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사과로 만든 댄싱사이더의 사과술 ‘더 그린치’. [댄싱사이더]
랜선 마케팅에서 주류업계는 불리한 처지다. 일부 예외를 제외하곤 온라인 판매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차선책으로 주류업계는 동네 소매점 마케팅을 강화하는 추세다. 코로나19 사태로 멀리, 그리고 사람 많은 대형쇼핑몰에 가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해 동네 편의점과 슈퍼마켓에 공을 들이는 것이다.
한편 전통주업계는 새로운 기회를 맞았다. 일반 소주, 맥주와 달리 전통주는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기에 이참에 권위와 격식으로부터 탈피, 다양한 주종을 선보이며 새로운 주류 트렌드를 선보이고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몇몇 전통주를 소개한다.
◆ 꿀과 생강 첨가한 ‘감기 예방’ 소주
술샘 ‘비밀’
꿀과 생강을 넣은 술샘의 ‘비밀’. [술샘]
우리 조상들은 꿀과 생강을 술에 즐겨 첨가했다. 조선 3대 명주로 불리는 전주 ‘이강주’, 경기 파주 ‘감홍로’에도 꿀과 생각이 들어간다. 꿀은 거친 소주의 맛을 부드럽게 해준다. 생강은 진저에일 같은 시원함을 가져온다.
꿀로 만든 술은 꾸준히 출시돼왔다. 경기 양평 벌꿀로 만든 ‘허니와인’, 제주 벌꿀과 감귤 과즙을 넣은 ‘제주 허니와인’ 등등. 단맛이 강하다 보니 이들 술은 식전이나 식사 후 디저트 타임에 잘 어울렸다. 하지만 ‘비밀’은 단맛이 적어 식중주로도 적합하다.
◆ 맥주 같은 사과술
댄싱사이더 ‘더 그린치’
와인은 포도로 만든다. 사과로 만든 술은? 스페인에서는 ‘시드라(sidra)’, 프랑스에서는 ‘시드르(cidre)’, 영국에서는 ‘사이더(cider)’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사이다’가 사과술이 아닌 청량음료를 뜻하게 된 것은 일제 탓이다. 1853년 영국 해군을 통해 사이더를 전래 받은 일본이 복합 향료를 사용한 탄산음료 ‘사이다’를 개발했다. 이제는 제대로 된 국산 사이더를 마실 수 있게 됐다. 충주 사과로 만든 댄싱사이더의 ‘더 그린치’다. 닥터 수스의 동화책 속 주인공으로, 어린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훔쳐 가는 익살스러운 녹색 캐릭터 그린치(Grinch)에서 이름을 따왔다.
녹색의 아이콘 그린치에 맞게 이 술은 청사과로 만들어졌다. 고급 맥주 홉의 대명사로 통하는 체코 ‘사츠홉(Sazz Hop)’도 사용된다. 그래서 사과술이지만 맥주 같은 텍스처를 가졌다. 아래 가라앉은 내용물을 잘 섞으려면 살짝 흔들어야 한다. 하지만 탄산이 있는 만큼 바로 열면 안 된다. 제조사 댄싱사이더는 병을 흔들고 기다리는 10초간 춤을 추라고(?) 권한다.
‘더 그린치’는 설탕이나 인공착향료를 배제해 굉장히 드라이하고 신맛이 도드라진다. ‘사워 비어(Sour Beer)’ 같은 느낌이다. 이런 술을 처음 맛보는 사람은 쿰쿰한 맛이 느껴져 당황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을 위해 사과주스를 첨가한 ‘스윗마마’도 있다. 사과를 갓 따서 즐기는 듯한 식감을 가진 술이다. 드라이한 맛이 중간 수준인 ‘댄싱파파’도 출시돼 있다.
최근 국산 사과를 사용한 우리 술이 늘고 있는 추세다. 충남 예산의 ‘예산사과와인’, 경북 의성의 ‘애플와인’, 충북 충주의 ‘도미니크’, 소설가 신이현 씨 부부가 만드는 스파클링와인 ‘레돔’ 등이 전통주 애호가 사이에서 사랑받는 사과술이다. 어느덧 국산 사과술만으로도 비교 시음 이벤트를 할 수 있게 됐다.
◆ 여주산 고구마로 만든 소주
술아원 ‘필’
경기 여주 고구마를 원료로 사용한 고구마술 ‘필’. [술아원]
최근 새로운 제품이 나왔다. 크래프트 전통주 제조사로 알려진 술아원이 여주산 고구마로 만든 ‘필’을 선보였다. 좋은 느낌(feel)과 좋은 술을 반드시(必) 만들어 낸다는 의지를 중의적으로 담은 이름이다.
국내에서 고구마술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800년 전후로 추정된다. 영조 39년(1763)부터 고구마 농사를 개시했기 때문이다. 이후 농업서적 ‘임원십육지’ 등에 따르면 고구마술은 ‘감저주(甘藷酒)’로 불렸다.
‘필’에는 여주산 황금 고구마와 밤고구마가 들어간다. 고구마를 쌀과 함께 버무려 발효시킨 뒤 지게미를 걸러 청주 형태로 만들고, ‘상압식’이라는 전통 증류 방식으로 내렸다. 구한말 문헌 ‘서현호감저소’에 나오는 고구마술 관련 언급에서 착안했다. 숙성 기간은 1년. 고구마 특유의 고소한 향과 쌀이 주는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졌다. 고구마술을 처음 접하는 입문자에게 적합하다.
◆ 새콤한 맛 뽐내는 오미자 와인
오미나라 ‘오미로제 연’
경북 문경 오미자로 만든 스파클링와인 ‘오미로제 연’. [오미나라]
발효·숙성 기간을 3년에서 1년으로 줄이고 알코올 도수도 기존 제품의 12도보다 4도 낮췄다. 힘찬 자연탄산을 통해 올라오는 오미자 특유의 붉은색, 새콤한 맛과 향, 복잡한 과실향이 어우러져 독특하다. 무엇보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오미자 와인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