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도쿄올림픽은 7월 23일 도쿄도(都)에 4번째 긴급조치가 내려진 가운데 개막했다. 대회 도중 코로나19 하루 확진자가 일본 전역 1만 명 이상, 도쿄도 3000명 이상으로 급증하면서 한때 위기를 맞았으나, 올림픽을 중단 없이 끝내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일본의 속내가 맞아떨어져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동안 올림픽은 끝없이 도전을 받아왔다. 1972 뮌헨올림픽 때는 ‘검은 9월단 사건’으로 이스라엘 선수와 임원 11명, 아랍 게릴라 5명, 서독 경찰관 1명 등 17명이 사망해 24시간 동안 올림픽이 중단되는 일이 있었다. IOC는 대회 중단을 두고 고심했지만 결국 에이버리 브런디지 당시 IOC 위원장은 대회 강행을 결정했다.
2020 도쿄올림픽은 코로나19 사태로 1년간 연기돼 사상 초유의 무(無)관중, 무(無)해외관광객 속에서 열렸다. 관중이 없어서였는지 이변이 많이 일어났고, 예기치 않은 사건·사고도 적잖았다. 그렇다면 이번 도쿄올림픽을 대표하는 결정적 장면에는 어떤 게 있었을까.
1 한국 양궁 여자단체전 올림픽 9연패 달성
한국 양궁 여자단체전 9번째 금메달 주인공인 안산, 장민희, 강채영 선수(왼쪽부터). [뉴시스]
양궁 여자단체전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시작됐는데 김수녕, 왕희경, 윤영숙 선수가 금메달을 딴 이후 다른 나라에 한 번도 금메달을 내주지 않았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는 기보배, 장혜진, 최미선 3명의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이 여자 양궁을 30년 넘게 석권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종목에서 무적을 자랑하는 국가도 있다. 탁구 여자개인전 우승자는 첸 멍으로, 중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9개 대회 연속 금메달을 독식하고 있다.
2 사상 초유 3無 올림픽
7월 23일 도쿄올림픽 개막식도 관계자들만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뉴시스]
3 ‘빈익빈 부익부’ 올림픽 속 빛난 필리핀 금메달
필리핀에 첫 금메달을 선사한 여자 역도 55kg급 우승자 하이달린 디아스. [뉴시스]
필리핀은 이번 대회에서 노 금메달 국가 신세를 벗어났다. 하이달린 디아스(30)가 7월 26일 도쿄국제포럼에서 열린 여자 역도 55㎏급 경기에서 합계 224㎏을 들어 올려 감격스러운 금메달을 땄다. 디아스는 집 마당에서 물동이 역기를 들며 올림픽 금메달 꿈을 키웠다. 필리핀 정부와 일부 기업은 올림픽이 끝난 후 디아스에게 3300만 페소(약 7억6000만 원)의 포상금과 집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4 무더위에 기절한 선수도 나와
체감 온도가 40도에 육박한 가운데 치러진 도쿄올림픽.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 노바크 조코비치도 무더위로 인한 경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뉴시스]
도쿄올림픽은 베이징 대회보다 빠른 7월 23일 시작됐다. 10억 달러(약 1조1400억 원)를 내고 중계권을 산 미국 NBC 유니버설의 입김 때문이다. 올림픽이 9월이나 10월에 열리면 미국은 미식축구(9월 초 개막)가 시작되고, 메이저리그도 포스트시즌에 접어들어 올림픽 시청률을 올리기 어렵다.
올림픽 기간 내내 도쿄는 연일 30도 넘는 기온에 섬나라 특유의 높은 습도까지 더해지면서 체감 온도가 40도에 육박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다 보니, 야외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은 상대 팀이나 선수와 싸우기에 앞서 더위에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지곤 했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물에 적신 타월과 얼음주머니 등을 나눠줬지만 더위를 물리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인 세르비아의 노바크 조코비치(34)는 “경기 시간을 왜 기온이 떨어지는 야간으로 조정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7월 23일 개막일에는 러시아 양궁선수 스베틀라나 곰보에바가 도쿄 유메노시마공원에서 개인종합 예선 경기 도중 잠시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도 했다.
5 올림픽 첫 출전, ‘갓기’들의 반란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한국 신기록, 아시아 신기록 등을 세우며 감동을 준 수영 황선우 선수. [뉴시스]
수영 황선우(18) 선수는 남자 수영 자유형 200m 7위, 100m 5위로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연일 한국 신기록, 아시아 신기록, 세계주니어 신기록을 세우며 투혼을 발휘해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는 “첫 올림픽 출전이라 부담이 됐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담담히 말했다. 눈물도 없었고, 메달을 따지 못한 데 대한 서운함도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29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도쿄올림픽 수영 남자 자유형에 출전한 황선우 선수가 연일 국민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열여덟 나이로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 자유형 100m 결승에 올라 역동적으로 물살을 갈랐습니다”라고 적었다. 대통령이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를 격려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축구 이강인, 탁구 신유빈, 양궁 김제덕, 체조 여서정(왼쪽부터) 선수도 ‘갓기’라는 찬사를 받았다. [뉴시스]
양궁 김제덕(17) 선수도 화제였다. 첫 올림픽 출전이면서도 “필승 코리아!” “파이팅! 오진혁!”을 외치며 처음 도입된 혼성단체전과 남자단체전 2관왕을 차지했다. 김제덕의 파이팅 소리는 무관중이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여자 체조 여서정(19) 선수 역시 아버지(여홍철)의 대를 이어 도마에서 동메달을 획득, 사상 처음으로 ‘부녀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한국 체조가 여자 체조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것은 여서정 선수가 처음이다.
6 여자선수 출전 기회 대폭 확대, 성평등 올림픽
‘성평등 올림픽’을 내건 도쿄올림픽에서 한국도 양궁 혼성단체전 금메달을 따며 혜택을 봤다. [뉴시스]
IOC는 이번 도쿄올림픽에 18개 종목을 새로 추가했는데, 거의 모두가 여성 비율을 높인 것이다. 남자 카약 1, 2인승 200m 대신 여자 카누 종목을 넣었고 남자 사격 소총과 자유권총, 더블트랩 대신 혼성공기소총, 혼성공기권총, 혼성트랩 종목을 신설했다.
수영은 여자 자유형 1500m가 처음 정식 종목이 됐고, 남녀 2명씩 경기를 치르는 혼성혼계영 400m가 새로 생겼으며, 육상 1600m 혼성릴레이도 추가됐다. 또한 유도, 탁구, 양궁에도 혼성 종목이 새로 추가됐다.
한국은 양궁 혼성단체전 금메달로 혜택을 봤고, 영국이 혼성혼계영 400m, 폴란드가 육상 1600m 혼성릴레이, 프랑스가 혼성유도, 스페인이 사격 혼성트랩 금메달을 가져갔다. 탁구 강국 중국은 탁구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을 노렸지만 일본 미즈타니 준과 이토 미마 조에게 금메달을 내주고 말았다.
7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의 이중성
1박에 2600만 원 넘는 호텔 스위트룸에 머문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왼쪽). 골판지 침대에서 자야 했던 선수들과 엄청난 대조를 이뤘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