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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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이후 차기 여야 대권 주자들의 진로

  • 이종훈 시사평론가

    입력2020-10-04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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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권에도 야권에도 ‘이재명 킬러’가 없어

    • 친문계 이재명 대항마로 김경수 투입 준비

    • 원희룡, 토끼를 쫓는 거북이 신세

    • 안철수, 마라톤 워밍업 단계 극복할지가 변수

    이재명 경기지사. [뉴스1]

    이재명 경기지사. [뉴스1]

    이재명 경기지사가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기본소득’으로부터 시작해 ‘기본주택’을 거쳐 ‘기본대출’까지 이슈몰이가 매섭고 거침없다. 앞으로도 2개 더, 모두 5개로 ‘기본 5종 세트’를 완성한다는 계획도 전해진다. 이 정도 이슈라면, 민주당 대선 경선을 치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차기 대선 본선에서 선보이려 하는 ‘경제민주화-최종판’에도 필적할 만하다.

    이 지사의 맹활약에 자극받아 함께 뛰기 시작한 자가 바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지난 4월 총선 뒤, 180석 발언 논란의 책임을 지고 그만둔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를 재개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정치비평이 아니라 도서비평을 하겠다고 한다. 왜 도서비평일까? 국정에 관한 해박함을 알리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경제, 외교, 복지 등 국정 전 분야에 걸친 도서를 비평하는 방식으로 준비된 대선후보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뛰는 자와 걷는 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뉴스1]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뉴스1]

    이재명 지사와 유시민 이사장의 결정적 차이는 행정경험이다. 유 이사장도 복지부 장관을 거치긴 했다. 하지만 이 지사만큼 실전을 치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지사의 ‘기본 시리즈’는 나름 현장검증을 거친 이슈다. 특히 ‘기본소득’은 이제 전 국민이 인지할 정도이고, 사회적 공감대도 많이 형성된 상황이다. 유시민 이사장에게는 아직 이런 ‘똘똘한 이슈’가 없다. 

    그래서 도서비평을 통한 이슈몰이를 시도하려는 것이지만, 성공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도이전’ 이슈도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 이슈도 10년 이상의 숙성기간을 거쳐 나온 고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똘똘한 이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설령 급조해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실전배치를 해본 적이 없어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실전경험으로 치자면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적어도 경력 면에서는 그렇다. 전남지사 찍고 국무총리까지 거쳤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재명 지사를 능가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대표 이슈가 없다. 두루 잘 알고 잘 살피지만, 특별히 잘 하는 것도 특별히 애착을 보이는 것도 없다. 그런 무난함이 편안함으로 다가오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잘 보이는 않는다. 대통령이라면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것도 희미하기만 하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지사가 더 신경 쓰일 것이다. 그래서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 바로 2차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이다. 이 지사는 ‘보편’ 지급을 요구했지만, 당‧정‧청은 결국 ‘선별’ 지급으로 결정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이 지사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그런데 돌발악재가 터졌다. ‘통신비 2만원’ 지원이다. ‘선별’ 지급으로 가기로 했으면 흔들림 없이 가야 했다. 하지만 당내 일각에서 통신비만 ‘보편’ 지급을 하자는 주장이 나왔고, 이 대표는 이것을 수용한 것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먼저 제안까지 하고 말았다. 이낙연 표 ‘통신비 2만원’이 탄생한 순간이다. 이것이 여론의 몰매를 맞으면서 결국 4차 추경안 여야 협상의 제물이 되었고, 최종적으로 ‘선별’ 지급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 지사는 2차 재난지원금이 ‘선별’ 지급으로 결정되었을 당시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이렇게 날선 비판까지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나아가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가는 것이 제 눈에 뚜렷이 보인다.” 이낙연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내놓은 것이다. 통신비 논란으로 문재인 대통령도 결과적으로 손해를 본 셈이니 이 지사의 입바른 예언을 비난만 하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이 지사가 1승을 챙긴 것이다. 뛰기 시작한 자와 여전히 걷고 있는 자의 차이란 생각이다.

    대선주자 교체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스1]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스1]

    이재명 지사의 약진을 바라보는 친문계의 심정은 어떨까? 이슈를 보면 지지를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가능한 빨리 친문계 대선주자를 내세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친문계 좌장인 이해찬 전 대표가 연일 대선주자 교체론을 주장하는 이유다. 이 전 대표는 8월 28일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 같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그렇다. 상황에 따라 새로운 변수가 생긴다... 언제든지 후보가 새로 나오기도 하고 지금 잘 나가는 분이 어려움을 겪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9월 16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는 김경수 경남지사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일단 재판 결과를 봐야겠죠. 만약 살아 돌아온다면, 지켜봐야 할 주자는 맞습니다. 동안이라 그렇지 대선 때 55세면 어리지도 않습니다. 이재명 지사하고 별 차이도 안 나요.” 이 전 대표는 같은 인터뷰에서 유시민 이사장에 관해서는 이렇게 언급했다. “본인이 안 하겠다는 거 아녜요? 받아들여야지. 책 쓰고 이런 쪽을 원래 더 좋아하는 사람이죠.” 관심법으로 이 전 대표 발언의 행간을 읽어본다면, 이렇다. 유 이사장은 본인이 나설 때까지 더 두고 보기로 하고, 김 지사가 무죄 판결을 받으면 먼저 이재명과 맞대결에 투입하겠다.

    이 지사가 뛰기 시작하면서 대선시계가 갑자기 빨라졌다. 하지만 범야권의 대선주자들은 관전평을 내놓기에 급급할 뿐이다. 누구도 이 지사처럼 이슈몰이를 하는 선수가 없다. 범야권 내에서 이슈몰이는 이제 김종인 국민의힘 배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의 전매특허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최근에도 김 위원장은 민주당이 추진 중인 ‘공정경제 3법’에 찬성의견을 밝히며 ‘탈(脫)재벌’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9월 21일에는 이런 말까지 남겼다. “우리가 너무 재벌 입장을 대변할 필요는 없다. 부자·재벌만 옹호하는 당으로 비치면 안 된다.” 이러다 정말 김 위원장이 대선에 직접 뛰어드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비록 관전평이나마 가장 열심히 내고 있는 대표적 선수는 원희룡 제주지사다. 원 지사는 이 지사와 이슈를 중심으로 직접 맞붙기도 했다. 지난 9월 11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이 지사와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방향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원 지사는 ‘선별’ 지급 옹호론을 펼쳤다. 그나마 현재까지 이 지사와 이슈를 놓고 맞장토론을 벌인 이는 원 지사가 유일하다. 그것도 남의 이슈로 벌인 원정경기였다.

    토끼를 쫓는 거북이 신세

    김경수 경남지사. [뉴시스]

    김경수 경남지사. [뉴시스]

    하지만 이조차 관전평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선별’ 지급 주장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원희룡 지사가 자기만의 이슈를 내걸고, 그것이 찬반 논란을 유발하고, 이 이슈로 이재명 지사와 맞장토론을 벌일 정도가 되어야 대등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지사와 비교할 때, 원 지사는 아직 앞서가는 토끼를 쫓는 거북이 신세에 지나지 않는다. 

    이 지사가 먼저 공개토론을 제안한 대상도 있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다. 최근 이 지사의 공격대상이 된 것이 바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다. 지역화폐의 단점을 지적했다가 이 지사로부터 ‘근거 없이 정부정책 때리는 얼빠진 국책연구기관’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여당 내에서조차 너무 나갔다는 비판이 나오는 속에, 윤 의원이 조목조목 비판하며 이 지사에 대해 “식견의 얕음을 내보이는 일‘이라고 비판하자 이 지사가 공개토론을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두 사람 간에 토론이 성사된다면, 진검 승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윤 의원이 앞선다. 현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이 지사가 앞선다. 그런 점에서 행태가 아니라 내용을 가지고 벌이는 알맹이 있는 토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사 주장의 배경이 취약하다면 당연히 밑천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토론이기도 하다.

    ‘이재명 대 윤희숙’ 맞짱토론이 ‘이재명 대 원희룡’ 맞장토론보다 세간의 관심을 더 끈다면 그리고 그 토론에서 윤 의원이 이 지사에게 유효타를 먹이는데 성공한다면, 윤 의원은 곧바로 대선주자 급으로 등극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범야권에 마땅한 ‘이재명 킬러’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 그러할 것으로 봐야한다.

    마라톤 워밍업 단계

    원희룡 제주지사(왼쪽).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뉴스1, 뉴시스]

    원희룡 제주지사(왼쪽).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뉴스1, 뉴시스]

    이재명 때리기와 문재인 때리기를 나름 열심히 하는 두 사람도 그냥 넘어갈 순 없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무소속 홍준표 의원이다. 모두 대선출마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뛰는 것 같긴 한데 여전히 마라톤 워밍업 단계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정치적 공백기를 고려하면, 또 행정경험 부족을 생각하면 안 대표는 이 지사보다 먼저 뛰기 시작했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뒤처져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이슈를 아직도 못 찾은 듯하다. 당연히 이슈몰이는 기대난망이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서울시장을 거쳐 가려는 움직임마저 보인다. 행정경험을 쌓아서 단점을 보완하겠다는 의미다. 이처럼 생각이 많아서인지 관전평조차 아프지 않아 보인다.

    홍준표 의원은 간헐적으로 뛰는 수준이다. 전 방위로 관전평을 내놓고 있어 범야권의 유시민 같은 이미지조차 준다. 그런데 진중권 전 교수가 이 역할을 상당부분 대체하면서 그의 관전평도 빛을 많이 잃은 것으로 보인다. 홍 의원도 문제는 자기 이슈가 없다는 점이다. 대선 본선까지 출전한 나름 프로 선수인데, 프로페셔널다운 장기가 없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이재명 지사가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 정도다. 

    홍 의원이 최근 4차 추경안에 대해 “퍼주지 못해 환장한 정부 같다”라고 비판하자 이 지사는 “이해부족 또는 정부 발목잡기”라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홍 의원은 다시 “국회의원, 당대표, 경남지사 등 국정경험이 25년이나 된 저를 보고 기본적 이해부족이라는 비판은 비판을 넘어 모욕에 가깝다”고 반박했다. 그래서 홍 의원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홍준표의 5종 세트는 무엇인가? 국정경험 25년에 똘똘한 자기 이슈 하나 없는 게 말이 되는가?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 초입에 들어섰다. 다시 한 번 환골탈퇴를 해야 할 시점이다. 국가 비전도 당연히 재정립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차기 대통령은 일반 국민이 미처 보지 못한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 5종 세트’도 실은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좀 더 완결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대선후보가 갖춰야 할 비전의 최소요건, 곧 커트라인 정도는 된다고 본다. 모든 대선주자들이 유념해야 할 일이다. 이재명 지사보다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뛰는 자 위의 나는 자가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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