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드림캐쳐가 두 번째 정규앨범 ‘Apocalypse: Save us’를 발표했다.[사진 제공 · 드림캐쳐컴퍼니]
전투적 질감으로 꿈틀대는 기타와 주고받으며 선언적인 느낌을 주는 후렴은 단호하면서도 위엄 넘친다. 2절을 통째로 할애한 음울하면서도 날카로운 랩, 곧바로 드라마틱하게 날아오르는 멜로디도,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웅장하게 쌓아올리는 편곡도 듣는 이를 격하게 뒤흔들며 고양시킨다. 육중함과 날카로움이라는 양면을 함께 극대화하는 메탈의 미학과 케이팝 퍼포먼스의 드라마틱한 양식미 모두에 충실한 수작이다.
환경 문제 고민하는 독보적 걸그룹
앨범에서 직접적으로 환경 이슈를 언급하는 것은 타이틀곡 ‘MAISON’뿐이다. 다만 여러 수록곡은 ‘MAISON’에 묘사된 파국, 즉 ‘세계관’을 배경으로 인물들이 느끼는 절망과 꿈, 비애 섞인 추억 등 다양한 감정의 스냅숏들처럼 들린다. 직접적 메시지를 단발성으로 내놓기보다 더 넓은 서사를 구축하고 그 안에 메시지를 녹여내 전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그런데 ‘MAISON’의 가사 상당 부분은 환경의 비극성을 일인칭으로 강조한다. 이인칭에게 비판과 경고를 보내고 “누군가 우리를 위해 싸워다오”라고 주문한다. ‘적’을 설정하고 일종의 가해-피해 관계로 이야기를 풀고 있다. 메시지가 명확해지고, 공감하는 이들에게 더 큰 연대감과 쾌감을 줄 수는 있겠다. 그러나 환경 같은 이슈에서는 자칫 자성 없는 ‘유체이탈 화법’으로 여겨질 소지도 있다. 최근 케이팝은 사회적 이슈 발화 방식도 꾸준히 개량해왔고, 이 앨범의 구조 또한 그 결실임을 생각한다면 이 같은 단순함은 다소 아쉽다.
몇 가지 행보는 더욱 아쉬움을 자아낸다. 드림캐쳐는 탄소 배출량을 늘린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 발행을 계획하고, 이번 앨범 패키지도 다양한 특전 및 182쪽 부클릿과 함께 세 가지 버전으로 출시했다. 실물 음반은 세계 팝시장에서도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기 시작했고, 케이팝 앨범의 환경 문제도 거론되는 시점이다. 케이팝 산업에서 누구나 하는 것들이기는 하지만 “다른 방법은 정말 없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환경을 주제로 한 앨범과 이에 들어간 정성에 비춰볼 때 말이다.
물론 모든 것이 ‘콘셉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즐기고 넘어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절실하거나 아름다운 사랑 노래가 모두 현실 그대로라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다. 케이팝에서는 많은 메시지가 일종의 ‘픽션’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사회적 메시지를 표면으로만 즐기기를 요구하기에는 이미 케이팝이 너무 먼 길을 걸어왔다. 특히 현 시점에 첨예한 환경 이슈 같은 것을 단순 장식으로만 차용한다면 윤리적 질문마저 결부될 수밖에 없다.
2017년부터 드림캐쳐는 음악과 안무, 서사 등 모든 면에서 개량과 발전을 거듭해왔다. 케이팝에서야 비로소 가능하고, 동시에 케이팝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드림캐쳐이기에 가능한, 그런 독보적 영역을 만들어냈다. 삼부작으로 예고된 ‘Apocalypse’ 시리즈 후편에서는 이들의 영민한 줄타기를 전폭적 지지로 응원할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