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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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자연이 준 기적의 물, 식초

“식초는 가족 건강 기원하는 ‘어머니 마음’… ‘국악 4남매’와 함께 알린다”

“食문화 핵심이자 발효 정점…제대로 알릴 기회 왔다”

  • | 진천=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8-05-29 11: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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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 ‘2018 대한민국 식초문화대전’ 홍보대사 김봉곤 훈장  

    [배수강 기자]

    [배수강 기자]

    “발효음식은 우리 민족 식(食)문화의 핵심이요, 이 중 식초는 발효의 정점이라. 우리네 어머니들이 부뚜막의 초병을 신주단지 모시듯 예를 갖춰 다룬 것도 가족이 모두 건강하길 바라는 정성 어린 마음 때문이었느니라. 음식 맛을 내고 건강을 지켜주는 식초! 아~ 배 아플 때 식초 한 모금 입에 넣어주시던 어머니가 오늘 유독 보고 싶도다.(웃음)” 

    김봉곤 청학동예절학교 훈장이 통나무를 반으로 잘라 만든 테이블을 장구 삼아 ‘식초예찬’ 한 소절 뽑아낸다. 무성영화의 변사(辯士)처럼 익살스러운 그의 몸짓에 웃음이 난다. 주인이 부르는 소리라고 착각했을까. 누런 고양이 3마리가 인터뷰하는 2층 높이의 정자에 올라오자 김 훈장은 “이놈들도 식초 한잔하고 싶은가 봐” 하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5월 9일 충북 진천 청학동예절학교에서 만난 그는 얼마 전 ‘2018 대한민국 식초문화대전’ 홍보대사를 맡아달라는 요청에 “무료라도 해야 할 일”이라며 선뜻 수락했다. 

    대한민국 식초문화대전 홍보대사가 됐는데요. 

    “축제나 행사 홍보대사를 해달라는 요청은 자주 있어요. 며칠 전 배 기자의 전화를 받고 솔직히 반가움 반, 의아함 반이었어요.” 



    왜 그랬나요. 

    “최근 식초 효능이 알려지면서 식초의 ‘몸값’이 올랐지만 아직 국내시장이 크지 않은 데다 전통식초를 만드는 장인은 대부분 영세하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식초박람회를 연다니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론 ‘잘될까’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어려울 때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그걸 ‘동아일보’가 해준다니 힘을 보태야겠다 싶었죠. 저는 어릴 적부터 집에서 만든 전통식초를 먹고 자라 누구보다 우리 식초의 우수성을 잘 알아요. 우리 민족 고유의 신맛을 체계적으로 정립하는 국제학술대회도 연다고 하니 ‘무료라도 하겠다’고 한 거죠.”

    ‘부뚜막 신주단지’ 초병

    김봉곤 훈장과 ‘국악 4남매’ 자한, 경민,도현, 다현. [사진 제공·김봉곤]

    김봉곤 훈장과 ‘국악 4남매’ 자한, 경민,도현, 다현. [사진 제공·김봉곤]

    식초에 대한 이해가 깊었군요. 

    “그럼요. 식초나 간장, 된장, 김치 같은 발효음식은 우리 민족 식문화의 핵심이에요. 발효음식을 빼놓고는 설명이 안 돼요. 그중에서도 식초는 우리네 어머니들이 가장 중요한 ‘어른’으로 모셨죠. 초두루미나 초병은 ‘주방 신주단지’였는데, 부뚜막을 청소할 때도 시렁이나 찬장에 모셔놓은 초병을 꺼내 닦고 또 닦았죠. 간장이나 고추장은 실외 장독대에 두었지만 식초는 항상 부뚜막 시렁에서 주인 행세를 했어요.(웃음) 어머니들은 식초를 귀하디귀한 가보로 다뤘고,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초병을 통해 대를 이어가며 집안의 신맛을 내려갔어요.” 

    왜 식초를 중히 여겼을까요. 

    “민속학적으로 연구한 건 아니지만 식초가 가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식초는 밥상의 풍미(風味)를 배가할 뿐 아니라 병·의원이 부족한 시절에는 가정상비약 역할도 했으니까요. 시골 어른들은 피곤할 때면 미지근한 물에 식초를 타서 드셨고, 체하거나 어지럼증이 있어도 식초를 마셨어요. 그만큼 중요한 조미료였던 거죠. 임신부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과일이 뭔지 아세요?” 

    글쎄요. 신맛 나는 과일? 

    “맞아요. 신맛 나는 살구를 많이 찾는데, 이유는 태아가 먹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봐요. 태초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탕을 찾는 게 아니라 식초, 즉 신맛을 찾는 거죠.(웃음) 최근 학계의 과학적 분석을 통해 식초 효능이 속속 밝혀지고 있지만 과거 우리 선조는 식초 효능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어요. 율곡 선생의 ‘격몽요결’에도 소염다초(小鹽多酢), 즉 ‘소금은 적게 먹고 식초는 많이 먹는 게 건강에 이롭다’고 기록돼 있고, 고려시대 한의서인 ‘향약구급방’에도 ‘약방마다 식초를 약으로 썼다’고 전하죠.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에는 ‘식초는 풍을 다스리고 고기와 생선, 채소 등의 독을 제거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기원전 5000년에 대추야자로 빚은 술을 발효시켜 식초를 만들었고, 히포크라테스는 식초를 항생제로 사용해 환자들을 치료했다고 해요. 벌꿀과 식초를 섞어 마시면 호흡이 편해진다는 걸 알고 있었죠. 그러니 식초는 인류 최초 조미료이자 의약품이에요.” 

    식초 공부를 많이 하셨네요. 

    “대한민국 식초문화대전 홍보대사인데 이 정도는 알아야죠.(웃음) 실은 어릴 적부터 직접 식초를 발효시켜 먹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아는 거예요. 제가 살던 시골(지리산 청학동)에선 집집마다 길일(吉日)을 택해 식초를 담그고, 부뚜막에 초두루미를 놓아 식초를 보관했어요.”

    훈장님이 전하는 식초 제조법

    5월 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하는 김봉곤 공평사회만들기 범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 [사진 제공·김봉곤]

    5월 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하는 김봉곤 공평사회만들기 범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 [사진 제공·김봉곤]

    전통식초 제조법도 아세요? 

    “어허, 이 사람이….(웃음) 간단해요. 지에밥(고두밥)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키면 술이 되는데, 그 술을 초산 발효시켜 오랜 숙성 기간을 거치면 식초가 됩니다. 대략 알코올 도수 6~8%인 술을 옹기에 넣고 산소가 잘 들어가도록 옹기 입구를 삼베보자기로 덮은 뒤 따뜻한 곳에서 한 달가량 보관하면 돼요. 술통 아래 남은 술을 초병에 채워놓고 자연발효시켜 먹기도 하고요. 저기 보세요(김 훈장은 옹기 수백여 개가 놓인 장독대를 가리켰다). 지금도 발효식품은 대부분 직접 담가 먹어요. 서울에 살다 보니 빙초산이나 주정(에틸알코올)을 숙성, 발효시켜 첨가물을 넣은 주정식초를 주로 쓰더라고요. 처음엔 입맛에 맞지 않아 고생했어요. 우리나라는 장류나 젓갈, 김치 등 발효식품 종주국이면서도 발효의 정점인 식초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했어요. 1907년 조선총독부의 ‘주세령’ 공포로 집집마다 수시로 빚던 술을 만들 수 없게 되니 식초 명맥이 끊긴 거죠. 곡물식초는 술을 초산발효시켜야 하는데 그 가양주(家釀酒)가 없으니….” 

    이제라도 전통식초 제조기술을 복원하고 신맛 문화를 계승할 필요가 있는 거 같아요. 

    “그럼요. 한국전통식초협회가 생기고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 등에서도 우리 전통식초 ‘부활’에 관심을 갖고 있으니 큰 위안이 됩니다. 하루빨리 전통 발효 기술을 복원하고, 전국 식초 명장들도 계속 나와 몸에 좋은 식초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농촌지역 어르신들 일자리도 생기고….” 

    그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마시던 차를 내려놓았다. 

    “일본 가고시마현 현미흑초 마을은 마을 전체가 관광지잖아요? 우리도 곡물이든, 과일이든 지역 특산물을 활용해 지역마다 ‘비니거(vinegar) 시티’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경북 의성은 ‘마늘식초 시티’, 충북 충주는 ‘사과식초 시티’ 등 클러스터를 조성해 지역 특산물의 소비를 돕고 농촌 고령화 문제도 해결하면서 관광수입도 올리는 거죠. 식초 옹기 수천 개가 쫙 깔린 곳에서 사진을 찍고 시음도 하는 거예요. 가족이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마음까지 느끼면서. 그날이 올 때까지 저는 자연이 내려준 식초 본연의 맛과 우리 식초의 중요성을 ‘팍팍’ 알려야죠.” 

    참, 5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공평사회만들기 범국민운동본부’(공평사회만들기) 상임대표로 기자회견을 열었던데요. 국회에서 식초를 홍보…. 

    “(손사래를 치며) 그건 아니고요.(웃음) 6월 13일은 전국동시지방선거와 함께 12개 지역에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재보선)를 치러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이 박탈되거나 시도지사 등 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려고 의원직을 사퇴한 지역구 의원을 새로 뽑는 거죠.”

    “‘사회의 식초’가 돼야죠”

    [배수강 기자]

    [배수강 기자]

    그런데요? 

    “문제는 이러한 재보선을 국민 세금으로 치른다는 겁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최근 5년간 재보선 경비 지출 내용을 받아보니 672억8130만여 원이더군요. 재보선을 치르는 지역도 국회의원의 사망이나 건강상 이유보다 다른 선거에 출마하거나 공직선거법 또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경우가 대다수예요. 자신의 영달을 위해 다른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 때문에 국민 혈세를 써야겠습니까. 우리가 여론조사를 해보니 국민 79%가 선거 경비는 ‘원인 제공자’(58.5%)나 ‘정당’(20.5%)이 부담해야 한다고 답했어요(여론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 4월 26~27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9%p). 그래서 재보선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비용을 부담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죠.” 

    ‘공평사회만들기’는 어떤 단체인가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전국 20~60대 분들이 참여해 만들었어요. 로버트 할리(하일) 국제변호사, 오심 스님 등 42명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요. 공평한 사회를 만들고자 불합리한 법제도의 관행을 개선하고 교육과 봉사에 나서는 단체라고 보면 됩니다. 생각해보세요. 식초 같은 좋은 음식이 몸을 건강하게 하듯 ‘공평사회만들기’의 노력은 사회와 국가를 건강하게 만들 거예요. ‘사회의 식초’가 되려고 해요.(웃음)” 

    인터뷰 이후 5월 21일 김 훈장은 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국악 4남매’로 불리는 자녀(자한, 경민, 도현, 다현)가 모두 ‘2018 대한민국 식초문화대전’ 홍보대사로 참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식문화에서 식초의 소중함과 효능에 대해 설명했더니 아이들도 ‘미력하나마 식초 알리기에 나서겠다’며 팔을 걷어붙였어요. 가족의 건강을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이 녹아 있는 식초 홍보대사로 나서겠습니다.” 

    한편 ‘2018 대한민국 식초문화대전’은 6월 22~2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 제1전시장 2A홀에서 열린다. 국내 대표 식초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번 박람회에서는 식초 시음회, 식초 족욕, 식초를 활용한 쿠킹클래스 등 다채로운 체험 행사와 동아시아 신맛 문화에 대해 토론하는 국제콘퍼런스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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