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지난 10년 실제 소득격차 줄었다
먼저 소득불평등이 정말 줄었는지부터 살펴보자. 정부에서 발표하는 불평등지수를 많은 사람이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소득 최상층과 최하층의 소득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불평등 정도가 과소평가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 의심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서베이 조사에서 소득 최상층은 조사하기 어렵고(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베이에 응답하겠는가), 소득 최하층은 자신의 소득을 제대로 조사원에게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하지만 가계동향조사에 근거해 산출하는 통계청의 불평등지수는 한 시점의 불평등 정도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할 수는 있어도 통시적인 불평등 변화 경향을 살펴보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소득 최상층과 최하층의 문제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기에, 두 시점을 비교하면 통계적으로 최상·최하층의 과소 대표 문제는 상쇄된다. 통계청의 소득불평등지수에 근거해 지난 10년간 소득불평등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어느 정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혹자는 공식 불평등지수가 가구단위 균등화 소득으로 산출되기 때문에 개인의 노동소득 불평등 증가를 보여주지 못한다고 비판할 것이다. 가구단위 균등화 소득이란 가구별 전체 소득에서 세금이나 복지혜택 등을 모두 고려해 가처분소득을 계산한 후 이를 가구원 수 효과를 보정해 개인단위로 소득을 재계산한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가구단위 조사인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개인별 노동소득 자료로 전환한 뒤 개인별 노동소득의 불평등 변화를 계산해보니, 지난 10년간 개인 노동소득 불평등 변화 경향과 가구단위 불평등 변화 경향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개인 노동소득의 불평등도 2008년 이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통계청의 서베이 자료는 믿을 수 없고, 국세청 자료로 보면 그 경향이 다르다고 얘기할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실에서 국세청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2010년과 2013년 사이 과세미달자 포함 소득 상위 1%의 소득과 중위소득(소득 순위에서 중간에 속하는 노동자의 소득)의 배율은 17.8에서 16.7로 줄었다. 소득 최상층과 중간층의 격차가 줄어든 것이다. 소득 상위 10%의 소득과 중위소득을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그 배율이 6.2배에서 5.8배로 줄어든 것이다. 이렇듯 필자가 따져본 여러 자료는 공통적으로 전반적인 소득불평등이 최근 몇 년간 줄었다고 설명한다.
고소득 중산층도 불안에 시달리는 나라
불평등이 줄어들면 국민의 소득 분포가 중간지대에 집중되기 때문에 객관적 지표에 의한 중간층(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중위소득 50~150% 지대의 비중)은 증가한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이의 비중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2013년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객관적 기준으로 중간층이나 소득 상층에 속하는 비율은 전체 국민의 92%에 달하지만 자신이 중산층이나 상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53%에 불과했다. 중간층에 속한 국민의 55%가 자신을 저소득층이라고 생각한다.객관적 지표와 주관적 지표의 이 같은 괴리는 객관적 지표가 중산층의 핵심 가치 중 하나를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삶의 안정성이다. 한국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기간에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를 완전히 극복했고,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큰 충격 없이 넘어섰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을 고려한 실제 소득도 꾸준히 상승했다. 하지만 아시아 경제위기 당시에 있었던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제는 조용하고 일상적인 구조조정으로 바뀌었다. 노동생애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것이다. 20대 직원에게까지 닥친 두산그룹의 명예퇴직이 최근 논란이 된 것은 이러한 경향의 상징이다.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의 직업 및 노동 안정성 결핍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2015년 12월 21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은 근속연수가 높아지면 다른 국가에 비해 임금은 지속적으로 더 빠르게 상승하지만 다른 국가에 비해 근속연수가 짧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의 보고를 보면 근속연수 1년 미만 단ㅈ기근속자 비율은 37%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고, 근속연수 10년 이상 장기근속자 비율은 17%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OECD 평균은 장기근속자 33%. 단기근속자 17%로 장기근속자가 단기근속자의 2배인데, 한국은 정반대로 장기근속자가 단기근속자의 2분의 1에 불과하다.
한국의 비정규직이 받는 고통이 다른 나라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 역시 한번 비정규직으로 밀리면 정규직으로 바뀌기 어려운 현실 때문이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물론 격차도 중요한 이슈이기는 하지만)가 가장 큰 이유는 아니다. 2015년 ‘한국사회학’에 실린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격차는 미국, 영국, 독일과 비슷한 수준이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비정규직 비중 역시 2004년을 정점으로 꾸준히 줄었기에 고용안정성이 낮아졌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할 것이다. 실제로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비중은 2004년 37%에 달했던 것이 2014년 33% 미만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55세 이상 중년·고령층에서는 이 기간 비정규직 비중이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30, 40대의 안정성 증대와 50대의 안정성 하락이 맞물린 셈이다. 상대적으로 고소득 중산층에 속하는 40대 역시, 지금 당장은 매를 피했지만 이내 내 차례가 돌아올 것이라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상태다. 노동생애 측면에서 안정성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상당한 소득을 올리는 중산층마저 미래를 불안해하는 이유다.
이렇게 놓고 보면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혹은 젊은 층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준다는 명분으로 해고를 좀 더 쉽게 하는 개혁은 한국을 더 심한 헬조선으로 만들 공산이 크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경제적으로 발전한 국가에서 기업가 정신이나 도전 정신은 주로 안정된 삶을 누리던 중산층에게서 나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즐길 수 있는 한국이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인 미래를 이끌어내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2015년 12월 2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동개혁 입법 촉구를 위한 경제 5단체 긴급 기자회견’에서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