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헐버트, ‘대한제국멸망사’ 02 메켄지, ‘대한제국의 비극 / 한국의 독립운동’ 03 그리피스, ‘은자의 나라 한국’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에 대한 관찰기록을 남긴 최초 서양인은 임진왜란 때 종군했던 스페인 신부 세스페데스였다. 그러나 그의 기록은 자신이 머물렀던 경상도 일대에 국한됐으며, 그것도 출판된 게 아니라 본국에 보낸 몇 편의 편지에 남아 있었다.
그에 이어 홀랜드(네덜란드) 상인 하멜이 효종 때 제주 앞바다에서 난파당해 조선 땅을 밟은 이후 13년간 생활하다 탈출해 책을 썼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아는 ‘하멜표류기’다.
조선에 대한 기록은 조선 후기에 와서 조금씩 더 출판됐다. 그것은 대체로 영국, 프랑스 해군장교들이 중국이나 일본을 방문하는 길에, 또는 태평양을 항해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짧게 조선을 관찰한 기록들이다. 천주교가 조선에 전래되고 신부들이 조선에서 사목하게 되면서 본국 정부 또는 교황청에 보낸 보고서 역시 조선에 대한 관찰기에 속한다.
조선에 대한 서양인의 관찰기록
04 알렌 · 게일 · 켄달, ‘조선견문기 / 전환기의 조선 / 한국독립운동의 진상’ 05 데니 · 묄렌도르프 · 홀, ‘청한론 · 데니의 서한집 / 묄렌도르프 자서전, 반청한론 / 조선 서해 탐사기’ 06 하멜 · 뒤 알드 · 오페르트, ‘하멜표류기 / 조선전 / 금단의 나라 조선’
이러한 서양인의 기록을 집중적으로 읽고 번역한 이 가운데 대표적 학자가 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인 신복룡 박사다. 한국정치학회 회원 가운데 그가 유일하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그를 이 주제에 있어 개척자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번역 출판은 1985년 평민사에서 처음 이뤄졌으며, 2009년 집문당에서 한 질로 완간됐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9년 역시 집문당에서 완전 개역·개정판 한 질로 출판됐으니, 이 주제에 관한 신 전 교수의 학문적 집념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들은 조선 후기 모습에 대한 우리의 이해 폭을 훨씬 넓혀준다. 물론 주제와 내용에서 편차를 보이지만, 그것을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첫째, 이 책들은 조선왕조가 상업을 철저히 억제해 조선 사회 전체가 ‘극도로 가난한’ 상태에 빠졌으며, 이것이 망국의 한 요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우리는 기업인의 의욕을 꺾는 정책들로 ‘경제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나라’라는 얘기를 듣는다. 이러한 평가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망국’은 아닐지라도 ‘쇠국(衰國)’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이 책들은 조선이 ‘극도로 가난한’ 나라가 된 원인을 집권세력의 무능과 탐학에서 찾았다. 집권세력이 국가 장래에 대한 비전과 경륜을 갖고 있지 못한 데다, 개인과 집안의 축재에만 집착해 돈을 한 푼이라도 가진 자들을 ‘쥐어 짜냄으로써’ 돈을 벌고자 하는 의욕을 결과적으로 봉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선 정치인들과 그 주변 인사들이 선거비용을 미리 확보하려고 기업을 쥐어 짜내고 있다”는 말을 듣곤 한다. 이것이 행여 사실이라면 개인과 집안의 축재에만 집착해 국민을 쥐어 짜내던 조선 후기 지배세력이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던 역사적 과오를 돌이켜보는 것이 좋겠다.
셋째, 이 책들은 조선이 외교를 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열강에 끼어 있는 작은 나라가 생존하려면 열강을 대상으로 한 외교에 능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한반도는 여전히 강대국의 각축장
07 켐프 · 와그너 · 언더우드, ‘조선의 모습 / 한국의 아동 생활 / 상투의 나라’ 08 새비지 랜도어 · 칼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 / 조선풍물지’ 09 길모어 · 샌즈, ‘서울풍물지 / 조선비망록’
여기서 대한민국이 어떤 방향을 선택하고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지는 매우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한 전통적인 우방을 멀리하고 우리와 체제 및 이념이 다른, 쉽게 말해 가치가 상이한 국가에 기울어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지 묻게 된다.
넷째, 이 책들은 조선 내부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간격이 너무 크다고 경고했다. 쉽게 말해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피지배층은 지배층을 불신하고, 그리하여 이 분열이 국가를 더욱 위태롭게 만든다는 뜻이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 갈등과 분열이 너무 심해 나라가 갈가리 찢기고 있다’는 국민의 우려는 이 책들에 나타난 조선 후기의 모습을 되새기게 한다.
다섯째, 이 책들은 일제의 대외선전에 서양인들이 얼마나 농락됐는지를 보여준다. 일제는 우리의 국적(國賊) 이토 히로부미를 ‘조선을 사랑하고, 저 미개한 조선을 개화시키려는’ 정치가로 부각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동양의 침략자요, 대한제국의 국적이다. 그래서 안중근 의사가 그를 처단했던 것이 아닌가. 그러한데도 적잖은 수의 서양 정치인과 언론인, 학자가 거기에 동조했다. 심지어 고종의 외교고문으로 채용된 미국 외교관까지 “조선인이 저지른 잘못들 가운데 하나는 이토를 암살한 것”이라고 했으니, 우리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다.
중립적이고 양심적인 전망에 귀 기울여야
10 비숍,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11 베리만 · 드레이크, ‘한국의 야생동물지 / 일제강점기의 조선 생활상’
이것은 우리나라 앞날에 대한 외국인의 관찰을 언제나 주의 깊게 경청할 필요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특히 중립적이며 양심적인 전망에는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한다.
종합하건대 이 책들은 그저 조선 후기 모습에 대한 관심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날 우리나라 현실에 관한 분석, 그리고 미래 전망에 많은 도움을 준다. ‘역사를 통해 배운다’는 것이 바로 이 책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