은 이번 참의원 선거에 제시한 7대 공약에 개헌을 포함시켰다. 그 내용의 핵심은 ‘헌법 제9조에 자위대 명기’였다.
아베가 개헌에 집착해온 이유는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1896~1987) 전 총리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일본을 전후 체제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신념 때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차관과 상공장관을 지낸 기시 전 총리는 A급 전범으로 복역하다 불기소처분으로 석방됐다. 이후 그는 1955년 자민당 초대 간사장을 거쳐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총리를 역임하는 등 전후 일본 정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극우 정치인이었다. 일본의 침략 전쟁을 인정하지 않았던 기시 전 총리의 목표는 평화헌법 개정이었다. 기시 전 총리는 1956년 총선에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자민당은 당시 야당인 사회당의 약진으로 개헌 발의 정족수인 3분의 2 의석수를 확보하지 못해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 염원
SM-3 요격미사일을 발사하는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미국 해군]
일본 평화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 측 주도로 1946년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아베는 그동안 “평화헌법이 미국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이 지휘하는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강요로 만들어진 것이며, 당시 일본은 패전국이라는 약자 위치에 있어 어쩔 수 없이 수용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또 아베는 “평화헌법 때문에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없는 비정상 국가가 됐다”면서 “다른 국가들처럼 일본도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 지지 세력은 개헌 발의 정족수보다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 자민당과 연립여당인 공명당,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등 개헌 지지 4개 정당은 이번에 새로 뽑은 125석 중 93석을 얻었다. 이로써 개헌 지지 세력은 참의원 전체 248석 중 177석을 확보해 개헌 발의선(166석)을 훌쩍 넘었다. 중의원의 경우 이미 개헌 지지 세력이 개헌 발의 의석수를 확보한 상태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아베의 뜻을 이으라는 국민의 뜻을 새기겠다”면서 “개헌은 자민당의 오랜 과제이며 이번 선거의 대표 공약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는 “앞으로 개헌을 위한 정당 간 논의와 국민 설득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면서 “가능한 한 빨리 발의해 국민투표로 연결하겠다”고 밝혔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개헌 찬성파가 아베의 뜻을 받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개헌 분위기로 정국을 빠르게 이끌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자민당의 전통 우군인 공명당이 자위대를 군대로 규정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공명당은 “이미 자위대가 존재하는데 굳이 명기할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해왔다. 반면 자민당은 헌법 제9조를 그대로 유지하되, 자위대를 군대로 규정하는 헌법 제9조 3항을 신설하자는 입장이다. 제9조 1항에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2항은 ‘육해공군 및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시다 총리가 적극 추진하는 방위력 강화와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가 자칫하면 ‘위헌’이 될 수 있다.
적 기지 공격 능력, 바이든 지지 얻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오른쪽)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일본 총리실]
일본 국민은 과거와 달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군사력 확대 등에 위협을 느끼면서 개헌 반대보다 지지 쪽으로 기울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자민당이 2024년 개헌안 발의, 2025년 개헌 투표를 실시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제프리 호넝 선임연구원은 “현재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 일본이 아니고, 문민 통제가 확립된 민주주의 국가”라면서 “일본이 더 큰 안보상의 역할이나 임무를 맡는 것에 대해 어떠한 우려도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