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르스트뢰밍을 넣은 롤. (왼쪽) 청어 절임과 함께 먹는 독주 슈냅스. [ⓒ janus_langhorn/imagebank.sweden.se]
고약한 냄새를 잊게 하는 청어 조림의 맛
매일 신기한 과일들로 잔치를 벌이는 가운데 숙제처럼 남아 있는 과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두리안이었다. 과일 중 제일 크고, 생김새도 괴상하며, 값도 꽤 나갔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두리안 하나를 샀고, 상인에게 먹을 수 있게 잘라달라고 해 숙소로 들고 왔다. 상인의 장난기 어린 미소와 ‘스멜, 스멜’이라는 표현으로 이 과일의 악취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들은 바였다. 봉지를 앞에 두고 누군가 먼저 먹기를 내내 기다렸지만 봉지를 열면 풍겨오는 냄새 때문에 한입도 먹지 못하고 숙소에 고스란히 남기고 온 기억이 있다.수년이 지나 다시 기회가 생겨 두리안을 맛보게 됐다. 일단 입에 넣기만 하면 고약한 냄새는 순식간에 지워진다. 과육이 주는 풍만하고 부드러운 식감과 개성 넘치는 단맛에 단박에 매료되기 때문이다. 이 맛을 뒤늦게 보게 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두리안을 계기로 냄새나는 식품에 대한 호감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특유의 향이 나는 음식은 그만큼 마니아층도 거느리고 있다. 우리의 청국장과 홍어가 그렇고 중국의 취두부, 북유럽 사람들이 즐겨 먹는 삭힌 대구(루테피스크 · lutefisk), 그리고 가장 악명 높은 스웨덴의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이 그렇다. 취두부와 루테피스크는 특유의 냄새는 나지만 우리에게 친근한 식재료고 실제로 만났을 때 꽤 견딜 만하다. 반면 수르스트뢰밍은 스웨덴에서도 호불호가 갈릴 정도로 대단한 음식이다.
수르스트뢰밍은 스톡홀름 북부 발트해에서 잡히는 청어를 소금에 삭힌 것이다. 발트해의 청어를 스트뢰밍이라 부르는데, 다른 지역의 청어보다 크기가 조금 작고, 겨울에 잡은 것이 더 맛있다. 싱싱한 청어를 소금에 절여 두 달 이상 발효시킨 뒤 통조림으로 만들어 유통한다. 캔에 넣은 뒤에도 청어의 발효는 이어져 캔이 부푼 것을 왕왕 볼 수 있다. 캔을 열면 내부에 가득 차 있던 발효 가스와 함께 국물이 튀고, 지독한 냄새가 순식간에 퍼진다. 그래서 수르스트뢰밍 통조림은 주로 야외에서 딴다. 그리고 얇게 썬 양파, 구운 감자 등과 함께 빵에 올려 먹는다. 아니스 같은 허브를 넣어 만든 독주 슈냅스(schnapps)나 쌉쌀한 맛이 강한 맥주에 곁들인다.
스웨덴의 겨울은 길고 해가 짧다. 겨울에 땅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가 거의 없어 바다에서 나는 것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스웨덴 사람들은 일 년 내내 풍성하게 잡히는 청어를 굽거나 삶아 먹는 한편, 소금에 절여 오래 보관해 먹었다. 발효를 거치며 독특한 풍미가 가미된 청어 맛에 사람들은 금세 매료됐고 지금까지도 전통 음식으로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진짜 스웨덴’을 느끼게 하는 각종 청어 요리
다양한 허브와 겨자 등으로 맛을 낸 절인 청어. [사진 제공 · 김민경]
신선한 베리, 허브와 함께 빵에 얹어 먹는 청어. [사진 제공 · 김민경]
북유럽식 절인 청어는 ‘헴라갓’ 이외에 이태원의 퓨전 레스토랑 ‘미쉬매쉬’에서도 맛볼 수 있으며 ‘이케아’에서는 완제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스웨덴 여행길에 오른다면 180년의 역사를 가진 ‘아바(abba)’사에서 만든 다양한 청어 절임을 맛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