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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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맘이어도 괜찮아

‘천만이 엄마, 아빠’를 진실로 응원하려면

건강한 30대 중 · 후반 여성, 90%가 임신 성공 …  난임부부 “주변 채근이 가장 스트레스”

  • | 전지원 토론토대 글로벌사회정책연구센터 연구원 jiweon.jun@gmail.com

    입력2018-09-04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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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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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만이 엄마, 수유하실 시간이에요.” 

    2년 전 이맘때였다. 나는 산후조리원에서 난생처음 겪는 모유 수유라는 난제에 직면해 매일 밤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새벽에 아기와 씨름하고 있는데, ‘천만이 엄마’가 수유실에서 내 옆자리에 앉았다. 흔치 않은 태명에 얽힌 사연이 궁금해 물었다. 

    “천만이? 아이 태명이 왜 천만이예요?” 

    “얘 갖는 데 딱 1000만 원이 들었거든요.” 

    난임부부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읽을 때마다 ‘천만이 엄마’가 떠오른다. 아이가 생길 때까지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겪었을 경제적·감정적·신체적 어려움이 아프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산후조리원에서 일하는 산후조리사는 “태명이 삼천이인 경우도 봤다”며 이러한 태명이 적잖다고 귀띔했다. 



    올해 합계출산율이 사상 초유로 낮은 0.9명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만혼과 그에 따라 늦어지는 출산 연령, 이와 관련된 난임 증가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나이는 정말 난임과 관련 있을까.

    ‘한방이 엄마’ 될 확률 떨어질 뿐

    30대 중반 넘어 임신을 고민하는 여성은 두 가지 상반된 이야기를 접하며 혼란에 빠진다. 35세 이후에는 임신이 어렵다 하니 마음이 급해지다가도, 47세에 쌍둥이를 출산한 미국 배우 제니퍼 애니스턴을 보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35세 이후에 엄마가 된 여성들을 연구한 엘리자베스 그레고리는 “사람들은 35세가 넘으면 임신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연예인의 고령 출산을 보면서 누구나 자신도 고령 엄마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며 “30대 여성을 불필요하게 ‘겁주지’ 않으면서도 실제로 나이가 늘면서 줄어드는 임신 가능성을 균형 있게 알려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숙제”라고 말했다. 

    현실은 어떨까. 유럽에서 여러 국가의 데이터를 모아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Dunson, Baird, Colombo·2004), 기존에 불임 진단을 받은 적 없는 35~39세 여성의 90%가 적극적으로 임신을 시도한 후 시술 없이 2년 내 아이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35세 이후 임신이 어렵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일까. 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30대 중·후반 여성의 임신 가능성 자체가 줄어든다기보다, ‘한 번의 시도’로 임신에 성공할 확률이 줄어든다고 보는 편이 적합하다고 설명한다(산후조리원에서 한 번에 생겼다고 ‘한방이’라는 태명을 가진 아기도 봤다. ‘한방이 엄마’의 나이는 37세였다). 즉 여성 대부분이 30대 중·후반에도 엄마가 될 수 있지만, 20대 여성에 비해 임신하는 데 더 많은 준비와 시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유럽의 연구에 참여한 여성은 모두 건강한 상태였고, 배란기를 정확히 맞추고자 기초체온을 꾸준히 측정했으며, 무엇보다 일주일에 최소 2회 이상 부부관계를 가졌다.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일인데, 이를 통해 적어도 35~39세 여성은 나이 자체보다 건강 상태, 임신을 위한 여러 가지 노력, 그런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환경이 늦맘이 되는 데 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환경적 요소는 잘 알려지지 않고 ‘30대 중 · 후반  =  난임’이라는 단순한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서른여섯 살에 “이제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 털어놨을 때 가장 친한 친구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게 내민 것은 유명한 난임전문산부인과 명함이었다. 바로 임신하는 바람에 찾아가진 않았지만, 나도 사실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시술 없이 바로 임신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점을 떠올리면, 이러한 인식이 상당히 깊게 자리 잡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30대 중·후반 = 난임’이란 인식은 이 나이에 부모가 되길 원하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조급함을 안기고 스트레스를 높이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서른다섯 살에 결혼한 한 여성은 “결혼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았는데 시댁 식구나 친척들을 만날 때마다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 ‘나이가 있으니 서둘러야 하지 않느냐’ ‘생길 수는 있는 거냐’고 묻는다”며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앞서 언급한 유럽의 연구에 참여한 30대 중 · 후반 여성 가운데 90%가 임신에 성공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과연 한국에서 35세 여성이 1~2년 동안 주변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없이 임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능할까 씁쓸하게 곱씹게 된다. 잦은 야근 문화도 임신을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다. 법조계에는 ‘어차피 야근하느라 부부관계를 갖기 힘들고, 해봤자 임신도 잘 안 될 테니 시간 낭비하지 말고 임신을 결심하자마자 바로 난임전문병원에 가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여긴다는 말도 있다고 들었다.

    초저출산 한국에 필요한 건 ‘배려’

    물론 남녀 모두 결혼 연령의 상승과 함께 난임 빈도가 높게 나타나고,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은 난임시술이 필요한 경우가 훨씬 더 증가하는 것도 사실이다. 난임부부가 낳은 신생아가 올해 상반기에만 1만654명으로 전체 출생아의 6.2%를 차지하는 등 난임시술을 거쳐 부모가 되는 경우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미 만혼과 저출산이 돌이키기 어려운 추세가 된 현실에서 늦게라도 아이를 갖고 싶지만 난임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 대한 경제적, 실질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주변의 지지와 격려, 그리고 ‘괜찮다’는 다독임이다. 수차례 난임시술 끝에 쌍둥이 엄마가 된 한 여성 연구원이 한 말이다. “난임시술을 받는 동안 경제적 부담이 컸고 몸도 고됐지만, 가장 큰 부담은 ‘언제 아이를 낳을 거냐’는 주변의 채근이었다. 남편과 둘이서도 행복하게 잘 살았는데, 난임시술을 거듭할수록 임신에 성공할지 여부에만 집착하게 돼 힘들었다.” 그는 지금 쌍둥이를 키우는 행복한 엄마지만, 임신을 시도하던 그 시절을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다고 한다. 

    난임을 극복하려는 이들의 지난한 여정이 그저 고통이 아닌 ‘힘들지만 행복한’ 시간이 되려면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배려, 사회적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유럽의 연구가 보여주듯 부부가 새 식구를 만드는 데 충분한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도록 지지하는 사회적 환경 조성도 중요하다. 이미 초저출산 사회에 접어든 한국이 정성을 들여야 할 ‘특단의 대책’은 오히려 이러한 기본적 배려가 아닐까 싶다.

    전지원은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후 동아일보 사회부  ·  문화부 기자를 지내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고령화 및 시간사용 연구로 사회학 석  ·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토론토대 글로벌사회정책연구센터 연구원 및 옥스퍼드대 시간사용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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