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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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뮤지엄 기획전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제주에서 만나는 마이너리티 향한 따뜻한 시선… 7월 5일부터 1년간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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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2-07-14 14:4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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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서귀포시 포도뮤지엄에서 열리는 기획전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에 전시된 정연두의 작품 ‘사진 신부’. 작가는 사탕수수를 직접 경작하는 행위 등으로 20세기 초 하와이로 건너간 조선 여성의 삶과 관객을 연결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포도뮤지엄]

    제주 서귀포시 포도뮤지엄에서 열리는 기획전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에 전시된 정연두의 작품 ‘사진 신부’. 작가는 사탕수수를 직접 경작하는 행위 등으로 20세기 초 하와이로 건너간 조선 여성의 삶과 관객을 연결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포도뮤지엄]

    제주에서 기른 사탕수수를 사용해 100년 전 미국 하와이로 건너간 조선 여성의 고단한 삶을 재현한다. 낯익은 택배 종이상자에 필리핀 ‘노동력 수출’의 숱한 서사와 그림자를 담았다. 이처럼 다양한 표현 기법 및 소재로 디아스포라와 마이너리티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담은 예술작품들을 제주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제주 서귀포시 포도뮤지엄에서 7월 5일부터 1년간 열리는 기획전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얘기다.

    ‘세상에 대한 너른 시선’ 담은 전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전시 주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지리적·정서적 영토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함께 어우러져 사는 세상에 대한 너른 시선”이다. 포도뮤지엄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열린문화공간’이라는 모토와도 맞닿아 있다. 포도뮤지엄은 지난해 4월 SK㈜ 자회사 휘찬이 설립한 다목적 문화공간이다. 티앤씨재단이 기획한 개관 기념 전시 ‘너와 내가 만든 세상’은 인류사 곳곳에 드리운 편견과 혐오를 고발해 주목을 받았다. ‘세상에 대한 너른 시선’이라는 방향에 걸맞게 이번 전시에 참가한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도 깊고 넓다. 이배경, 리나 칼라트, 알프레도·이사벨 아퀼리잔, 강동주, 정연두, 요코 오노, 우고 론디노네 등 국내외 예술가들이 회화와 조각, 영상,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매체에 자신의 문제의식을 담았다.

    알프레도·이사벨 아퀼리잔은 택배 상자 140개로 만든 대형 설치 작품 ‘주소’를 통해 필리핀 이주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사진 제공 · 포도뮤지엄]

    알프레도·이사벨 아퀼리잔은 택배 상자 140개로 만든 대형 설치 작품 ‘주소’를 통해 필리핀 이주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사진 제공 · 포도뮤지엄]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디아스포라로 대변되는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다. 필리핀 출신 부부 작가인 알프레도·이사벨 아퀼리잔은 자녀들과 함께 제주를 찾아 대형 작품을 직접 설치했다. 이번에 전시된 ‘주소’는 가로세로 길이 50㎝의 정육면체 택배 상자 140개를 이용한 대형 설치 작품이다. 각 상자 안에는 필리핀 이주 노동자와 고국에 있는 가족이 주고받은 생활용품, 선물 등을 담아 이주민 공동체의 고단한 삶을 은유했다. 인도 출신 예술가 리나 칼라트의 ‘짜인 연대기’는 대형 세계 지도 위에 전깃줄로 이주 노동의 경로와 패턴을 표시했다. 함께 설치한 스피커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채록한 음성이 송출돼 지구적 규모의 이동을 절감케 한다.

    절제된 표현 기법으로 타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이끌어낸 작품들도 눈에 띈다. 요코 오노의 ‘채색의 바다(난민 보트)’는 백색 공간에 놓인 빈 보트를 통해 관람객에게 푸른 물감으로 써내려가는 희망의 메시지를 요청한 작품이다. 여기서 전시 공간은 모든 사람에게 열린 곳이자 이 세상 소수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남길 수 있는 공간이다. 설치미술가 이배경은 실험적 성격의 미디어 설치 작품 ‘머물 수 없는 공간’으로 백색 육면체가 일렁이는 인공 바다를 구현했다. 벽면에 조사되는 3D(3차원) 애니메이션을 통해 확산과 포용의 감각을 일깨우자는 취지의 작품이다.

    사탕수수·흙냄새로 ‘사진 신부’ 삶 재현

    강동주는 제주의 항구·포구 44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관찰한 땅의 모습을 먹지와 종이에 대칭적 이미지로 구현해 ‘땅을 딛고 바다를 지나’를 완성했다. [사진 제공 · 포도뮤지엄]

    강동주는 제주의 항구·포구 44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관찰한 땅의 모습을 먹지와 종이에 대칭적 이미지로 구현해 ‘땅을 딛고 바다를 지나’를 완성했다. [사진 제공 · 포도뮤지엄]

    미술관이 자리 잡은 제주의 공간적 맥락에 주목하고 영향을 받은 작품도 있다. 강동주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고자 제주에 머물면서 자연과의 이야기를 담은 신작을 창작했다. 그의 신작 ‘땅을 딛고 바다를 지나’는 작가가 제주의 항구·포구 44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관찰한 땅의 모습을 먹지와 종이에 대칭적 이미지로 구현한 것이다.



    한편 정연두는 신작 ‘사진 신부’에서 제주의 관람객과 20세기 초 하와이로 건너간 조선 여성의 삶을 연결했다. 사진 신부(寫眞 新婦)란 1910~1920년대 하와이를 비롯한 미주지역 한인 노동자와 사진 교환 형태로 중매해 결혼한 신부를 뜻한다. 그중 상당수는 하와이가 지상천국이라는 중매쟁이의 말이나 젊게 조작된 신랑 사진에 속아 결혼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 이들은 낯선 이국에서 사탕수수 경작 같은 거친 노동에 종사하면서도 미주 한인 독립운동에 기여하기도 했다. 정연두는 그들의 삶을 추적하고자 제주에서 사탕수수를 직접 키우고 사진 신부와 비슷한 또래인 제주지역 학생들과 워크숍을 진행해 영감을 얻었다. 전시 공간엔 포도뮤지엄과 향초 브랜드 ‘꽁티드툴레아’가 협업해 사진 신부들이 매일 맡았을 사탕수수와 흙냄새를 구현했다.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 ‘고독한 단어들’은 제각기 다른 포즈로 깊은 휴식에 빠진 듯한 광대 27명의 모습을 통해 관객에게 묘한 애잔함을 전달한다. [사진 제공 · 포도뮤지엄]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 ‘고독한 단어들’은 제각기 다른 포즈로 깊은 휴식에 빠진 듯한 광대 27명의 모습을 통해 관객에게 묘한 애잔함을 전달한다. [사진 제공 · 포도뮤지엄]

    전시의 대미는 2층에 마련된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이다. 론디노네는 스위스 출신이자 미국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현대미술가다. 그의 작품 ‘고독한 단어들’은 제각기 다른 포즈로 깊은 휴식에 빠진 듯한 광대 27명의 모습을 표현했다. 화려한 옷차림, 화장과 달리 어딘가 지쳐 보이는 모습이 묘한 애잔함을 선사한다. 디아스포라가 아니더라도 본질적으로 고독한 인간 내면이 전시 공간을 메우는 듯하다. 론디노네는 미술관 2층 창문을 이용한 ‘사랑이 우리를 만든다’, 옥상에 설치한 네온 조각 ‘롱 라스트 해피’ 등으로 포도뮤지엄을 찾은 관객들에게 독특한 체험을 선사한다.

    “다양한 정체성 공존하는 세상 고민하는 계기되길”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 사이사이에 포도뮤지엄 측이 직접 기획한 다섯편의 작품, 테마공간도 눈에 띈다.

    국내에 체류중인 30여명의 외국인들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비디오아트 ‘이동하는 사람들’은 인종과 국가라는 경계에 질문을 던지며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들이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미국-멕시코 620km 국경 일대에서는 해마다 오리 인형들이 발견된다고 한다. 목숨을 걸고 미국 밀입국을 시도하는 이들이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길위에 둔 이정표, 오리 인형을 모티브로 삼은 ‘아메리칸 드림’은 목숨이 절박한 상황에서도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다.

    포도뮤지엄은 지난해 개관전 '너와 내가 만든 세상' 에서도 테마공간을 운영했다. 전시에 풍부한 서사를 부여하고 현대미술을 보다 쉽고 친근하게 이해하게 해준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번 전시에서도 테마공간은 관객들로 하여금 전시 전체의 주제와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다.

    포도뮤지엄의 특색으로 자리잡은 이 테마공간은 김희영 총괄디렉터가 직접 기획했다. 김 총괄디렉터는 "포도뮤지엄은 미술을 통한 인식개선과 변화 등에 관심이 많다"면서 "디아스포라 전시 주제와 관련해 관객들에게 더욱 명료하고 선명한 메시지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전달하고자 테마공간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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