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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폭락에 가까운 상황 때문인지, 금융투자 관련 드라마에 몇 차례 자문을 한 인연으로 알게 된 드라마 작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전화기 너머 조금은 상기된 목소리로 질문해온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요즘 주식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런 분위기는 처음 경험해본다. 대공황이 다시 올 것도 같은데 어떻게 보느냐. 이런 경우 투자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런 궁금증을 가진 이가 비단 그 작가만은 아닐 테다. 그것과 비슷한 내용의 질문을 받으면 필자는 바로 다음의 질문을 던진다. “투자를 경험하거나 공부한 지 얼마나 됐나요.” 많은 이가 어떤 상황에 대해 판단해야 할 때 가지는 첫 번째 기준은 경험과 지식이다. 특히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가장 우선시한다.
대폭락과 회복 반복해온 증시
자본시장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는 2020년 3월부터 2021년 2월까지 1년간 87조 원을 순매수했고, 같은 기간 주식시장 활동계좌수는 2991만 개에서 3834만 개로 843만 개 증가했다.1년 남짓한 기간에 이 정도 규모의 신규 투자자금과 신규 투자자가 유입된 것은 한국 주식시장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즈음 주식 계좌를 처음 개설하고 투자를 시작한 이들의 투자 경험은 이제 겨우 2년 남짓 됐다. 일부 사람은 투자 역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 시장의 모습은 매번 낯설고, 변덕스러운 움직임은 공포스럽다.
필자에게도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은 없다. 다만 과거 사건과 데이터들을 되짚어볼 뿐이다. 앞에서 1월 한 달간 코스피가 11% 하락했다고 말했다. 이런 일은 과거에 몇 번이나 있었을까. 2000년 1월 3일부터 2022년 1월 31일까지 코스피 1개월(20영업일) 수익률이 -11%보다 나쁜 경우는 전체의 3.6%이다. 5723일 중 어떤 날 투자를 시작해도 206번은 1개월 수익률이 -11%보다 낮았다는 뜻이다. 1980년 2월부터 42년간을 분석해도 -11% 이상 하락한 경우가 2.9%(346회)에 이른다. 코스닥 지수가 한 달간 -18% 하락한 경우는 2000년 1월 이후 193회(3.4%)나 된다.
선진국인 미국은 다를까. 미국 대형주 지수인 S&P500의 1월 낙폭은 -8%였다. 2000년 1월 이후 8% 이상 하락한 경우는 222번이었다. 전체의 3.9%에 해당한다. 나스닥 지수가 12% 이상 하락한 경우도 226회나 있었다. 짧게 결론지으면 이 정도 증시 하락이 평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역사적으로 아주 특이한 사건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1980년 이후 코스피 1개월 수익률이 -11%보다 낮은 경우는 200번이 넘는다. 그중 -20% 이상 하락한 경우를 보면 1997년 외환위기, 2000년 IT(정보기술) 버블 붕괴, 2004년 카드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주가 하락 정도다. 모두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굵직한 사건들이다. 우리 증시는 이런 일들을 다양하게 겪어왔지만 다시 회복했다.
만약 이번 하락이 대공황과 같은 수준이라고 가정해보면 어떨까. 대공황(Great Depression)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길고 혹독했던 경제위기로 1929년부터 1939년까지 지속됐다. ‘검은 화요일’로 알려진 1929년 월스트리트 대폭락(1929년 10월 말)으로 시작된 주가 하락과 경기 악화는 사실상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경제적 재난이었다.
美 대공황기 폭락 주가지수 3년 만에 반등
미국 물가지수는 1929년 이후 큰 폭으로 급강하해 3년 만에 25% 이상 떨어졌고, 1943년에야 회복됐다. 말 그대로 경제 침체 시기가 10년 이상 지속된 것이다. 같은 기간 미국 주가는 훨씬 큰 폭으로 하락했다. S&P500 지수는 3년간 84% 이상 떨어졌다(그래프 참조). 진정한 역대급 폭락이라고 할 수 있다. 10년 넘게 이어진 경기침체와 달리 주가는 1932년 6월 저점을 찍고 반등한다.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며 전고점을 회복해나간다. 1937년 3월에는 5년 전 저점 대비 5배나 상승한다. 하지만 1929년 고점 이후 90% 가까이 빠지는 주식을 계속 들고 있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1932년 저점을 확인하고 투자를 시작한다는 것 역시 불가능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필자는 “대공황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고 했을 때 투자 대안이 무엇이냐”고 묻는 작가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내 대답은 기존과 동일하다. ‘자산배분’과 ‘장기투자’를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다.” 자산배분은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꾸리는 것’을 말한다. 장기투자란 ‘자신의 투자 철학에 맞는 투자전략을 오랜 기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다. 대공황기에는 지금처럼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없었다. 지금은 개인도 상장지수펀드(ETF)를 이용해 국채나 해외주식, 원자재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가능하다. 필자가 추천하는 다양한 투자전략 가운데 하나는 ‘영구 포트폴리오(permanent portfolio)’다. 주식, 국채, 금, 현금에 각각 4분의 1씩 투자하는 방식이다.
대공황기에 이런 자산배분 전략으로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미국주식, 미국국채, 금, 현금성 자산에 각각 25%씩 나눠 투자했다고 가정하면 ‘표’와 같은 성과가 나온다.
20년간 영구 포트폴리오는 연 4.5% 수익률이 발생했다. 이는 주식 수익률 6.5%보다 낮지만 당시 예금 금리(현금성 자산) 1.2%보다 3배 이상 높다. 위험 지표를 살펴보면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은 8%로 주식 변동성(29%)의 3분의 1 이하인 매우 양호한 모습을 보인다. 최대 낙폭의 경우 미국주식은 84% 하락했으나 포트폴리오는 32%로, 낙폭 역시 절반 이하로 개선됐다. 위험 대비 수익 지표인 샤프비율 역시 포트폴리오(0.42)가 주식(0.18)보다 2배 이상 우수하게 나온다. 영구 포트폴리오의 경우 주식에만 투자했을 때보다 위험을 대폭 낮출 수 있었다. 이렇게 위험을 낮추고 수익을 챙길 수 있는 이유는 자산의 상관관계가 낮기 때문이다. 영구 포트폴리오에 편입되는 주식과 국채, 금, 현금은 낮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대표적인 자산이다. 물론 요즘에는 더욱 다양한 자산 거래가 가능해 영구 포트폴리오보다 위험은 낮추고 수익은 높이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다.
대공황기보다 다양하게 투자 가능한 현대
대공황이 발생한 1920년대 금융 데이터는 구하기도 어렵지만 다양하지도 않다. 당시에는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 주식시장 자체가 없었다. 또한 일반인이 미국국채에 투자하기도 어려웠다. 특히 대공황이 발생한 후 미국 정부가 금을 상납하게 하고 금 소유를 금지했기 때문에 실제로 미국에서는 금 매매가 불가능했다. 따라서 앞서 얘기한 자산배분 투자를 실제로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100년이나 지난 지금은 개인이 직접 ETF를 이용해 다양한 자산에 분산투자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과거보다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이야기를 마무리하자면 1929년 대공황이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경제위기가 올 가능성은 있다. 누구도 온다, 안 온다라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으며 언제 올지 알 수도 없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로든 올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투자에 나서야 한다. 2년 전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증시와 경기가 주저앉았던 것처럼 말이다. 시장의 상승과 하락 시점은 맞히기 어려운 만큼 필자는 자산배분 투자를 선호한다. 상승의 달콤함보다 하락의 쓰디씀이 2배 넘는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자산배분 투자 역시 늘 오르는 것이 아니므로 단기 하락을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장기투자가 동반돼야 한다. 미래를 막연히 불안해할 것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가능성 높은 방법을 찾아서 가져간다면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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