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정에 따라 최근 중국 정부가 자국에서 공식 허가를 받아 일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들을 ‘2년 내 철수시키라’는 내용의 공문을 지방정부 측에 내려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중국 현지에서는 이것이 안보리를 의식한 형식적 조치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북한 노동자들에 대해 중국 당국은 ‘철저한 단속’을 내세우면서도 ‘모른 척 눈감아주는’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노동자들은 한국과 일본의 유명 브랜드 의류를 계속 생산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12월 22일 유엔 안보리는 대북제재 결의안 2397호를 채택했다. 20여 일 전인 11월 29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한 것에 대응한 조치였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는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인 2006년 10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총 10차례 있었다. 특히 지난해엔 역대 최다인 4차례나 채택됐다. 결의안 2397호의 핵심은 유류 제재와 북한 해외 노동자의 송환 조치다.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 정제품의 대북 공급량을 대폭 줄이고, 외화벌이를 하는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을 2년 이내 귀환시킨다는 내용이 담겼다.
중국 내 북한 노동자, 외화벌이 첨병
중국 단둥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노동자들. [동아일보 윤완준 기자]
유엔 안보리가 지난해 8월 초부터 12월 말까지 3차례 대북제재 결의를 채택하면서 모두 ‘해외 북한 노동자’ 문제를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이 해외 노동자를 통해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고, 이것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안보리 결의안 2397호 채택 직후인 지난해 크리스마스 무렵 중국 정부는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투먼(圖們)시장에게 공문을 보냈다. 이 공문에는 투먼 북한공업단지 소속 북한 노동자를 모두 2년 안에 철수시키라는 내용이 담겼다. 투먼 북한공업단지는 중국이 최초로 승인한 북한 인력 공업단지로, 지린성 정부가 2011년 8월 설립을 허가했다. 2012년 5월부터 북한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1만여 명을 헤아린다. 투먼 북한공업단지에서 북한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각종 행정 절차를 거쳐 자치주 각 지역에 파견하는 형식이다. 베이징(北京)에서 보내온 공문은 1만여 명을 2년 내 돌려보내라는 지시였다.
베이징의 지시는 북한 노동자를 활용하는 중국 기업과 이를 통해 적잖은 세금을 걷고 있는 투먼시 등 자치단체 정부, 인력을 공급하는 북한 당국 모두에게 청천벽력과도 같다. 투먼시 같은 시골 동네에 기업들이 활발히 진출한 건 바로 북한 노동자들 때문이다. 저렴하고 부지런한 북한 노동력을 쓸 수 있다는 소식에 중국인 명의의 회사 설립이 줄을 이었다. 물론 회사의 실제 주인은 세계적 기업들이었다. 덕분에 늘 적자에 시달리던 투먼시 재정은 흑자로 전환될 수 있었다. 투먼시뿐 아니라 북한 노동력이 진출한 훈춘(琿春), 허룽(和龍) 등 옌볜조선족자치주의 다른 지역에게도 2년 내 철수 지시는 경제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베이징 당국이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자 지린성 상무국 한 고위 간부는 “안보리 결의를 이행하려고 무조건 나가라고 지시한 것이다. 하지만 2년 안에 다 해결될 테니 너무 걱정마라”고 말했다고 한다. 2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을 예정이기 때문에 북한 노동자를 전원 철수시키는 일은 실제로 발생하지 않으리라 보는 것이다. 옌볜조선족자치주의 대북 사업가들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안보리 대북제재가 이어지면서 중국의 대북정책이 수시로 변화하는 마당에 2년 이후 일까지 예단할 수 없다는 점, 국제사회의 잇단 대북제재 와중에도 은밀한 대북 거래를 베이징이 100% 엄단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 점 등을 이러한 판단의 이유로 꼽았다.
중국 당국은 자국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에 대해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대응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먼저 불법 취업자에게는 법의 칼날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반면, 공식 취업자에게는 칼날을 거둬들이는 것이다. 또 불법 취업자라 해도 공장주에게 ‘파워’가 있거나 당국과 관계가 끈끈하면 단속을 피해갈 수 있다.
지난해 12월 하순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의 한 공장에서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 120여 명은 대부분 취업비자가 없는 불법 노동자였다. 이들은 11시쯤 갑자기 일손을 멈추더니 한꺼번에 공장을 떠나버렸다. 단둥 공안당국이 북한으로 돌아가라고 계속 경고하자 발생한 일이었다. 당시 북한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인기 폭발인 ‘롱패딩’을 생산하고 있었다. 북한 노동자의 집단 이탈에 따른 피해는 단둥 공장에 주문을 넣은 한국인 사업가에게로 옮겨갔다. 롱패딩 수천 장을 고스란히 날린 것. 의류 생산 작업을 하다 도중에 멈추면 다른 작업자가 이를 받아 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이 물량은 포기해야 한다고 한다.
北 노동자 120명 작업 중 돌연 사라져
투먼 북한공업단지 간판. [사진 제공 · 김승재]
이 소식통은 단둥의 또 다른 공장에서는 일본의 유명 신사복을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국적의 재일교포가 주인인 이 공장은 4만㎡ 규모에 북한 노동자 1200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 중 800명은 정장, 400명은 패딩류를 생산 중이다. 이 회사는 단둥에서뿐 아니라 평양에서도 의류 생산 작업을 하고 있다. 이 회사 역시 불법 취업한 북한 노동자를 다수 고용 중이지만 단둥 당국의 단속은 전혀 없다고 한다. 물론 일본도 중국과 북한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자국 기업의 제품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현지 지방 당국과 기업의 특수한 관계 때문이다. 지방 공무원들이 오랫동안 끈끈하게 ‘꽌시’(관계)를 유지해온 기업인을 내치지 못하는 것이다. 단둥 공안국의 경우 불법 취업 북한 노동자를 단속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을 위한 취업 가능 증서까지 임의로 만들어줬다는 얘기도 나온다. 베이징에서 아무리 지시를 내려도 지방정부 당국자들이 단속 대상과 깊이 유착돼 있어 단속이 겉돌기만 할 따름이다.
대북 사업을 하는 한 중국 소식통은 최근 중국 지방정부 관료들, 북한 인력송출 회사 대표와 술을 겸한 저녁 자리를 가졌다. 과거에는 이런 모임이 자주 있었는데, 지난해 말 중국 정부가 강력한 단속 의지를 보이자 잠시 뜸해졌고 최근 다시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중국 소식통은 이 자리에서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중국 공장이 앞으로도 아무 문제 없이 운영될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전해왔다.
베이징도 지방정부가 북한 노동자를 철저히 단속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 중국 속내는 북한을 적절히 압박하되 결코 내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중국 내 대북제재는 적절한 선에서 조정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